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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ul 25. 2022

고성, 막국수와 바다가 다가 아니었어!

남한의 또하나의 땅끝마을 / 고성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성 한달살기가 마지막 한 주를 남겨 놓았다. 이제 와서 다 늦게 '고성'에게 이실직고해야겠다. "나, 사실 여기 오기 전까진 네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거든?" 막연히 강릉과 속초 어드메쯤이겠지 여겼고 한 번도 지도에서 고성을 찾아본 적이 없었다.


때는 7월. 일부러 피서라도 가야 할 판에 거진항의 바다 보이는 집을 빌려준다고 해서 무작정 고성으로 왔다. 고성에 와서 바다도 실컷 보고 막국수도 실컷 먹었다. 그러나 고성, 막국수와 바다 외에 또 뭐가 있을까?



그래도 바다, 강릉과 속초 지나 30분만 더


막국수와 바다 이야기는 안 하려 했으나 최소한 바다는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성이 바다를 따라 길게 생긴 지역이라 바다가 진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곳 고성에서 강릉과 속초를 가보니 두 곳은 동해안 관광의 메카였다. 서울과의 교통 편의가 좋아서인지 숙소와 카페가 즐비하고 사람이 넘쳤다. 관광지 특유의 업된 분위기에 나도 잠시 덩달아 기분이 들썩거리나 싶더니 금세 조용한 고성 바다가 그리워졌다.


속초에서 30분만 더 올라가면 사람 덜 탄 야성의 바다가 해안선 곳곳을 끼고 앉았다. 군사지역의 철책이 걷어져 민간에 공개된 지 오래되지 않아 더 신선하고 반가운 해변들이다. 캠핑족을 부르는 백도해변, 서퍼들의 집합소 봉수대해변, 고성평야의 논뷰가 함께하는 반암해변...


서퍼를 기다리는 봉수대해변


철책 갓 걷힌, 고성의 가장 야성적인 바다, 반암해변


그중에서도 아야진해변은 고성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해변이다. 속초에 붙어있다시피 한 위치 덕도 있겠지만 그 자체로 동해 아니 남해와 서해를 통틀어 보기 드문 해안경관을 가졌다. 모래해변과 몽돌해변은 봤어도 거뭇거뭇한 화강암이 편평하게 펼쳐진 암반해변이 모래사장과 태연히 공존하는 해변이라니. 암반 사이 고인 물에 반영까지 받쳐주면 아야진에서는 누구든 모델이 되고 누구든 포토그래퍼가 된다.


거북이 등처럼 편평하다는 데서 유래한 아야진의 옛 지명 구암리가 아야진해변을 잘 설명한다.


썰물 때의 아야진해변



고성 지질여행 삼종세트, 서낭바위, 능파대, 운봉산 너덜지대


고성엔 바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성 지질여행의 삼종 세트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서낭바위, 능파대, 운봉산 주상절리(너덜지대)가 그것들이다.


송지호해변에서 살짝 돌아 앉은 초미니 바위 해변에서 왠지 영험해 보이는 바위 하나를 고르면 그게 바로 동네 사람들의 기도처, 서낭바위다. 스누피 바위도 찾아봐야 한다. 화강암 틈 사이로 연분홍빛 규장암이 띠모양으로  굳어 한눈에 봐도 특이한 바위들이다.


서낭바위


내가 보기엔 스누피 머리 모양? 부채바위라고도 한다.


파도를 능가하는 돌섬 '능파대'는 이름에 혹해서라도 가봐야 한다. 2021년에 방탄소년단이 화보와 영상을 찍은 곳이라니 안 갈 이유가 없다. 원래는 문암해변 바다에 떠있는 암초였지만 문암천의 모래가 쌓 육지와 연결되었다고 한다. 규모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일명 곰보바위로 불리는 타포니 화강암군이었다. 화강암 틈 사이에 소금 성분이 들어가 자라면서 화강암에 구멍을 만드는 염풍화가 만든 구조라고 한다.


능파대


능파대보다 서낭바위보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곳은 운봉산이다. 기반암 화강암산 위에 현무암이 분출해서 만들어졌다는 운봉산은 산의 실루엣이 예사롭지 않아 멀리서도 눈에 띈다. 정상에 못미쳐 주상절리 표지를 따라갔더니 초록 초록한 여름 숲 속에서 깜짝 놀랄만한 반전이 벌어졌다.


운봉산의 실루엣이 예사롭지 않다.


285m의 운봉산 정상에서, 바닷가 바로 옆에 너른 평야가..


뜬금없이 거대한 검은 돌강이 나타난 것이다. 현무암 주상절리가 토막 나고 풍화되어 골짜기 하나를 어마어마한 규모로 채우고 있었다. 대구 비슬산과 부산 금정산, 밀양 만어사의 돌너덜지대와는 돌 조성이 다르고 규모로는 밀양 만어사와 비교될 정도였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차라리 누가 덤프트럭에 실어와서 일부러 부려놓았다고 하면 더 그럴듯하게 들릴만큼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망연자실한 나머지 바다가 보이는 육각기둥 한 토막 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돌이 흐르는 강


각진 바위가 육각기둥의 주상절리 파편임을 보여준다.



한반도 '최북단'시리즈는 다 모았다-최북단 항구, 최북단 해수욕장, 최북단 기차역


고성에 가면 땅끝이 실감 난다. 더 못 올라가기 때문이다. 신고서를 쓰고 안보교육을 받고 검문을 받는 3중 절차를 거쳐야 과 금강산 봉우리가 보이는 통일전망대까지 들어갈 수 있다. 고성은 한반도 최북단 시리즈를 줄줄이 가졌다. 대진항은 최북단 항구이고 명파해수욕장은 민간인이 들어갈 수 있는 최북단 해수욕장이다.


한반도 최북단 해수욕장인 명파해수욕장


최북단 기차역 제진역은 민통선 구역 안에 있고 경계가 삼엄하다. 마침 7월 24일에 개막된 2022년 PLZ페스티벌의 개막식과 첫 음악회가 제진역에서 열려 가보게 되었다.


북한까지 연결된 육로. 길은 있으되, 더 이상은 못 간다.


최북단역 제진역


비무장지대를 평화생명지대(Peace Life Zone)로. 제진역 철길 위에 울려 퍼진 첫 곡은 아리랑변주곡(전권 작곡)이었다.


북쪽을 향하고 있는 평화통일기차


제진역에서 금강산까지 28km, 기차 타고 20분이면 간다. 제진역에서 부산(3시간반)보다 백두산(약3시간)이 더 가깝다. 북쪽으로난 정비된 철길 위에 알록달록 새 단장한 진짜 기차가 덩그러니 시간을 지키고 있었다. 제진역은 폐역도 아니요 사람 오가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개점휴업역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역이다. 가깝고, 기찻길도 있고, 기차도 있는 데 못 간다니... 제진역에 나부끼는 현수막이 슬프다.


4,000원 내고 기차 타고 금강산 가는 그날을 그리며...




해남이 인기 여행지로 부상한 건 한반도 남쪽 땅끝 포인트가 거기 있기 때문이고 정동진이 뜬 것은 광화문을 기준으로 육지 끝 정동 방향의 나루터여서 붙은 이름, 정동진이 한몫했다고 한다.


고성군은 고성이 분단 한반도의 북쪽 끝을 널리 홍보하면 좋겠다. 북한이 내려다보이는 최북단 전망대, 최북단 항구, 최북단 해수욕장에 최북단 기차역까지. 고성에 가면 분단이 몸으로 느껴진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가 통제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통일교육이 필요 없는 곳이다.


한적하고 청정한 바다에 질릴 때쯤 들러볼 만한 지질 명소까지 있으니, 금강산은 못가도 금강산 길목 고성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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