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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석 Mar 29. 2021

"왕"은 남자가 아니다.

생활 속의 습관적 성차별

여왕, 여군, 여경 심지어 여선생, 여사원까지. 우리가 생활하면서 자주 접하거나 또는 쓰는 단어들일 것이다. 하지만 왕, 군인, 경찰, 선생, 사원 중 그 어떤 단어에도 성별을 나타내는 의미는 없다. 이런 이상한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쓰이도록 퍼진 이유는 혹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내어주기 싫은 영역을 끝까지 부여잡고, 이런 일들을 하는 여성들은 일반적인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찌질함이 깔린 건 아닐까?

영어로 표현해 보자면 King은 남자 왕, Queen은 여자 왕이다. 그러니까 He is a king 또는 She is a queen이 된다. She is a female king이 아니다.

우리말에서 "왕"은 사전적 의미로 아래와 같다.


1.군주 국가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통치자

2.일정한 분야나 범위 안에서 제일 뛰어난 존재

3.가장 소중하게 받들며 귀하게 여기는 존재

(출처: 다음 사전)


그러니까 왕은 남성이라는 의미가 없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우리말로는 그냥 "왕"이다. 그런데 남왕이라는 말은 없는데 왜 여왕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쓰이는 걸까? 아니 그전에 왜 남자 왕, 여자 왕을 구분하는 말을 애초에 만들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여자 자식은 딸, 남자 자식은 아들. 이렇게 잘 구분되어 있어 헷갈릴 염려 없이 쓸 수 있다. 우리말에도 이렇게 굳이 남녀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같은 의미이지만 성별을 구분한 단어들이 있다.

그런데 "왕"처럼 성별을 구분하지 않은 단어라면 어떤 의미일까?

우선 개방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가 돼도 상관없다는 포용의 의미 일 수 있다. "조카"처럼 말이다. 그러니 남성, 여성 모두 "왕"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선덕여왕"이 아니라 "선덕왕"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반대로 폐쇄적인 관점에서 보면, 왕은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자리이니 서양의 "Queen"처럼 여자 왕을 뜻하는 그런 단어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걸까? 그래서 본래 단어 의미에 있지도 않은 성별을 관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남성만 오를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에 여자 왕들이 여럿 있었으니 나는 전자가 이유라고 생각하고 싶다.




남녀평등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동양보다는 아무래도 서양 국가들이 좀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영어 기사나 문서를 보면 남녀를 구분하는 단어들을 피하는 경향이 보인다. 예를 들어 예전에 자연스럽게 쓰던 "Sales man" 대신에 "Sales person" 이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맨" 같은 단어가 널리 쓰인 적이 있다. 아마도 미국의 "GE Man"을 보고 따라한 것 같다. 2002년도 내가 미국 회사인 Motorola를 다닐 때는 이미 "~man" 대신 "motorolan"이라는 말을 썼다. 남녀 구분이 없는 말이다. 조직에 남녀 모두 있는데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군, 육군, 해군 사관학교에 여성이 입학하기 시작한 지 25년이 되어간다. 간호사관생도들은 훨씬 오래되었다. 이제 군인 중 여성이 1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아직도 "여군"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여군은 없다. 군인만 있을 뿐이지.




이렇게 성별 구분이 없는 단어에 굳이 "여"를 붙여 쓰는 것은 여성의 일이 아니라는 암시라고 생각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책에는 항상 의사, 군인, 경찰, 운전기사 등은 남성으로 묘사되어 있었고, 간호사, 유치원 교사, 꽃집 주인 등은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직업에 대한 남녀 구분이 철저하게 되어 있었고 이것이 당시 사회의 고정관념이었다. 직업의 고정관념에 대한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가 아들과 운전을 하고 가다가 큰 사고가 났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고 아들은 응급차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으러 갔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의사는 수술 준비를 하고 환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환자를 본 의사가 깜짝 놀랐다. 그 환자가 바로 자기의 친아들인 것이었다. 도대체 사망한 운전자와 이 의사는 무슨 관계일까?"


나도 2001년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한참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 아들에게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혹시 입양인가? 등등

다들 알겠지만 운전자와 의사는 부부관계다. 의사가 엄마인 것이다. 정답을 듣고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있던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어려서부터 각인되어온 남녀차별적 고정관념은 이렇게 나의 생각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시에 남녀평등의 새로운 관념을 갖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에서 내가 내뱉는 단어 하나 행동 하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습관은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습관인 것이다. 나와 같은 40대만 해도 학창 시절 남녀평등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나 성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남녀평등이라 해야 투표권을 평등하게 갖는다는 정도 수준이었고 성교육이라고 해봐야 슬라이드 몇 장 보는 수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40여 년을 살아왔다면 적어도 남녀평등에 관해서는 십중팔구 우리 아버지 시절의 의식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잠재되어온 생각을 고치고 새로운 개념을 다시 인식시키는 데는 그 세월을 이겨낼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조금 다른 말일 수 있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남녀차별은 호의도 아니다 이것은 강압이자 탈취다. 그런데 이것을 권리인 줄 안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게 아닐까? 권리라고 착각했다면 빨리 인지하고 주인에게 되돌려 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게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도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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