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작년 봄, 꽃쇼핑을 그만하겠다고 결심도 해봤고, 꽃쇼핑을 또 했다고 옆지기에게 용서도 빌어봤다. 하지만 4월에는 참을 수 없다. 마당의 빈자리와 텅텅 빈 화분을 채우고 싶은 꽃쇼핑의 유혹을.
꽃을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될 일은 아니다. 또 옆지기의 등짝 스매싱을 한 번 견디고 나면, 올해도 우리 집 마당엔 꽃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래서 올해의 4월에도 다시 한번 꽃을 잔뜩 들이기로 결심했다.
마당 여기저기를 채울 조금은 색다른 꽃이 없을까 인터넷 꽃가게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종종 애용하는 가게인 '도개화원'이란 곳에서 화분에 심을 '로벨리아 캠브릿지 블루' 등 세 종류를 주문. 그리고 마당의 빈자리에 심을 '카타난체 케룰리아 블루', '자시오네 몬타나 블루', '델피늄 매직파운틴 체리블라썸'이라는 발음하기도, 외우기도 정말 힘든 이름의 꽃을 주문했다.
또 3월 말 공동구매로 들인 숙근 꽃양귀비의 생존에 고무받아, 도개화원에서 추가로 꽃양귀비 '어메이징 그레이'와 '윈드송' 두 종도 함께 주문했다. 이 아이들도 마당에 잘 자리 잡으면, 화려한 꽃양귀비가 하늘 거리는 초여름의 이국적인 마당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4월 초중순이면 이미 꽃이 피기 시작한 로벨리아들을 꽃가게에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주문해서 화분에 심은 로벨리아 모종은 이제 막 크기 시작하는 아이로, 꽃을 보려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더 키워야 한다. 그래도 일반 꽃가게에서 흔하게 보는 로벨리아와는 다른 특별한 로벨리아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두근두근 설레며 기다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비교적 작은 키인 초장 20센티 전후의 자시오네라는 꽃은, 작년에 파라솔 버베나가 자리 잡고 있었던 장미 가든 에버스케이프와 퍼퓸 에버스케이프 사이에 심었다. 파라솔 버베나는 재작년과 작년 모두 월동을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제 파라솔 버베나에 대한 미련은 보내고, 그 자리에는 노지월동을 잘한다고 하는 자시오네가 장미 아래에서 잘 어울려 피기를 바랄 뿐이다.
키 120센티 정도의 대형종 델피늄 매직 파운틴은 나무벽 앞쪽에 심었다. 나무벽 앞쪽의 왼편에는 작년 초가을에 자리를 옮긴 키가 큰 부처꽃, 그리고 오른편엔 역시 키가 큰 새로 들인 델피늄이 클레마티스를 사이에 두고 형형색색의 꽃으로 나무벽을 장식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키 60센티 전후의 카타난체라는 꽃은 역시 이 정도 키의 꽃들이 모여 있는 우리 집 중심 야생화 구역 빈자리에 낙점해서 심었다. 짙은 파란색을 가지고 있는 카타난체의 꽃으로 여름의 정원을 시원하게 장식해 볼 계획이다.
다음으로 대림원예종묘에서 휴케라와 알케밀라를 데리고 와서 작년에 꽃고비를 몇 개 심었지만 모두 실패했던 반음지 자리에 배치했다. 잎의 관상 가치도 훌륭하고 겨울에도 상록으로 버티고 초여름에는 올망졸망한 꽃도 제법 풍성하게 올리는 휴케라야말로 이 구역의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레몬색 노란 꽃이 풍성하고 상큼하게 피는 알케밀라도 반음지에서 잘 살고 노지월동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선택했다. 딴딴하지만 밝은 연두색을 가지고 있는 알케밀라의 커다란 잎이 심고 나서 며칠, 적응을 잘했는지 반음지 구역에서 환하게 존재감을 밝혀 주고 있다.
또 요즘 핫하다고 하는 뱀무도 우리 집 마당에 없으면 왠지 심심할 것 같아 '템포 오렌지'라는 품종으로 데리고 왔다. 이 아이는 양지 구역 수선화 앞쪽에 심었는데, 잘 자라면 30센티까지 크는 꽃이다. 그러면 수선화가 진 후에 하늘하늘 춤을 추는 모양새로 빈자리를 메꿔줄 것이다.
지난 1월 겨울 파종 후 무럭무럭 자라난 팬지와 비올라를 대부분은 마당에, 일부는 화분에 나누어 심었다. 모종을 키우면서 뒤죽박죽 섞여 버려 색깔별 맞춤으로 마당과 화분에 심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심으면서 행복이 가득했다. 이렇게나 듬뿍 팬지와 비올라를 마당에 심을 수 있다니. 파종과 모종 키우기는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그 귀찮음을 극복해 내면 큰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가드닝의 참 재미 중 하나가 분명하다.
팬지와 비올라를 다 심고 나니 여름, 가을꽃을 위한 다음 파종 계획이 필요했다. 그래서 백일홍과 메리골드 씨앗을 다양하게 주문했다. 4월 중순쯤에 파종을 하면 팬지와 비올라가 사라지는 여름, 가을마당의 빈 여백을 또다시 다양한 일년초들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쑥쑥 크는 꽃들이 있다면 지난겨울을 보내면서 실패한 아이들도 있다. 플랜트 박스에 심었던 튤립 구근들이 모조리 썩어 버렸다. 눈과 비가 특히 많았던 지난겨울, 튤립 구근을 심었던 플랜트 박스를 눈 비 그대로 다 맞게 놓아둔 것이 실수였다. 다음에 구근을 또다시 화분에 심게 되면 눈과 비로부터 안전한 장소에 화분을 보관해야 할 것이다.
또 작년에 꽃이 진 후 구근을 캐지 않고 땅 속에서 그대로 2년 차가 된 튤립 구근들 중 1/3 정도만 다시 꽃대가 올라오고 있다. 그래서 올해 봄 튤립 농사는 실패. 풍성한 튤립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완전히 빗나갔다. 원예용 튤립은 매년 반복 개화를 하지 않고 이처럼 서서히 소모된다고 하니, 올해 가을에는 튤립 구근을 다시 보충해 2025년 4월의 풍성한 튤립을 기대해 보자.
장미 '퀸 오브 하트'의 위쪽 가지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다 말라죽었다. 그래서 새순이 나지 않는 위쪽 가지들을 모조리 싹둑싹둑 잘라 주었다. 그러고 났더니 다시 조그마한 장미로 초기화되었다. 작년 봄 풍성하게 꽃을 피웠던 이 아이가 아련하지만, 다른 멋진 장미들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요즘이다. 퀸 오브 하트가 또다시 말썽을 피우면 우리 집 정원 원년 멤버인 이 녀석과의 옛사랑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들일 수밖에.
반음지 구역의 서양 솔체들과 가일라르디아 메사가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월동에 실패한 것인지 아직 깨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매일매일 들여다보고 있는 나의 마음을 이 아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녀석들이라고 원망을 하고 싶지만, 혹시 이 녀석들 영원히 안 깨어나면 이 자리에 무슨 꽃을 다시 심어야 할까 여기저기 온라인 꽃가게를 벌써부터 들락날락하고 있다. 그런 나도 나쁜 놈인 것 같기도.
무스카리 블루 스파이크가 한창을 지나 시즌 종료를 앞두고 있다. 뒤로 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파란 빛깔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청초해진다. 4월 초가 되면서 수선화도 개화했다. 하지만 두 송이 세 송이 왠지 빈약해 보여 올해 가을에는 가능한 구근을 꽉꽉 채워 내년에는 풍성하게 꽃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햇빛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수선화 '딕와일든'과 '브리달 크라운'은 내년에도 뒤통수만 보겠지만.
눈치 없이 너무 일찍 피어버린 튤립 한송이의 존재감이 대단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튤립은 4월 중순쯤에 본격적인 개화를 시작했다. 월동을 한 물망초도 꽃봉이 다글다글, 클레마티스도 작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꽃봉이 한가득이다. 브루네라도, 차이브도 열심히 꽃대를 올리고 있다.
이렇게 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갈색에서 연두색으로,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그리고 그 초록의 바탕에 노랑, 빨강, 주황, 파랑, 하양. 새로운 색깔이 하나 둘 점점이 번져 나가는 꽃의 노래와 마법의 시간이.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4년 4월 1일~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