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끊을 수 없다면 즐겨라
정신과. 정식 명칭은 ‘정신건강의학과’다. 신경정신과로 불릴 때도 있었지만 오래전 신경과와 정신과로 분리되었다. 그래도 마냥 두 진료과를 완벽하게 분리하는 건 좀 어려워 보인다. 일본에는 실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정신과와 경증 우울장애 등을 돌보는 심료내과가 분리되어 있다는데 사실 환자인 내 입장에선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이 글은 너무나 길다. 온갖 TMI가 귀찮은 사람들은 볼드체만 읽기를 권한다.)
처음 대학병원 정신과에 방문했을 때, 열 살이었다. 당시만 해도 의료 기록이 남는다면서 아이들을 정신과에 데려가는 일은 낯선 때였다.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멀쩡하게 보이는 애들과 어른들이 섞여 앉아있었다. 꽤 연세가 지긋하신 교수님 방에 들어갔더니 젊은 선생님 여러 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대체 몇 가지의 검사를 받고 왔는지 모르겠다. 내 병명은 강박증과 불안장애. 인지행동치료를 시작했다. 약물을 복용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사실 없다. 학교까지 빠지면서 1년 넘게 병원 치료를 받고서야 내 증상은 사라지는 듯했다.
경험 상, 첫 내원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언덕 위의 하얀 집’처럼 정신과의 이미지가 부정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증상이 ‘정신질환’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초보 환자에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님이 일찍이 정신과에 눈을 뜨게 하셨기 때문에 조금만 불편하면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지만 주위에서 정신과 내원을 말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사실 정신질환은 말하자면 ‘환절기 비염’과 비슷하다. 그냥 내겐 ‘비염’이 있는 것처럼 심리적인 ‘장애’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갑자기 생기기도 하고 원래 있었지만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크게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경증일 때는 그냥 코 훌쩍거리고 재채기하며 넘어가기도 하지만 안 되면 누구나 이비인후과를 찾을 수밖에 없다. 약 먹으면 직빵이니까! 그런데 왜, 마음의 비염은 내 일상생활을 망가뜨릴 때까지 병원을 가지 않는 걸까?
내게도 면역력이 떨어지는 일은 더러 있었다. 2010년,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학기 초에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맴돌았다. 그건 괜찮았는데(사실 안 괜찮았지만) 3월 26일, 천안함이 피격되고 그 후로 남북 관계가 경직되면서 매일같이 신문 1면에 ‘전쟁’ 이야기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등교 후 휴대폰을 반납해야 했는데 그럼 하교하는 시간까지 온갖 가짜 뉴스들이 교실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우리 지역에 중요 시설이 있어 첫 공습 지역일 것이다’
‘전쟁이 나면 핵부터 터져서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더라’
‘내일이 고비라고 한다’
‘전쟁 나면…… 수능 안 봐도 되겠다!’ 등등등
하루는 진짜 전쟁이 날 것만 같은 생각에 교무실로 뛰쳐 가 조퇴를 하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바로 조심히 가라며 나를 보내줬는데 아마 지금 생각하면 식은땀을 흘리고 있어서 보내준 것 같다. 학교 언덕길을 내려서 집으로 가는 짧은 길에 행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전쟁’ ‘전쟁’ 소리만 들렸다. 현관문을 여는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며 울음을 터뜨리고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두 번째 정신과에 끌려갔다.
지방에서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에서 그나마 큰 종합병원에 갔다. 여러 검사를 각오하고 갔지만 내 증상을 5분 정도 듣더니 선생님은 약을 지어줬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맘에 들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약을 먹으면서 나는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약은 생각보다 빠르게 증세를 호전시킨다. 그런 이유로 나는 주위 사람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할 적에 쉽게 정신건강의학과를 권하고 또 추천한다. (사실 온갖 병원이라면 꿰고 있다) 그리고 되도록 지인의 추천을 받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엔 큰 병원을 가라고 말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모든 의사 선생님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약 처방’이나 ‘진단’에 있어 섣부른 케이스가 로컬 병원에 더 많기 때문이다.
내 발로 찾아갔던 세 번째 정신과가 문제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앞둔 시점에 불안함이 극에 달했고 어느 날 점심시간, 회사에 앉아 있다가 병원에 전화를 하고 그 길로 내원했다. 집 근처 상가에 있는 작은 로컬 병원이었는데 블로그를 좀 찾아봤을 때, 선생님도 진솔하고 분위기가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짧다면 짧고 규모에 비하면 긴 상담을 했다. 15분 정도. 초진이어서 긴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역시나 약을 한 주먹 받아서 귀가했다. 그런데 약을 먹고 일주일 정도 괜찮아지는 듯싶더니 증세가 반복적으로 또 점차 심해지기 시작했다. 약이 안 맞는 것 같아 다시 내원하면 상담은 5분 남짓, 그저 약을 바꿔줄 뿐이었다.
이 병원, 괜찮을까?라는 걱정을 하기엔 언제나 대기실에 환자들이 가득가득. 마음이, 정신이 아픈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을까. 그런 좌절감과 함께하는데서 오는 우울감을 잔뜩 느꼈다.
그러다 네 번째, 그러니까 지금의 병원과 선생님을 만난 건 작년이다. 가족과의 이별을 겪고 회사 스트레스와 각종 삶의 변화 가운데 공황이 찾아왔다. 이전의 불안들과는 전혀 다른 통증이었다. 실제로 몸이 아프고, 숨을 쉬기가 어려우며 잠드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정신병으로도 응급실을 내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물론, 응급환자로 분류되긴 어렵지만 약이 없다면 다른 선택지가 없다. 진료 자체는 다음 날 받게 되더라도 내원할 수 있다. 실제로 공황이 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갑작스럽게 상황을 맞닥뜨리면 당장 1분, 1시간을 지체하기가 어렵다는 공포가 찾아온다.
선생님은 여지없이 내게 약을 처방했다. 그런데 아주 약하게 처방을 했다. 증약을 하더라도 점차 조금씩 높여갔다. 호전되는 모습이 더딘 것 같아 답답했지만 그게 맞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약을 세게 써 버리면 처음엔 영향도 크게 받기 때문에 한 번에 상태가 호전되고 마치 명의를 만난 것 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과 약에도 내성이 생길 수 있으며, 그런 경우는 나중에 증세가 심해졌을 때 증약이 더 어렵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약이 너무너무 힘들어진다.
요즘의 나는 3주에 한 번 병원에 간다. 그리고 처음에 비하면 아주 적은 용량의 약을 받아 집에 돌아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병은 약을 꾸준히 먹는 것이 살 길이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의 신뢰 관계가 그 어느 과보다 중요하다. 증약도, 감약도, 단약도 의사와 합의 하에 진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음이 아프다면 꼭 병원에 가자. MRI로도 CT로도 나오지 않아도 병이다. 보이지 않아도 심해진다. 다행스럽게도 현대의 사람들은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반감이 전보다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방문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나 같은 경우는 어쩌면 평생 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덕에 좀 편안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끊을 수 없다면, 즐기자. 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