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거북이와 첫 만남
운동장에 학부모와 아이들이 모였다.
조용하고 어색한 침묵 속에 다들 강당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강당 위에 누군가 올라와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 보였다.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 중에 단 한 명도 파란곰이 없는 게 신기했다.
잠시 조용한 강당 위에 마이크를 들고 누군가 올라갔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파란곰은 본인을 교장이라 소개하고 입학 연설을 시작했다. 교장은 무대에서 열심히 연설했지만, 무어라 하는 내용인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란 곳을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나는 왜 수많은 인파들과 함께 운동장 한 가운데에 서서 연설을 듣고 있는지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운동장에는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연설이 끝나자 모두 박수를 쳐주고 화호 했다.
입학식을 마치고 나서 우리는 각자 배정받은 반으로 들어갔다. 교실에 나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이 서로 어색하게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 덩치가 아빠처럼 큰 파란곰이 들어와서 선생이라 소개를 했다. 나는 사실 조세희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반아이들에게 심오한 이야기 들려주는 선생님을 기대했다. 하지만 굳은 얼굴로 형식적인 말을 하는 선생님을 보고는 실망 아닌 실망을 했다. 일하는 모습이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선생님은 행복하려면 꿈이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준비한 종이와 펜을 나눠주며 희망하는 직업을 각자 종이에 적고 앞에 나와서 발표하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잠시 고민하더니 무언가 적고선 앞으로 나가서 발표를 했다. 아이들은 보고 들으며 알게 된 직업을 말했지만, 대부분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말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당당하게 앞으로 나갔다. 나는 사실 종이에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하지만 당당했고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저는 파란곰이 되는 게 싫습니다."
반아이들은 놀란 표정으로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시끄럽게 수다 떨던 아이들도 그 순간 조용해졌다. 반에는 정적이 흘렀고 아무도 손뼉 쳐주지 않았다. 얼음장 같은 분위기에서 선생님은 얼버무리며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다며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첫 수업이 끝났다. 쉬는 시간에 서로 비슷해 보이는 아이들끼리 대화를 주고받는 게 보였다. 대화 주제는 대부분 서로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것들을 맞춰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쿠마야,너도 게임이나 영상 보는 거 좋아하니?"
나는 게임과 영상 보는 것보다 독서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반 아이들 중에는 독서라는 것을 해본 아이는 없었다. 부모가 시켜서 국어와 영어 수학 등등 공부할때나 보는 책 말고는 자발적으로 독서를 해보았다고 말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게임을 좋아했고, 부모님과 함께 재밌는 영상 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 아이는 나에게 요즘 누가 책을 보느냐 따지듯이 영상으로도 충분히 책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다며 말했다. 나는 더 이상 그 아이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반아이들은 대부분 순수했으며 부모님과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이었다. 착하다는 것이 어떤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교시간이 되었다는 종이 울렸다. 처음에 정해진 시간마다 종이 울리는 게 신기하고 궁금했지만 아이들은 그 종소리에 익숙해졌고, 종소리에 따라서 순한 양처럼 움직였다.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멀리서 책가방보다 작은 초록색 생물체를 보았다. 그는 딱딱하고 매끈해 보이는 등껍질을 책가방처럼 매고서 느릿하게 기어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등껍질이 신기했다. 등껍질 안에는 초록 생물체가 있었고, 움직이는 집을 소유한 것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가까이 가서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나를 멍하니 쳐다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신기한 재주가 있다며 혼잣말을 하곤 느릿하게 가던 길을 기어갔다. 신기한 재주가 궁금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속도를 맞춰가며 질문을 이어했다.
"신기한 재주가 있다는 게 뭐예요?"
그러자 가던 길을 멈추고선 천천히 말을 했다.
"네가 거북이가 아닌데 나와 말을 하고 있잖니.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인간이랑 대화를 해본 건 처음이란다."
별로 놀랍지 않았고. 재주라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지구에 왼손잡이가 소수만 존재하듯 동물과 대화가 가능한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른들에게 동물과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만 내 말을 장난식으로 받아주거나 책 좀 그만 읽으라는 말이 전부였다.
대화가 안 통하는 어른보다 책을 읽는 게 좋았고, 동물과 대화하는 게 더 좋았다. 나는 거북이의 나이와 이름을 물어보았다.
"나는 아마도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니 어거스트 허밍웨이는 작가가 아닌가. 거북이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계속 들었다.
"나이는 아마도 126살 정도 되었을 거야.."
흥미로운 대화속에서 거북이가 하는 말은 사실인지 거짓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거북이에게 헤밍웨이는 작가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거북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많은 작품 중에 <노인과 바다> 이야기를 꺼내며 말했다.
"노인은 무척이나 가난했지만, 바다를 사랑했단다. 바다란 삶의 터전이지.."
거북이는 마치 본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듯 심취하여 계속 말했다.
"육체는 늙고 노쇠할지언정 정신만은 굴복당하지 않으려고.. 물고기와 전쟁을 치렀어.. 물고기는 세상이었지"
거북이가 하는 말에 집중해서 들었다. 책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흐릿했다. 거북이와 대화를 통해서 큰 깨달음을 깨우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거북이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학교라는 곳은 왜 가는 거죠?"
거북이는 잠시 깊은 생각을 하고선 느릿하게 말을 시작했다.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어. 프로이센에서 처음 교육제도가 만들어졌지. 그걸 프랑스 미국 등세계 곳곳에서 공교육을 받아들였지. 공교육은 일본과 러시아로 건너가 일제강점기에 한국으로 들어온 거야. 학교란 곳은 그 본질을 생각해야 된단다. 현대 에서는 점점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 "
거북이가 하는 말이 어려웠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산업혁명에서 필요한 말 잘 듣는 노동자와 군인들이 필요했기에 국가가 공교육을 만들었다고 이해했다. 거북이가 하는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었지만 사실인지 거짓인지 중요하지는 않았다. 거북이는 또다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미소 지으며 다시 떠나려고 준비를 했다.
"어디를 가는 거죠?"
거북이를 붙잡고 계속 대화하고 싶었다.
"난 길고 긴 여행을 하고 있단다. 여행은 나의 삶이자 모든 것이지. 다시 또 만날 기회가 있을 게다. 잘 지내렴. "
거북이의 반짝이는 눈에서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는 말을 기억하며 인사했다.
집에 도착하니 외삼촌이 엄마와 대화하고 있었다. 외삼촌은 30년째 밀키트를 대량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외삼촌이 싫다. 내가 즐겨 읽던 요리책을 없앤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애덤스미스 <국부론>과 칼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고 있던 적에 외삼촌은 인생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은 독서와 명상 같은 망상이라 말했다. 나중에 커서 자격증 공부에나 열중하고 좋은 대학교를 나와서 기술을 배워야 된다며 큰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