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변종수
울산신문에 실린 택시 기사의 글을 보고 언젠가 봤던 신문 한 면이 떠올랐다. 배우, 편의점 점주, 기자 세 명의 글이 나란히 실렸고 그 중 편의점 점주 글이 제일 재미있었고 기자가 꼴찌였다.
택시 운행을 쉬는 월요일 낮, 한산한 해수욕장 맞은편, 손님들로 미어터져서 알바생 두 명이 정신 못 차리는 대형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신문에 실린 사진은 젊을 때 모습이구나, 그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52년생 택시기사는 손글씨를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상식을 모르면 무식한 자요. 정의를 부정하면 비겁한 자요. 양심을 속이면 범죄자다.’
- 택시에도 써놓은 말이에요. 손님이 찢었지만.
- 찢었다고요?
-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그 별의별 사람은 무식해서 그랬을까, 비겁해서 제 발 저렸을까. 범죄자라 켕기는 구석이 있었을까. 아니면그저 술을 마시고 ‘꼬장’을 부린 걸까.
- 신문에 실린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신문사에서 섭외가 온 건가요?
- 투고를 해요. 경상일보에 10년간 투고했고, 몇 년 전부턴 울산신문에 하고 있습니다. 의식이 있는 한 비평과 비판을 해야죠. 아, 사진은 글 적을 때 보면 사진 첨부하는 곳이 따로 있어요. 한번 해두면 다시 할 필요 없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 귀하다. 군대 휴가를 나와 동아리방에서 짜장면을 먹는 영범이가 생각났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영범이는 애순이와 결혼할 수 없었다. 여자친구 애순이를 ‘돌려까고’ 있는 친구의 말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짜장면이나 처먹고 있던 영범이는 애당초 똑똑한 애순이에겐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는 상대. 애순이의 또 다른 친구가 반박을 하고 있는데도 그는 짜장면 귀신에 불과했다. 세상엔 나를 포함해 수많은 영범이가 있다.
- 원래 글을 쓰셨나요?
- 회사 다닐 때 사보에 글이 실리곤 했습니다. 택시 운전하기 전에 현대자동차에 다녔어요. 택시 기사를 낮게 보고 무시하는 보편적 정서가 있죠. 그런데 요즘은 퇴직한 사람들이 택시 많이 해요.
그의 하루는 오전 6시 15분에 집을 나와 오후 7시에 마친다. 직장인들의 출근과 퇴근에 맞춘 일과다. 15년 동안 택시를 운전하면서 다양한 군상을 마주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40대 정도 됐을까, 여성분이었는데, 건너편에 있었어요. 그래서 차를 돌려갔더니 타기 전에 인사를 해요. 90도로 고개를 숙여서. 잊을 수가 없어요.
택시는 이용자가 침묵을 원하는 공간으로 많이 꼽힌다. 티머니모빌리티는 앱에서 택시를 호출할 때 ‘대화 없이’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미용사나 택시기사가 말 걸지 않기를 원한 적이 있다에 ‘그렇다’ 라고 답변한 사람이 70% 가 넘고, 맞장구치는 행위가 피곤하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2026.1.12. 조선일보) 침묵할 권리, 대화 선택권 등장에 어떻게 생각할까.
- 그런 게 있어요? 난 몰랐습니다. 공부를 해야겠네요. 그건 그렇고 이렇게 손글씨 적어가서 뭐해요?
- 아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책 내면 좋고요. 그저 제 삶의 작은 낙이에요.
독자보다 작가가 많은 시대, 그래서 제대로 된 책이 드물어지는 세상에 내가 한몫을 할까 봐 얼굴이 붉어진 채로 대답했다. 나의 미지근한 답변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연민을 느꼈는지 카페 통창 너머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 이렇게 하면 잘 안 될 것 같은데. 저기 봐요. 나는 일산해수욕장 모래 유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고, 태화강 홍수 대비도 늘 얘기해요.
- 저보다 기자를 만나는 게 더 좋으셨겠어요.
- 방송사 문도 두드렸지. 내 말을 안 들어줘서 그렇지.
할 이야기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짱짱한 택시기사는 간혹 지난 세월을 머금은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그를 먼저 보내고 둘 데 없는 시선을 통창에 뒀다. 그가 모는 흰색 그랜저 택시가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 백화점에서 나오는 엄마와 아이를 태웠단 말이지. 그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둥글고 판판하고, 피자, 그래 피자를 샀나 봐. 피자 냄새가 택시 안에 진동을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이한테 그랬어요. 엄마도 들으라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 피자를 사서 택시 타고 집에 가는 게 행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