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판소리연구소 대표 김미경
이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 나이가 됐고, 최근 한없이 쪼그라드는 일이 생겨 폰으로 찍어둔 일곱 글자를 멍하니 들여다봤다. ‘인생은 새옹지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작은 방송국 프리랜서 작가로 일한 지 16년 차. 아침에 눈을 떴는데 회사에 가기 싫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다.
모멸감. 보험으로 칠갑된 방송을 시작했고, 일 년이 지난 지금 나에겐 두 문장만 남았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읆는데 보험 공부 좀 해라.’ , ‘출연자들(보험설계사)이 (작가) 욕을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들어라.‘ 작가 교체를 요구하는 보험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했고, 미안한 게 없는데 미안하다고 했더니 저 두 문장이 날아왔다.
나에게 보험 공부를 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담당 피디나 국장 아닌가? 보험 회사 대표는 피디인가 보다. 밥그릇을 건드리네? 보험 회사 아저씨가 ‘날려라’고 입에 올릴 수 있는 내 처지를 명확히 알게 됐고, 서당개를 운운해? 이 날 이후부터 그는 나에게 ‘서당개’ 가 됐다. 이미 잔잔한 실금들이 나있던 관계. 서당개는 보험 상담을 요청하는 청취자에게 하는 전화 응대에 폭발이 됐다. ‘출연하는 분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험 설계사이고, A는 이렇게 말했는데, B는 어떻게 말하나, 비교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원고에는 보험 설계사 대신 ‘전문가’ 라는 말을 쓰는데,나는 이 말이 이상하고 희한하고 기이하다. 유치원 선생님 대신 ‘육아 전문가’ 라고 하고, 의사 대신 ‘치료 전문가’라고 해야 되나. 그래서 저렇게 응대를 했는데 서당개는 훼방을 놓는다고, 마치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공룡이 내뿜는 불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그간 감정 상할 일들을 서로 주고 받았다. 그런데 역량을 비하하거나 작가 교체를 입에 올리는 건 과하고 넘친다. 거기다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동료들이 ‘내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고, 나는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한없이 쪼그라들어서 공벌레가 되겠다 싶을 때, 그가 전해준 일곱 글자는 따뜻한 허브차가 됐다. 한숨 돌리라고, 잠깐 쉬어가자고. 그가 직접 연출하고 출연하는 판소리 공연에 초대를 해줬다.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브로슈어에 약력을 가득 채운 유명한 남자 명창이 나올 때는 조금 졸다가, 마지막 피날레 그가 무대에 등장할 때는 마치 내가 공연하는 것처럼 떨리고 설렜다.그리고 가진 식사 자리.
- 스무 살, 늦게 판소리를 시작하셨어요. 무턱대고 TV에 나오는 명창에게 전화를 했고, 수년간을 울산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셨고요. 그 열정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 남편이요. ‘힘들지’ 뭐 이런 말도 안해요. 이수 받는 과정도 그렇고, 장거리 교통비까지 돈이 많이 들었는데 지원해 주더라고요. 말없이 지지해 주는 이 남자를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 싶었어요.
한 사람. 정서적으로 가난할 때도,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도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는 공벌레를 일으켜 세웠다.
- 작가님 만나면 늘 기분이 좋아요.
- 선생님 알고 보면 저 미친년이에요.
- 저, 미친년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