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곰 쿠마
우리 엄마, 아빠는 파란곰이다.
나는 아직 파란곰이 아닌 모습을 하고 있다. 성인이 될 때까지 학교라는 장소에서 교육을 받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공부해야. 사회로 나갈 수 있는 파란곰이 될 수 있다. 파란곰이란 존재는 도대체 언제부터 생겼는지 궁금했다.
나는 궁금하면 끝없이 생각하고 질문하는 걸 잘한다.
파란곰에 관해서 무척이나 궁금하던 시절에 엄마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단지 파란곰이 되기 위해서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라고 말하셨다. 그 이후부터 엄마도 파란곰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의 궁금증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일하고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아빠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아빠는 계급이 있는 회사라는 장소를 가기 위해서 6시에 시끄러운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신다. 오전 9시까지 출근을 하시고, 오후 6시에 일이 끝나서 7-8시에 집에 들어오신다. 일주일에 2번을 쉬고, 5일을 이렇게 매일 반복하며 살고있다.
남들보다 좋은 회사를 들어가려고 노력을 많이하셨다. 회사를 늦게 들어간 편이라 아빠가 처음 회사를 들어갔을 때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온세상을 다 가진듯한 아빠의 밝은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고 나서부터 아빠의 그 표정은 두 번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 학교라는 곳을 가지 못했다. 학교라는 장소는 궁금했지만, 별로 큰 기대는 없다. 학교는 의무적으로 가야되는 법이 있기에 내 차례가 오면 강제적으로 가야된다. 나는 아직 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지 않아서 아빠가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시고 집에서 올 때까지 나는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늦은 저녁이 되어 아빠의 걸음소리가 문밖으로 들렸다. 아빠는 엄마와 다르게 덩치가 매우 크다. 쿵쿵 걷는 소리가 엄마와 달랐기에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는 다르게 턱에 회색빛 도는 수염을 하고 있다. 쿵쿵쿵 걷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읽고 있던 알베르 카뮈 <이방인> 책을 던져버리고 문 앞까지 잽싸게 뛰어갔다.
"아빠, 일하느라 힘드셨죠. 아빠한테 궁금한 게 있어서 아침부터 쭉 기다리고 있었어요!"
말똥 말똥한 눈으로 아빠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며 말했다.
아빠의 얼굴 표정은 아침에 출근했을 때 기운 넘치던 얼굴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회색빛 도는 수염이 더욱 거뭇하게 보일 정도로 마치 충전한 배터리가 방전된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빠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나에게 귀찮다는 듯 말을 했다.
"그래 쿠마야. 무엇이 궁금해서 아빠를 기다렸니?"
아빠는 분명 알고 계실 거라는 믿음으로 두근거리며 말을 했다.
"파란곰은 언제부터 생기게 된 거예요?"
나와 다르게 생긴 파란곰에 대해서 무척이나 궁금했다. 아빠는 나의 말을 듣고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선 말했다.
"쿠마야. 너무 책을 많이 읽지 말거라. 아빠는 일하고 와서 너무 힘들단다. 그러니 아빠를 제발 내버려 뒀으면 좋겠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빠는 잽싸게 주방으로 가서 파란곰들이 즐겨 먹는 밀키트를 꺼냈다. 그리곤 매일 보는 영상을 켜고 밥 먹을 준비를 했다. 밀키트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생긴 것이다. 평소에 다양한 요리책을 즐겨보았지만, 이제 요리책이 출판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밀키트다. 모든 파란곰들이 거대한 공장에서 나오는 다양한 맛의 밀키트만 찾게 되어 요리라는 존재가 없어진 것이다. 나는 파란곰이 왜 밀키트만 먹는지 매우 궁금했지만, 이것 또한 엄마와 아빠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물어보지 못하고 참았다. 단지, 내가 생각한 건 밀키트가 요리하는 것보다 훨씬 가격이 저렴하고 맛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간편함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밀키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는 어느 누구든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빠는 밀키트를 금세 다 먹어치우시곤 누워버렸다.누워서 잠들기 전까지 예쁘고 잘생겼거나 유명한 파란곰들이 나오는 영상을 본다. 가끔 파란곰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건을 알려주는 영상도 보고. 파란곰들의 대표들이 나와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으로 서로 싸우는 영상도 본다. 왜 예쁘고 잘생긴 파란곰들이 웃고 떠드는 걸 보고같이 즐거워하는지 모르겠다. 나와 놀아주면 더욱 즐거울 텐데 말이다. 그리고 파란곰 대표들이 이해할 수 없는 대화를 하며 싸우는 걸 보고선 왜 똑같이 화내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그들이 하는 대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도 않고선 편들고 화를 내시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파란곰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가 누워서 영상을 보고 있는 사이에 엄마가 집에 들어왔다. 일하고 지쳐서 돌아온 엄마는 누워서 영상만 보는 아빠를 한심하게 쳐다 보았다. 그리곤 일상처럼 집안일과 돈문제로 말을 꺼내며 싸움이 시작된다. 전쟁통이 따로 없다. 불상한 내 처지와 환경에 권정생<몽실 언니> 몽실이가 생각이 났다. 힘들었던 전쟁통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온 몽실이의 감정을 생각했다. 오늘도 살벌한 전쟁이 시작될 분위기를 느끼곤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싸움이 잠잠해 질때까지 방문을 닫고선 책을 읽는다. 항상 같은 내용으로 싸움을 반복했고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각자 자기중심적으로 말하다가 결국 서로 지쳐서 끝이 난다.
방에 들어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내일 학교라는 곳을 처음 가는 날이었다. 책에 빠져서 학교 가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엄마가 방안에 들어오며 나에게 학교 갈 준비는 다 되어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곤 늘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쿠마야. 학교에선 공부를 잘해야 된단다. 그리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된다."
나는 궁금했다. 왜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야 되는지. 그리고 선생님 말씀을 왜 잘 들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이어서 이유를 설명하듯 말했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해야 나중에 성공하지. 그리고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나중에 후회를 안 한단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착한 아이가 되고 칭찬도 많이 받는 거란다."
나는 엄마가 해주는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일 학교를 가야 했기에 궁금한 걸 참고 알겠다고 말했다.
"그래 쿠마야 잘 자렴"
"네 엄마"
다음날 나는 엄마와 함께 학교라는 곳을 왔다. 운동장은 넓었고 운동장 앞에는 강당처럼 보이는 높은 무대가 보였다. 학교는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에서 나오는 교도소와 비슷한 형태로 되어있었다. 오래된 낮은 건물과 그 주위를 정문을 제외한 높은 담들로 막혀 있었다.
학교에 일찍 도착했는지 파란곰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학부모와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어린아이들이 정문으로 차례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