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드닝 일기 - 나는 2년 차 가드너다
7월 말 장마가 끝나고 좀 뽀송뽀송 해지려나 싶었지만, 8월 중순부터 매일 하루에 한두 번씩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양동이로 물을 들이붓는 것 같은 폭포수 소나기였다.
그래서 햇빛이 부족해 조금씩 웃자란, 키가 좀 크고 호리호리한 백일홍 릴리풋과 퀸 라임 블로치가 폭포수 소나기에 견디지를 못했다. 결국 소나기만 내리면 넘어지는 이 아이들을 싹둑싹둑 쳐버렸다. 키가 낮아지니 왠지 안정감도 있고, 자른 부위 밑으로 새순이 쑥쑥 나와 앞으로 꽃도 더 많이 필 것 같은 기분. 쓰러지고 세우고 반복되었던 일상이었는데, 진작에 좀 팍팍 칠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높이 40센티 정도의 낮은 키의 백일홍 마젤란 살몬은 소나기와 태풍에도 쓰러지는 일 없이 꿋꿋하게 개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7월 초 화려한 겹꽃을 가득 피웠던 것과는 달리 최근에는 홑겹으로만 피고 있다. 장마를 거치면서 일조량이 부족하고 너무 무더웠던 것이 꽃의 모양에 영향을 미쳤을 터. 홑겹으로 개화한 아이들이 지고 나면, 다음에 피는 꽃들은 다시 가을의 햇살을 충분히 받고 선선해진 날씨의 도움을 받아 겹꽃으로 피게 될 것이다.
키 작고 아기자기하며 쨍한 색을 가지고 있는 백일홍 자하라도 부지런히 개화 중이다. 예쁘고 톡톡 튀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백일홍은 좀 동글동글하면서 다양한 색이 겹쳐 있는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의 취향이다. 내년에는 정원에 심을 백일홍 목록에서 자하라는 삭제할 예정이다.
헬레니움은 완전히 만개했다. 계란과자 같은 폭신하고 귀여운 꽃볼이 줄기의 끝에 주렁주렁 넘치듯이 달려있다. 가을 느낌이 물씬 나는 노랑과 주황 색깔의 꽃을 잔뜩 달고서는 어서 가을이 오기를 가을맞이 선발대, 가을맞이 합창단인 것처럼 조금은 길이가 짧아진 해님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을꽃은 아니지만 만화네 대표적인 노동꽃 리나리아 퍼퓨리어 캐넌웬트는 3차 개화 중이다. 5월 중순 만개, 7월 초 2차 만개, 8월 말 3차 만개까지 진행 중이다. 리나리아 퍼퓨리어 캐넌웬트는 씨로 너무 잘 번져 씨가 여물기 전 꽃을 미리미리 잘라 주고 있다. 꽃을 자르고 나면 이주도 안 돼서 자른 부위 밑으로 새순이 나와 꽃이 또 핀다. 키는 계속 낮아지고 있지만 지금의 흐름이라면 10월 초 4차 개화까지 가능할 기세다.
꽃대가 올라오고 꽃몽오리가 생기고, 그렇게 한 달이 다 돼 가도록 뜸을 들이고 있는 추명국이 오늘은 필까 내일은 필까 마음을 졸이게 하더니 결국 8월 말까지 꽃을 보여주지 않았다. 작년보다 두 배는 많은 꽃을 물고 있는 이 녀석이 어떤 가을을 선물해 주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고 있는 것인지, 매일 아침 마당에 나가 추명국의 개화 여부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8월 말의 일상 계속되고 있다.
8월 중하순이면 장미의 여름 전정을 진행할 시기다. 이맘때쯤 마당에 있는 장미들을 한꺼번에 전정을 하게 되면, 대략 10월 초에서 10월 중순 올해의 마지막인 장미의 가을 개화를 역시나 한꺼번에 볼 수 있게 된다. 작고 쭈글쭈글하고 본래의 모습과는 다른 화형을 보여주는 여름의 장미꽃과는 달리, 가을에 피는 장미는 봄 장미 원래의 모습에 근접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또 가을의 선선한 기온 때문에 꽃도 오래가고 향기도 진해지니 가능하면 여름의 끝에 일괄적으로 전정을 해서 가을 장미를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마당에 몇 주 없는 장미지만, 여름동안 정신없이 쑥쑥 자라난 새로운 가지, 여름 개화 후 데드 헤딩만 해놓았던 가지 등을 정리해 주며 장미들 전정을 싸악 해주었다. 자른 가지 밑으로, 9월 한 달간 다시 새순이 쑥쑥 자라고 꽃봉이 익어가면,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마지막 장미꽃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목수국 라임라이트의 꽃도 잘랐다. 폭포수 소나기에 피어 있는 목수국 꽃이 견디질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꽃도 점점 갈색빛을 띠며 변해가서 상큼한 분홍빛으로 물들 가능성이 낮아졌다. 그래서 보다 못해 꽃을 모두 잘라 버리기로 결심. 핀 꽃을 모두 꾸역꾸역 안고 가자는 욕심을 버리고 이렇게 잘라 내고 나니, 오히려 마당이 조금 더 정리된 느낌이다. 내년에는 6월 초에 목수국을 전정해 장마와 폭염이 모두 끝난 다음 꽃이 필 수 있도록 개화 시기를 꼭 한 번 조정해 볼 예정이다.
마당 꽃들의 자리를 옮겨줄 수 있는 한 해의 마지막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10월 말, 11월 초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이사 간 자리에서 한 달 정도 시간을 들여 뿌리가 자리를 잡으려면 중부지방 기준 대략 9월 중하순까지는 옮기기 작업을 완료해 주는 것이 좋다.
그래서 우선 그늘 밑에 있던 스카비오사 파마 블루, 키 큰 아이 뒤에 숨어 있던 톱풀 프타르미카 발레리나와 베로니카 로열블루 등의 자리를 옮겨 주었다. 이제부터 슬슬 틈 나는 데로 이렇게 한 녀석씩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꽃들을 가지고 테트리스를 하다 보면 어느덧 가을이 완연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작년 보다 더 풍성해진 소국도, 뽑아낼까 말까 천 번은 고민하고 있는 구절초도, 조금은 정신없는 흰쑥부쟁이도, 올해는 밝은 곳으로 자리를 옮긴 아스타도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뽐내며 올해의 마지막 꽃의 계절을 함께할 것이다.
길고도 혹독했던 2024년의 여름도 결국은 떠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숨을 쉬고 버티고 있었다면 이젠 다시 가드너와 꽃들의 시간이다. 씩씩하게 허리를 펴고, 호미를 잡고, 가위를 들고서 나가보자. 우리의 정원으로, 우리의 기쁨으로.
그럼 만화의 가드닝 일기, 오늘은 이만.
(2024년 8월 16일~8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