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선미 Feb 24. 2022

아버지는 엄마와 나 사이에 계신다

 

일주일에 두 번 엄마와 통화를 한다.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쓴다. 모든 것은 다 잘 되어가고 있고, 모두가 다 건강하고, 마지막으로 고양이의 안부를 묻는다. 

엄마는 아버지와 고양이와 살고 있다. 아버지도 엄마도 고양이도 다 고고령 노인들이다.

아버지의 안부를 물으면 엄마는 "맨날 그렇지 뭐, 다리가 아프다, 힘이 없다....자기만 아픈가" 마른 목소리로 대꾸하신다. 

가끔 아버지가 전화를 바꿔 달라고 하면 난 가슴이 덜컹한다. "얘, 주민세 나왔다. 얘, ㅇㅇ고지서 나왔다. 얘, 건강보험료 독촉장 왔다"  

우체부가 던져 놓고 가는 모든 고지서와 편지와 광고지를 종이가 뚫어져라 들여다 보는게 아버지의 중요한 소일거리 중 하나다. 매번 하는 말이 여기저기 돈을 내라는 거다. 


이번엔 다르다. 난 작년에 한국에 들어가서 여러 달 머무는 동안 아버지가 극구 꺼리는 주식을 샀는데 주소를 아버지 집으로 해두었던 거다. 일 년이 넘도록 비밀로 해 왔는데...

"얘, ㅇㅇ 회사에서 너 주주총회 오라고 편지가 왔어" 난 흠칫 놀란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주식을 산 걸 들키게 될까봐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당신이 읽고 있는 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서둘러 아무것도 아닌양 "아 그건 상관없는 거에요. 누가 잘못 보낸모양이네, 주민세만 좀 내주세요"하고 엉누리친다. 

전화가 오지 않을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긴장하기 시작한 지 꽤 된다. 혹시라도 받지 못한 전화가 있으면 서둘러 큰 오빠에게 전화를 한다. 

아버지는 엄마와 나 사이에, 가끔 전화를 바꿔달라고 해서 듣는 목소리로 계신다. 

작년에는 재작년보다 더 작아진 모습으로, 올해는 읽고 있는 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계신다. 


고양이가 잘 버텨줘야 할텐데... 걱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배추 세 포기 김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