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휴지 거는 습관

by 소화 데레사

난 어느 집안의 맏며느리다.

우리 시어머니는 생활력이 아주 강한 분이시다.

내가 우리 시어머니를 처음 뵌 날도 당신 일을 참 열심히 하고 계셨고, 집안의 모든 주도권은 어머니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우리 시어머니도 다른 어른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인생을 책으로 엮으면 10권은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본인의 경험담을 풀어놓는 것을 즐겨하신다.

난 그렇게 경험담 부자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일 년에 최소 4번 이상은 듣곤 한다.

설, 추석, 제사 2번 이렇게 4일은 내가 전 부치는 시간만 하루에 4~5시간이 넘는데 그 시간을 우리 어머니께서는 내가 심심할까 봐, 어머니 어릴 적 이야기부터 어제 친구분들 만난 이야기까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이렇게 하기를 20년쯤 되어가니.

어머니 인생의 전기 한 권쯤은 나도 쓸 수 있겠다.

어쩌면 시어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시댁 식구 중에서는 내가 제일 많이 듣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우리는 대화가 많은 고부간이다.

내가 목석같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늘 어머니 말씀에 맞장구가 쳐지는 것을 보면 난 아마도 어머니 팬인가 보다.

그렇게 난 우리 시어머니를 참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시댁에 방문해서 화장실에 갔다가 우연히 이제 것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던 화장실 휴지가 눈에 들어왔다.

난 휴지를 늘어지는 쪽이 바깥으로 오게 걸어 두는데, 어머니는 휴지가 늘어지는 쪽이 안쪽으로 가게 걸어 두신 것이다.

난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서 하던 습관대로 휴지를 빼서 다시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 댁에 방문했다가 다시 화장실에 들렀는데 휴지가 어머니의 습관대로 예전과 같이 걸려 있었다.

그래서 그때 난 깨달았다.

내가 빼서 다시 걸어 놓고 간 휴지는 오히려 어머니를 불편하게 해 드렸을 수 있었겠다고.

내가 휴지를 보자마자 다시 끼운 것처럼, 그날 내가 돌아 간 후에 어머니도 아마 휴지를 빼서 다시 걸었을 것이라고.

어머니는 화장실 휴지를 나와 다른 방식으로 걸고 계셨고, 그날 내가 화장실 휴지를 바꿔 낀 것은 나의 오지랖이었던 것이라고.

내가 결혼한 지 25주년이 지났으니 참 많은 세월을 함께 했다. 그런데 난 몰랐다. 어머니의 휴지 거는 방식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그런데 그까짓 휴지를 어떻게 걸든 말든 무에 그리 대수냐 할 테지만, 이 작은 차이가 아마도 후에 함께 사는 날이 오게 된다면 나비 효과처럼 참 많은 것을 맞춰 나가면서 살아야 하는구나를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작은 차이가 쌓이고 쌓이면 아주 많은 다름을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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