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올해의 장마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던 7월의 중하순이었다. 그래도 비가 좀 적당히 내리면 좋으련만,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물폭탄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그래서 지난겨울 우리 집 마당에서 월동하고 걸리버처럼 쑥쑥 키가 큰 버들마편초가 결국 모두 털썩 꺾여 버렸다. 또 꽃봉이 주렁주렁 달리며 여름 개화를 앞두고 있던 장미 노발리스의 새로운 가지도 뚝 부러져 대롱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가혹한 장마와 폭우를 버티며, 장마 사이사이 잠깐 동안 비추는 햇빛을 링거 삼아 꽃들은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
여름은 목수국의 계절이다. 지난 일기의 리빙크리에이션 목수국 라즈베리 핑크에 이어 핑크앤로즈와 라임라이트가 탄산수처럼 상쾌하게 개화했다. 사계절 모두 하얀 꽃은 진리지만, 초록이 짙어진 한여름의 새하얀 목수국은 더 반짝반짝 빛난다.
5월에 일찌감치 개화한 서양톱풀과 달리, 톱풀 러브퍼레이드가 7월 중순이 되어서야 개화했다. 키가 너무 커버려 부담스럽긴 하지만, 분홍색 쿠션 같은 포실포실한 자태의 작고 사랑스러운 이 꽃은 다양한 톱풀의 종류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톱풀이다.
허브의 한 종류인 그릭 오레가노는 별같이 생긴 좁쌀만 한 하얀 꽃이 묶음으로 피어난다. 꽃 하나하나는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작지만 별사탕을 한 바구니씩 모아 놓은 듯 피어 있으니 꽤 볼륨감이 있어 보인다. 그릭 오레가노는 해가 묵을수록 줄기 아랫부분이 라벤더처럼 목질화가 된다고 하니 잘 키워서 작은 관목처럼 만들어보고 싶은 도전욕구가 생겨나고 있다.
플록스와 에키네시아가 절정이다. 여름에는 꽃들이 귀하다고 하지만, 이 두 꽃만 있어도 여름의 정원을 화려하고 듬직하게 채울 수 있다. 색도, 모양도 다양한 이 꽃들을 취향대로 구비하면, 여름의 정원을 풍족하게 만들 수 있다.
아직 1년 차인 플록스는 비록 올해 한 뿌리에 꽃대가 두세 개 정도만 올라왔지만, 연식이 오래될수록 꽃대를 몇 개씩 다발로 올린다고 하니 벌써부터 내년의 여름이 기대된다. 플록스는 끊임없이 피고 지면서, 폭우로 꽃이 다 떨어져도 내일 또 새로 피는 그런 꽃이다.
폭우에도 끄떡없는 또 다른 여름꽃의 최강자가 에키네시아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의 여름에도 언제나 변함없이 피어 있을 것만 같은 에키네시아. 여름 그 자체의 원색의 에키네시아가 시들어 가는 그 때면, 이 길었던 여름도 저물어 가는 순간일 것이다.
백일홍도 여름과 함께다. 폭포수 같은 장대비를 맞으면서도, 펄펄 끓는 여름 햇살을 받으면서도, 꽃 모양 그대로 몇 날 며칠, 그렇게 백일 이상을 새로운 꽃을 끊임없이 올리며 여름과 가을의 정원을 책임진다. 한 해 밖에 살지 못하는 일년초이긴 하지만, 다년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개화기간과 개화력으로 많은 가드너들의 사랑을 받는 여름과 가을의 꽃이다.
운남국화는 너무 매일 피어 있어서 이제 좀 심드렁할만하다. 그러나 운남국화의 진정한 매력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여름을 건너 가을에 다다르면, 제철을 만난 운남국화는 안개 가득한 가을 아침의 공기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몽환적인 분위기로 피어 난다.
여름의 그늘에는 역시 호스타 형제들이다. 작년에 심어 겨울을 난 호스타 형제들은 1년 만에 덩치가 쑥쑥 커졌다. 초록색의 그라디에이션을 다양하게 만들며 호쾌하게 그늘을 채우고 있는 호스타는 보기만 해도 시원한 풍경이다.
오랜 장마 기간에도 여름꽃은 이렇게 피어 있지만, 사실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래저래 심난한 여름의 정원이다. 장대비는 매일 몰아쳐 꽃은 쓰러지고, 쓰러진 꽃을 찾아 지지대로 매일 받쳐주는 일상. 또 장마에 문드러진 꽃을 자르고 자르다 보면, 가위를 한 번 들고 마당에 나가면 가위질을 멈출 수가 없는 요즘이다.
풍뎅이는 장미를 파먹고, 나는 그런 풍뎅이를 잡아서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있다. 또 공벌레는 장마가 계속되는 어둡고 습기 가득한 7월의 중하순 동안 열심히 메리골드를 먹어 치웠다. 그래서 지난 6월 한창 이쁨을 자랑했던 메리골드가 뼈만 남은 상황. 그렇게 내 마음이 땅바닥에 패대기가 쳐지고 있다.
공벌레는 메리골드 다음에 그 옆 백일홍까지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여름과 가을을 책임져줄 일년초가 모조리 전멸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 봐도 딱히 공벌레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공벌레는 정원 유기물의 분해를 도와 흙을 비옥하게 만드는 일꾼으로, 익충에 가까운 존재다. 하지만 공벌레는 개체수가 급격히 많아져 먹이가 부족할 때는 꽃과 식물의 어린잎을 먹어 치우기도 한다. 이는 1,2년 차의 새로운 정원이 균형이 안 맞아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정보가 있어,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코레옵시스 얼리 썬라이즈가 한동안 꽃을 활짝 피우고 나더니 잎의 색깔이 슬슬 바래지기 시작했다. 그 후 장마 기간 동안 증상이 점점 심해져 잎이 대부분 까맣게 타고 말라 버려 거의 중심 가지만 남게 되었다. 곰팡이 병인지, 비료풍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행히 다시 새잎이 나오는 걸 보니 뿌리는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당 한편에 구멍이 생긴 것 같아 영 마음이 찜찜하다.
봄의 깨끗하고 싱싱했던 정원은 여름이 되어 장마와 폭염, 병해충을 겪으면서 상처 나고, 문드러지고, 뜯어 먹히고, 쓰러지는 등 엉망진창의 대환장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여름의 풍파에 망가져 버린 이러한 정원의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가드닝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도 젊은 시절의 풍파를 거쳐야만 단단해지고 익어가는 것처럼, 정원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망가져 가는 여름 정원의 모습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정원의 거쳐가는 모습일 뿐이니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장마가 시작된 지 한 달이 훌쩍 넘어갔다. 그래도 가끔은 해가 뜨는 날도 있어, 심한 바람에 부러져 버린 덩굴장미 보니의 가지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정리를 했다. 또 지난겨울을 잘 못 보내 가지를 다 쳐버리고 초기화가 되어 버린 장미 퀸 오브 하트를 들어내고 검붉은 색이 매력적인 우리나라의 로즈원 장미 '봄해'를 새로 구입해 심기도 했다. 팬지를 뽑아낸 후 한동안 비어 있던 화분에는 안젤로니아와 아메리칸 블루를 심었다. 온몸에 땀을 흘리며 정원과 관련된 노동을 하니, 나의 마음에도, 마당의 식물들에도 새순이 돋아나는 것 같다.
몰아치는 비와 바람에 가드닝의 꿈과 희망이 사그라드는 밤도 종종 있다. 하지만 비와 바람이 멈춘 다음날 아침, 꽃을 피우며 웃고 있는 작은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다시 또 새로운 다음의 계절을 기다리게 된다. 그렇게 2024년 여름의 정원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다.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4.7.16~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