1km 만 달리는데도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어제가 입동이었다. 겨울의 시작점. 한겨울보다는 그리 춥지는 않더라도 이제 막 가을을 즐기려고 할 때 불현듯 겨울이 찾아와 추위가 반갑지 않다. 며칠 전 파주 마장 호수공원에서 본 단풍이 다인데 벌써 겨울이라니. 마음 따라 몸이 간다더니 내 마음도 그래서인지 몸이 겨울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2주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여름도 끝나 더위도 물러갔겠다, 시간과 돈을 크게 들이지 않고 두 다리만 있으면 되니 시작하기 쉬워 보였다. 그런데 막상 운동이라는 것은 하고 나면 처음의 그 마음과 많이 달라진다는 것. 삼일에 한 번꼴로 뛰고 난 뒤 허벅지 근육통이 장난이 아니었다. 고작 경보 수준으로 달렸을 뿐인데 허벅지가 땅기었다. 근 20년 간 쓰지 않던 근육을 갑자기 써서 근육들도 놀랐을 거라 십분 이해한다. 그렇지만 20년 만에 마음먹고 달리는데 제발 덜 아파주면 안 되겠니.
일주일 만에 다시 뛰러 나갔다. 그 사이에 특별한 일이 크게 있진 않았는데 내가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난 뒤 남편이의 심란한 시기가 돌아왔다. 우리 부부는 보통 한 명이 힘들면 다른 한 명이 위로하고, 다시 회복하면 누군가 다시 쳐지는 사이클을 반복하는 편이다. 내가 여름에 힘든 시기를 보냈을 때 남편이가 힘이 되어 주었는데, 가을이 되니 그이의 갑갑함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조치가 필요하여 바람 쐬러 여기저기를 좀 다녔다. 고로 뛸 수 없었, 핑계다. 어찌 됐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새벽에 눈을 떴고 미리 챙겨둔 운동복으로 대충 갈아입었다.
일주일 만이라 그런지 귀차니즘이 발동되어 뛸까 말까 살짝 고민했다. 날도 추운데 이불 밖으로 나가기 싫었다. 뛰고 싶은 마음 반, 나가기 싫은 마음 반. 유튜브를 보며 실내 달리기 운동을 할까라는 얄팍한 생각도 잠시 했다. 아파트 헬스장 러닝머신도 떠올랐다. 그런데 거기 갈 바에 그냥 밖에서 뛰지라는 생각에 운동화를 신었다.
입으로 하, 하는데 입김이 뽀얗게 나왔다. 정말 겨울이구나. 추위가 확 들어와 '어쩔 수 없이'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나오기만 했는데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쉬는 동안에 근육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졌다. 가벼워진 다리로 추위를 가로질렀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 광장을 뛰었다. 그러다 가는 중간에 캐리어를 끌고 여행을 가는 것처럼 보이는 여성 세명의 무리를 지나쳤다. 이내 광장을 한 바퀴 다 돌았다. 돌아가는 길목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그들과 한번 더 마주쳤다. 그 순간 숨이 가쁘게 차올랐는데 그것이 나는 괜스레 민망하였다. 내게 관심이 없을 텐데, 저들은 나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가령 '조금 뛴 것 같은데 벌써 숨이 저렇게 찬다고?'처럼 말이다.
1km를 뛰었을 때 애플 워치가 진동으로 알려주어 천천히 속도를 낮추었다. 내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 '무리'를 하지 않기로 한다. 초반에 스퍼트를 강하게 하면 도중에 그만둘 게 뻔하여 열정도 체력도 아껴두기로 한다. 언제부턴가 내 인생은 '빠름'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욕심으로 속도를 내면 중간에 꼭 쉬게 되는데 그 쉼이 포기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서 나라는 사람은 속도보다, 느긋하고 깊게 가는 게 잘 맞았다. 천천히 하면 '아직도 이만큼 내가 할 게 많네?'라며 기대감 때문에 질리지 않았다. 이전엔 빠르게 한만큼 싫증도 금세 났고 열정과 체력이 떨어져 포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왠지 좋아하는 일은 아껴서 두고두고 하고 싶은 심정도 있다. 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아끼고 싶고 오래 곁에 두어 그 사람 안으로 서서히 스며들고 싶은 그런 마음. 지금껏 글쓰기가 그랬고 사주 공부도 그러했다. 호기심과 흥미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천천히 아끼며 발전하고 싶은 업이 되었다. 앞으로 달리기도 그래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