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푼당 대표 이유림
어린 사장은 어디로 갔을까.
무턱대고 들어가서 손글씨를 부탁했는데도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흔쾌히 써줬다. 가게도, 사장님도, 손글씨도 모두 앳되고 풋풋하다. 그런데 메시지는 묵직했다. 책임과 용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 가게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손님들에게 ‘들어오세요’라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학원 근처 늘 주차하는 두 곳 중 주로 하는 곳이 아닌 용케 자리가 비어 있으면 하는 곳이 있는데, 그 언저리에 얼마 전부터 빵집이 보였다. 후미진 골목, 퇴근길에 본 가게는 이미 문을 닫은 뒤였고, 식빵 모양이 앙증맞게 그려진 간판 불빛에 의지해 상호명을 봤는데, 그 이름을 보고선 안 가볼 수 없었다. ‘부푼당.’ 부푼당이라니. 빵집과 어울리는 이름 대회에 나가면 못해도 3등은 할 것 같은 상호명을 지은 사장님과 빵이 궁금했다. 늦은 오후,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부푼당을 일부러 지나치기도 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뉴욕 브루클린에 있을 법한 빈티지 취향을 듬뿍 넣은 가게 외관과 안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문을 통해 사장님을 보곤 꼭 한번 들러야지 했다.
왜 그랬을까. 빵도 안 좋아하면서 새로 생긴 빵집에 왜 그렇게 가고 싶었을까. 일단 부푼당 이름에 꽂혔고, 늘 혼자 빵을 만들고 있는 앳된 사장님에게 손글씨를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속셈이 있었다.
무엇보다 ‘망할 것 같았다.’ 처음 가게를 봤을 때 든 첫인상은 ‘엥?’이었다. 사람은 잘 다니지 않는, 좁은 골목에 공을 들여놓은 빵집을 보면서 ‘될까?’ 싶었다. 인테리어 비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고민을 많이 한 상호명과 사장의 감성으로 승부하는 빵집을 보고 주제넘고 오지랖 넓게 응원을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앞가림도 간신히 하는 소상공인 4년차이지만 이미 지나오고 겪어봐서 보낼 수 있는 같잖은 격려.
- 사장님. 체다통식빵이 맛있더라고요.
- 버터통식빵도 맛있어요. 끼워드릴게요. 맛 한번 보세요. 어차피 지금 못 팔면 팔지도 못해요.
체다통식빵을 사러 두 어번 더 갔었고, 결국 부푼당은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임대. 손바닥 정도 크기의 두툼한 통식빵을 끼워주던, 장사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사장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어리숙하고 모자란 내가 떠올랐다.
전화가 아닌 방문 상담을 요청한 어머니가 있었다. 신규 상담이 아닌 재원생 어머니가 상담을 위해 학원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학원을 찾아온 어머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계속 학원을 다니고 싶은데, 동선이 길어져서 아이가 힘들 것 같다고 고민이라고 했다. 붙잡아야 한다. 그런데 입으로는 옮겨도 된다고 나불댔다. 아니 ‘기꺼이’ 옮겨도 된다고 했다. 여름에 헉헉 거리면서 올 이유가 없다, 집과 가장 가까운 논술학원에 보내면 된다, 서연(가명)이라면 마음 놓고 보내줄 수 있다, 어디에 가도 잘할거다. 어머니와 손까지 잡으면서 배웅을 한 뒤,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곧 후회했다.
- ‘이렇게 문을 열어놓고 학원을 안 할 생각인가 보다, 돈을 쌓아두고 있어서 학원은 그냥 재미로 하는가 보다, 수업에 대해선 말도 안하고 그저 가라니 미친년.’
그런데 진심이었다. 나도 어머니도. 서연이는 어느 학원을 가도 잘할 아이라는 게 내 진심이었고, (책에 진심인 어머니 덕분에 서연이는 이미 울산남부도서관에 있는 대부분의 어린이책을 읽은 아이였다.) 학원을 그만둘지 고민이라고 털어놓는 어머니도 진심이었다. 동네 학원, 내일이라도 끊으면 그만이다. 늦은 저녁, 일을 마치고, 학원 옮기는 걸 상담하러 온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할 순 없지 않았을까. 그때는 후회를 했지만 생각을 고쳐먹었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론을 내렸다. ‘다음에 비슷한 경우가 생긴다면 한 번은 붙잡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