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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만화 Jul 02. 2024

일곱 빛깔 여름꽃

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6월 중순이 좀 지났을 뿐이지만 35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파랗고 탱글탱글한 미모를 한창 자랑해야 할 엔들레스 썸머 수국의 꽃잎이 타들어가고 색이 점점 희멀건해졌다. 꽃이 그다지 없는 초여름의 6월 한 달을 든든하게 버텨줘야 하는 엔들레스 썸머 수국이 때 이른 더위에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을 때, 일곱 빛깔의 여름꽃들이 마법같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스토케시아. 수레국화를 닮은 다년생의 숙근초인 이 꽃은 초여름의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엔들레스 썸머 수국의 파란 빛깔과 바통을 터치해 6월의 마지막까지 마당을 시원하게 장식한다. 꽃의 크기도 7~8센티로 비교적 큰 편이고, 키 50 센티에 폭도 딱 이 정도니 화단의 앞쪽으로 배치해서 키우는 것이 좋다. 또 꽃대가 튼튼하고 잎도 생기 넘치며 월동 능력 최고에 더위에도 강하니 더할 나위 없는 다년생 꽃이다. 단점이 있다면 개회기간이 2주 정도로 짧다는 것.

파랑과 보라 중간쯤의 스토케시아


다음은 샤스타데이지 마돈나. 컬러풀한 여름꽃들 사이에서 하얀고 노란 샤스타데이지 꽃은 파란 여름 하늘에 흰 뭉게구름, 태양 같은 모습이다. 작년에 키가 큰 일반 샤스타데이지를 다 뽑아내고, 그래도 샤스타데이지 한 두 뿌리는 마당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들인 아이가 바로 키 작은 왜성종 마돈나. 단 한 뿌리임에도, 지난겨울에 월동하고 덩치를 키우더니 풍성한 꽃을 보여주고 있다.    

키가 작은 왜성종 샤스타데이지 마돈나

코레옵시스 얼리 썬라이즈가 슬슬 1차 개화를 마칠 무렵 코레옵시스 리틀 뱅 레드가 '치티치티뱅뱅' 초여름 마당에 경적 소리를 울리며 등장했다. 강렬한 와인 빛과 진득한 노랑이 섞여 고혹적인 매력을 뽐내는 코레옵시스 리틀 뱅 레드는 꽃 하나하나의 크기는 1센티 정도로 조그만 아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셀 수 없이 다글다글 개화하며 존재감만큼은 절대 뒤처지지 않는 꽃.     


금속 같은 느낌의 파란 빛깔을 뿜어내는 오묘한 에린지움 꽃이 마당 한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녀석은 꽃대가 올라온 후 꽃이 다 생기고 한참을 기다려도 파란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파란 빛깔의 에린지움 보기를 포기할 무렵, 어느 날 갑자기 은은하고 차가운 느낌의 메탈 블루를 갑자기 뿜어내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녀석이긴 하지만 마당 한쪽에서 혼자 삐쭉하게 큰 키로 솟아 있으니 뭔가 애매한 느낌. 그래서 내년에는 다른 꽃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키가 좀 큰 꽃 옆으로 자리를 한 번 옮겨 주어야 할 것 같다.

금속 같은 느낌의 에린지움과 초여름의 꽃들


여름꽃의 대명사 중 하나인 플록스도 개화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핀 플록스는 블루 파라다이스. 하지만 이름과 다르게 이 녀석은 거의 하루종일 보라 분홍에 가까운 꽃색을 보여준다. 사실 플록스 블루 파라다이스는 아침 일찍 해뜨기 전에만 파란색을 보여주는 신비로운 꽃이다. 그래서 잠꾸러기들은 이 꽃의 이름과 생김새가 틀린 것에 당황할 수 있지만, 아침형 인간이 거의 대부분인 정원지기들은 플록스 블루 파라다이스의 신비한 파란색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침 일찍에만 볼 수 있는 플록스 블루 파라다이스의 파란색


여름꽃의 최강자 에키네시아도 개화를 시작했다. 한 달 동안의 장마와 폭우에도, 한여름의 뜨거운 폭염에도 쓰러지지 않고 꼿꼿하게 흐트러짐 없이 꽃을 피우는 에키네시아다. 또 많은 햇빛을 필요로 할 것 같지만, 의외로 우리 집 마당과 같은 반음지 환경에서도 잘 크는 생명력이 뛰어나고 무난한 꽃이다. 그러다 보니 분홍, 노랑, 주황, 하양 등 다양한 색깔별로 하나 둘 들여서 키우게 되었고 우리 집 마당에서 가장 많은 단일 개체수를 자랑하고 있다. 에키네시아가 만개한 풍경은 다음 일기에서.     


샤스타데이지와 마찬가지로 작년에 꽃 보고 모조리 뽑아낸 후 딱 한 주 남겨 두었던 루드베키아가 구석에서 살아남아 진한 노랑꽃을 피워냈다. 태양을 닮은 루드베키아는 여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꽃 중 하나로, 정원이 넓다면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다양한 종류로 키워 보고 싶은 녀석이다.


서양톱풀도 절정이다. 우리 집 톱풀은 어쩌다 보니 무채색으로만 심겨 있는데, 다른 원색의 여름꽃들과 함께라면 이런 무채색이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요즘이다. 톱풀은 마구 번지지만 않아도 훨씬 더 많이 사랑해 줄 수 있는 꽃이다. 내년 봄에는 번지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해, 다른 꽃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예정이다.        

무채색의 서양 톱풀이 절정


초여름의 꽃들이 만개해 있지만 꽃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6월의 가드닝 큰 노동 중 하나는 장미 전정이다. 우리 집은 장미가 몇 주 없어 큰일이 아니긴 하지만.


장미꽃이 6월 초까지 모두 지고 나면,  장마와 폭염을 대비하고 병해충도 예방할 목적으로 장미 가지와 가지 사이, 잎과 잎 사이로 시원하게 바람도 잘 통하고 햇볕도 잘 받으라고 가지를 잘라준다. 그래서 안쪽으로 자란 가지와 연필보다 가는 가지, 또 서로서로 겹치는 가지 등을 정리해 주었다. 또 너무 크게 자라면 관리도 힘들고 작은 정원에서는 부담스러우니 위로 높게 솟은 가지들을 잘라 키도 낮췄다.      


특히 덩굴장미 보니를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올해 꽃 농사에 실패한 보니는 어차피 봄에만 피는 한철 장미인지라 마음먹은 김에 굵은 가지 몇 개만 남기고 아래위 모두 싹 잘라서 정리를 했다. 쳐내고 보니 안쪽에 있던 잎과 줄기들이 바람도 안 통하고 햇볕도 못 받아서 많이 상해 버린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가을까지 굵은 줄기 위주로 몸집을 키운 후, 내년 이른 봄 욕심내지 않고 우리 집에 맞는 크기로 비교적 짧고 탄탄하게 줄기를 수평으로 눕혀서 유인할 예정이다.

덩굴장미 보니의 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3월, 6월, 9월은 장미에게 비료를 주는 시기다. 전정을 마치고 개운한 마음으로 지난 5월에 꽃 피워 내느라 고생한 장미에게 로즈골드라는 비료를 잊지 않고 챙겨 주었다. 이 비료의 힘으로 올해의 여름과 가을, 다시 한번 꽃을 힘내서 피워주길 기대해 본다.     


장미 전정 외에 초화들도 다듬었다. 장미 밑에서 다른 꽃들과 뒤엉켜 산발한 아이처럼 칠렐레 팔렐레 눈에 가시 같았던 차이브를 어떤 아이는 뽑아내고, 어떤 아이는 싹둑 잘라서 정리를 했다. 또 가든 에버스케이와 퍼퓸 에버스케이프 사이에서 올해 봄만 하더라도 이렇게 쑥 자라나 복잡해질 줄 몰랐던 숙근 제라늄을 정리하고 나니 마당이 좀 말끔해졌다.


장미의 가지를 자르는 것도, 뒤엉켜 버린 초화들을 정리하는 것도 조금은 과감할 필요가 있다. 가드닝 생초보 시절, 1년 차까지는 모든 가지, 모든 잎, 모든 꽃들 하나하나를 다 품고 갔다. 어떻게 키운 장미인데, 어떻게 피운 꽃인데, 이런 녀석들을 자르고 뽑아내다니. 내 손을 잘라내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적당히 비워내고 잘라내야 더 크고 아름답게, 더 곧고 건강하게 꽃을 피운다는 것을. 그러니 과감하게 쳐내고 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 잘라내고 들어낸 곳에서 이내 튼튼한 새순을 올린다.     


올해의 여름에도 다시 한번 잉글리시 라벤더의 꽃을 수확했다. 이 아이를 잘라서 말리면 1년이 지나도 그 모양과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라벤더의 향기를 집안으로 새롭게 재충전하고 싶어, 이 아이가 서서히 시들어 가는 6월 말이 되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라벤더 꽃을 잘 말려 집안에 품고 있으면,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초여름의 기운을 언제까지나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장마가 시작되면서 우울해질 때는 라벤더의 향기를 맡아보자. 얼마 전까지 싱그러웠던 초여름의 기분 좋음이 가득 찾아온다.  

6월 말의 연례행사 잉글리시 라벤더 수확


정원지기들에게는 겨울의 한파만큼이나 힘든 시기인 장마가 찾아오는 6월의 끝이다. 이번 장마 기간에 우린 또 얼마만큼의 꽃을 잃을까, 이 장마가 끝나면 또 얼마만큼의 병해충이 꽃과 나무를 괴롭힐까 한숨과 걱정이 몰려온다. 그러나 미리 너무 걱정은 말자. 정원의 땅을 잘 준비했다면, 자름과 비움으로 꽃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있다면, 이 꽃들은 장마와 더위를 꿋꿋하게 견뎌내 다시 또 새로운 생명을 피워줄 것이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4년 6월 16일~6월 30일)

2024년의 장마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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