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오락가락 장마에 주말이면 또 비가 오고, 그래서 마당 일이 느슨해지는 7월 초의 날씨다. 정원지기가 마당일을 등한시하는 이 기회를 틈타, 각종 애벌레들은 장미 잎을 다 뜯어먹으며 뼈장미 만들기 대환장 파티를 벌이고 있다. 이 모습에 내 마음도 활활 타버려 하얀 재만 남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마당일은 해야 한다.
7월이 시작되자마자, 잠시 장마가 멈춘 사이 첫 번째로 한 마당 일은 엔들레스 썸머 수국의 시든 꽃 정리와 가지치기였다. 가드닝 생초보 시절에는, 수국처럼 이렇게 꽃을 자르면 겁도 나고 마음도 아팠다. 하지만 정원일을 2년 정도 하게 되니, 그래도 이제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슈캉 슈캉 시든 꽃을 자를 수 있게 되었다.
엔들레스 썸머 수국의 가지를 자르기 전에 일단 먼저 가장 위쪽의 시든 꽃을 전체적으로 다 잘라준다. 아직 싱싱한 꽃도 남아 있고, 쭉쭉 뻗어 나간 당년지에서 이제야 막 만들어지고 있는 어린 꽃봉들도 있지만, 몇 송이 남겨 둔다고 수국 꽃밭이 될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살짝 아깝긴 했지만 싹 정리를 해버렸다.
꽃을 다 자른 후 엔들레스 썸머 수국의 전체적인 수형이 보이면 이제부터는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시작한다. 먼저 수국 상단부의 커다란 잎 밑에서 햇볕을 받지 못해 가늘고 약하게 자라고 있는 아래쪽의 여린 가지들을 정리. 다음에는 우리 집 미니 정원의 크기에 맞춰 수국의 키와 품을 작게 만들기 위해 내 허리 밑의 적당한 높이에서 상단부의 튼튼한 가지들을 댕강댕강 잘라 버린다.
그러면 자른 부위 밑의 두 잎과 줄기 사이에서 눈이 양쪽으로 생기면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라난 새로운 잎과 줄기에서 내년에 피어날 꽃도 같이 품고 있으니, 다음 해에 꽃을 풍성하게 보려면 여름 이후 자라나는 새로운 잎과 줄기는 가능하면 자르지 않는 것이 좋다.
엔들레스 썸머 수국은 일 년에 두 번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3월 하순 겨울이 끝나고 죽어 있는 가지들을 확인 후 정리할 때 한 번, 그리고 7월 초 시든 꽃을 잘라 주며 정리할 때 한 번. 엔들레스 썸머 수국이 그 해 새로 난 가지에서도 꽃이 피는 당년지 수국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꽃을 풍성하게 보려면 지난해의 꽃눈들도 잘 살려 두어야 하니 의외로 조금은 관리가 까다로운 녀석이다.
이렇게 가지치기를 하고 나서 다음에 할 일은 비료주기다. 꽃을 피워내느라 힘을 모두 소진한 엔들레스 썸머 수국에게 유기질 비료인 프로파머스를 투입, 이 비료의 힘으로 또다시 새로운 잎과 가지를 키워 내고, 내년의 꽃을 준비하게 된다.
엔들레스 썸머 수국에게 한 해의 비료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슬슬 겨울잠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9월에 비료를 주면 엔들레스 썸머 수국이 잠을 잘 준비를 안 하고 계속 성장하려고 한다. 그러면 겨울잠이 늦어지면서 동해를 입게 된다. 그러니 10월 늦게까지도 꽃이 피는 장미에게는 9월 초에도 비료를 주지만, 엔들레스 썸머 수국에게는 가을 초에 비료를 주는 것은 금지다.
엔들레스 썸머 수국의 꽃이 지고 나면 곧 목수국의 시간이 찾아온다. 여름의 기운이 짙어져 갈 때 주렁주렁 피어나는 순백의 목수국 꽃은 그 자체로 청량하다. 뭉게뭉게 흰구름과 하늘빛의 오후, 그리고 목수국의 청량한 하얀 꽃과 함께라면 여름은 낭만의 계절임을 느끼게 된다.
여름의 정원을 달콤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우리 집 마당의 참스 캔디, 에키네시아가 만개했다. 동글동글한 큼지막한 꽃볼을 중심으로 원색의 컬러풀한 꽃잎을 달고 있는 강렬한 에키네시아는, 습기 가득한 장마도, 푹푹 찌는 여름도 생글생글 원기 발랄하게 보낼 수 있는 비타민이다. 정원 어디에 꽂아놔도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 노지 월동 최고에 폭우에도 쓰러지지 않으며, 더위는 타고났다. 그래서 에키네시아는 여름 정원의 원픽.
지난 6월 말의 플록스 블루 파라다이스에 이어 플록스 오키드 옐로와 플록스 아이스크림, 또 다른 플록스 가족들이 개화를 마쳤다. 사진만 보고 혹해서 데리고 온 플록스 오키드옐로는 얼굴을 들이밀고 보면 분홍과 노랑의 특이한 색조합이 신비하고 멋진 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조금만 멀어져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꽃의 크기와 색조합 때문에 존재감을 확 잃어버린다.
플록스 아이스크림은 이름처럼 배스킨라빈스의 '체리쥬빌레' 아이스크림 같은 꽃이다. 한 잎 베어 물고 싶은 사랑스러운 이 플록스는, 초록으로 가득 찬 여름의 정원 안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아이스크림이다. 마당 어디에서 바라봐도 눈에 확 띄는 꽃으로, 플록스를 키우고 싶다면 1순위로 추천하는 꽃이다.
여름의 정원에는 백일홍이 빠지면 섭섭하다. 7월부터 시작되는 백일홍의 시간은 이름 그대로 100일을 넘어 10월 말까지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의 정원을 책임진다. 백일홍은 짧게는 열흘, 길면 한 달, 이렇게 금방 꽃이 왔다 금방 꽃이 가는 노지월동 다년생 숙근초들보다 월등히 개화 기간이 길다. 잘 키운 일년초 하나 열 다년초 안 부럽게 만드는 그런 꽃이다. 파종도 쉽고, 쑥쑥 잘 자라고, 튼튼하며, 종류도 다양하고, 꽃 인심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여름, 가을 정원이 허전하다 싶으면 백일홍을 들이면 된다.
6월 중순에 1차 개화를 마친 후 꽃대를 잘라준 리나리아 퍼퓨리어 캐넌웬트가 한 달도 안 돼 또다시 만개했다. 첫 개화 때 보다 꽃 크기는 좀 작아졌지만, 훨씬 더 다글다글한 모양새다. 지난 1차 개화를 마치고 잘라준 꽃 밑으로 수없이 작은 꽃봉이 다시 또 잔뜩 나오더니, 또 한 번 가득 피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꽃 인심이 좋은 만큼 씨도 엄청 뿌려서, 새봄에 마당 여기저기에서 새싹이 우후죽순 튀어나오니 적절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장마 기간 동안은 공기와 땅이 모두 촉촉한 상태가 계속된다. 그래서 꽃들을 옮겨서 심기에 아주 좋은 시기다. 이런 환경을 기회로 삼아, 2년 차 정원이 되면서 다른 꽃들 뒤에 가려 눈앞에서 볼 수 없게 된 아스타 쿨 핑크와 꼬리풀 퍼스트 글로리를 구석에서 꺼내서 다른 자리로 옮겨 주었다.
원래의 자리에서 꽃을 들어내면 다른 곳에 심을 자리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 어떻게든 자리가 생기긴 한다. 그렇게 이놈들을 구석에서 꺼내 새 집을 지어주니 마음 한구석 빚이 없어진 기분이다. 그리고 아직 옮겨야 할 몇몇 꽃들이 더 있다. 그 친구들과는 올해의 백일홍이 자기 역할을 다 한 후 자리를 내어 주면, 내년 봄에 옮겨 주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쏟아져 내리는 비에, 오늘도 또 내리는 비에, 꽃들은 녹아내리고 줄기는 쓰러진다. 지지대는 매일 모자라고, 꽃 쓰레기는 가득 차서 내 마음도 녹아내리고, 허리도 쓰러지는 7월의 초중순의 정원이다.
그래도 이렇게 인생은 계속되고 가드닝도 계속된다. 다시 뽀송뽀송 해질 내일을 기다리며.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4년 7월 1일~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