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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미 May 03. 2022

기억 속으로

2021년 3월 6일

   호주의 해변이 그렇게 멋질 줄 몰랐다. 아주 고운 모래로 이어지는 바닷가는 탁 트여있고 발자국이 드문 모래 위는 깨끗했다. 모래는 어찌나 고운지 인절미를 묻혀도 될 것 같았다. 시드니에서는 기차를 타면 쉽게 바다로 갈 수가 있어서 좋았다. 아무 라인이나 타고 끝까지 가보면 바다와 만난다. 5월이었으니까 로마는 여름으로 가는 계절이지만, 시드니는 겨울로 들어가는 때라 저녁이면 제법 쌀쌀했다. 


  가을 트렌치코트를 입고 카이야마로 갔던 날 남편과 나는 한없이 펼쳐지는 바다의 너그러움에 감사해하며 참 오래 걸었다. 날씨도 바다도 공기도 모두 완벽하리만큼 좋았다. 카이 야마는 잘 정돈된 마을로 북적이지 않는 호젓한 도시였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 일거라고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바다 쪽으로 턱처럼 삐죽 내민 곳에는 고래처럼 물을 뿜어내는 바위구멍이 있어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원리는 아주 간단했다. 들고 나기를 반복하는 물이 밀려 들어올 때, 어떠한 힘으로 나가는 물보다 들어오는 물이 더 많아지는 순간, 물은 나갈 길을 찾는데, 급하면 바위에 생긴 작은 돌 틈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이다. 뻔히 원리를 알지만 물은 예측 없이 치솟아 올라, 그 갑작스러움에 사람들은 수선스럽게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마치 바다가 인간들과 대화라도 하는 것처럼, 그 주위를 걷는 사람들은 잠시 서서 수선스러움을 즐기는 것이다. 


  호주가 섬이라는 것을 시드니에서는 잘 못 느끼지만 이렇게 바다를 만나러 가면 깨닫곤 했다. 야자수 나무가 심어진 해안가, 푸르고 푸른 물, 깨끗한 바다에서만 날 것 같은 바다 냄새, 바다를 바라보게 지어진 현대적인 집들, 그리고 해안가의 암반을 이용해 만든 수영장들. 호주 사람들의 바다사랑을 느끼게 해 주던 풍경들이다. 


  느린 기차를 타고 돌아오다가 카이야마에서 멀지 않은 곳의 한 역을 지나게 되었다. 봄보. 우리는 무작정 여기서 내렸다. 반원의 긴 만이 바다를 끌어안고 있었고, 가끔 개를 산책시키는 몇몇이 있을 뿐 해변은 텅 비어있었다. 물을 타고 떠 밀려온 작은 나뭇가지들, 조개껍질들, 새의 깃털, 해조류 들을 들여다보며 걸었다. 마치 오늘 걷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천천히 걸었다. 목이 긴 운동화 속으로 모래가 들어오고 해가 서서히 기울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시드니가 지금껏 보았던 도시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자기에게 선택의 여기가 있다면 단연코 시드니에서 살고 싶다고 말할 거라며 아낌없는 애정을 보였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도시에는 화려한 색의 페라리 자동차가 로마에서보다 더 자주 보이고, 거리에는 아시아의 모든 국가에서 온 것 같은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높고 세련된 사무실에서는 정장이 잘 어울리는 키 큰 백인들이 일을 했다. 가게에서 식당에서 카페테리아에는 키가 크고 잘생기고 예쁜 백인들은 별로 없었다. 키가 큰 백인들은 높은 빌딩에서 일하고, 키가 작은 아시아인들은 높은 빌딩의 낮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 바닷가에서는 그런 생각도 필요 없었다. 남편은 기분이 좋은지 계속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고 난 그의 흥이 깨지지 않게 대꾸하며 계속 걸었다. 


  내가 녀석의 소식을 들은 것은 이틀 전이었다. 겨우 며칠 전에 우리는 시드니로 여행을 왔고 이틀이 겨우 지났을 때 사달이 났던 거다. 서른 살의 조카는 어느 날 늘 타던 배를 타고 늘 하던 대로 어망을 풀다가 바다에 빠졌고, 가족들은 여러 날이 지나도록 그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 중에 겪기에는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로마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시드니로 여행을 온 남편은 나와는 다르게 대처했다. 그리고 나도 합리적으로 대처하길 원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남편은 조카의 생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대신 이 황망한 소식을 전해준 오빠를 원망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와 나의 처지를 알면서 소식을 전한다는 게 좀 사려 깊지 못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남편의 입장도 있었고 또 내가 다시 들어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기에 우린 우리의 여행 일정을 그대로 마치기로 했다. 그저 최악의 소식만은 안 들려오길 바랄 뿐이었다. 우린 걷고 다시 걸었다. 잠깐씩 즐겁게 지나가는 순간들이 있었고, 시원하고 청량하게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나는 멀리 다른 한 편의 바다를 계속 생각했다. 해는 점점 짧아져서 바다의 포말이 하얀 띠로 나타나고 사라지길 반복했고 우리는 다시 시드니로 돌아왔다. 


  우리는 날마다 기차를 타고 외곽으로 나갔다. 날렵하게 각이 잡힌 도시와는 달리 기차를 타고 두 시간만 나가면 무척 느긋한 풍경의 도시들이 나온다. 외곽의 도시들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기념품 가게들, 직접 구운 사과파이를 파는 집, 동네 청년들이 점심을 먹는 카페테리아들, 조금은 촌스러운 커피집, 관광안내소들이 있다. 음식에 대해 주관이 뚜렷한 남편은 식당을 고르는데 무척 세심하다. 호주는 그러나 그런 정교한 필터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같았다. 거의 고만고만한 메뉴에 고만고만한 인테리어를 한 식당들이 대부분이었으니 결국 먹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블루마운틴에서는 수많은 유칼립투스를 보았고 그 나무들이 만든 숲에서 길게 오르는 푸른 안개를 보았다. 산은 푸른 안개로 신비로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공감을 했다. 기차는 비교적 한산했는데 말할 수 있는 좌석과 조용하게 있어야 하는 좌석이 구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조용한 기차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을 배려한 것처럼 보였다. 난 이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조용하게 있어야 할 좌석에서 떠드는 사람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주문하는 사람들에게 말 없는 응원을 보냈다. 


 나는 블루마운틴 여행이 즐겁지도 않았고 짜증 나지도 않았다. 난 종종 녀석을 기억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고 불현듯 녀석이 생각나면 무척 피곤했고 우울했다. 생사를 모르는 조카를 기억해야 했고 또 기억하지 않아야 했다. 기차 안에서, 거리에서, 카페에서 작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 모든 것들과 조카를 연결하지 않으려 했다. 난 여행에 충실하고 싶었고 남편을 배려하고 싶었고 또 가족으로서 위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나와 남편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뿐이었다. 여행은 계속되었고 나는 극도로 피곤해져 갔다.   


  서울로 떠나기 전날 조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돌아와서 장례식장에 갔다. 남은 가족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장례를 치르느라 분주했다. 나는 슬프기보다 외로웠다. 가족들과 반드시 해야 할 무엇인가를 함께하지 못한 것 같고, 거기에서 오는 낯섦 같은 것을 느꼈다. 그건 슬픔과는 다른 것이었다. 


  왜 이 기억 속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봄보 해변을 걸으며 아름답고 또 막막했던 그 저녁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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