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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Aug 29. 2022

대구 사람이 광주 식당에 갔더니

광주 음식 체험기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다. 전라도 출신 남자 동료가 경상도 여자와 결혼해 신행으로 처가를 다녀와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처갓집에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렸는데 젓가락 갈 데가 없었다는.(내가 너무 셀프 디스를 했나?) 전라도는 물산도 풍부하고 풍류와 인심도 넘치고 그런 가운데 음식 문화도 발달했다고 한다. 그런 전라도의 주도(主道), 광주에 왔으니 어디 한번 제대로 맛사냥을 나가볼까?


그랬다. 익히 들은 대로 광주는 음식 종류도, 맛집도 많아 끼니때마다 식당가는 일이 즐거웠다. 오리지널 경상도 입맛 대구 사람이 광주 식당에 갔더니 생전 첨 보는 음식도 있고 비슷한 듯 다른 음식도 있었다.



생비와 익비를 아시나요?


계림동 근처를 지나다가 식당 외부 담벼락에서 낯선 음식명을 봤다. '생비'와 '익비'가 뭘까? '비'는 '비빔밥'의 약자? 그렇다면 생비는 생나물비빔밥, 익비는 익힌나물비빔밥이겠지.


"땡~ 틀렸습니다, 여기서 용어 정리하고 가실게요~" 생비는 생고기비빔밥, 익비는 익힌고기비빔밥이다. 생비는 겉보기 대구에서도 종종 먹는 육회비빔밥과 비슷했다. 경상도에는 그냥 비빔밥과 육회비빔밥이 있다.


육회비빔밥은 조미된 육회가 갖은 나물 위에 고명처럼 얹어 나오는 반면 생비는 양념하지 않은 생고기나물과 함께 온다. 고추장을 넣어 비벼먹는 건 같다. 생비와 익비를 하나씩 시켜 보았다. 다른 건 같고 고기의 익힘 상태만 달랐다. 익비는 양념된 익힌 고기가 비벼먹기 좋게 나오고 고기의 양 또 적지 않았다. 고추장이 맛있는지 비빔밥에 별 것 안 들어갔는데도 아주 맛있었다.


광주의 한 식당에서 나온 생비와 익비


나주에서 먹었던 생비의 정석, 생고기와 김가루 아래 갖은 야채가... 음식은 데코다!



애호박찌개? 국민 양대 찌개는 된장찌개, 김치찌개 아니었어?


한국인이 사랑하는 양대 찌개는 된장찌개와 김치찌개가 아니었나? 광주에 가니 이 둘의 아성을 넘보는, 생소한 찌개 요리가 하나 더 있었다. 애호박찌개였다. 메뉴판에 김치찌개, 된장찌개와 나란히 이름이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 된장찌개를 밀어내고 김치찌개와 애호박찌개를 투탑으로 내는 한식당도 꽤 있었다. 놀랍게도 애호박찌개전문식당도 있었다. 이는 광주사람들이 정말 즐겨먹는 찌개란 뜻이다.


 알고 있는 애호박젓국 같은 것일까? 어떻게 리하면 애호박 단독으로 찌개명이 될까? 막상 먹어보니 돼지고기찌개인데 애호박이 듬뿍 들어갔다. 돼지고기 베이스의 찌개인데도 고추장을 풀어 칼칼하고 담백한 국물 맛이 났다. 돼지고기와 애호박 건더기를 건져먹는 재미도 있다. 살캉거리며 씹히는 애호박 식감도 나쁘지 않았다.


경상도에서 파는 돼지찌개와 비슷하다. 돼지찌개가 돼지고기 주력에 갖은 야채가 보조로 들어가는 요리면 애호박찌개는 애호박과 돼지고기가 공동주연다. 광주 여행 와서 난생처음 먹어보는 요리 하나를 추가했다.


애호박찌개의 약진


이름도 귀여운 콩물국수


한낮 온도 34도를 찍던 날 5·18유적지를 따라 걷다가, 대문짝만 하게 걸린 식당 간판, 'oo콩물'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콩물국수를 판다. 어라? 콩국수가 아니라 콩물국수네? 그러고 보니 콩국수보다 콩물국수가 음식을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 이름이다. 이름도 정겹고 귀엽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쳐다볼 새도 없이 사람 수대로 콩물국수가 나왔다. 광주에서는 콩물국수가 패스트푸드였네?




콩국물에 면 말아 나오는 건 평소 먹던 경상도식이랑 똑같다. 면 한 젓가락 뜨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이렇게 달달한 국수라니? 콩물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콩국수의 단맛에 충격받아 고개를 들어보니 그제야 '설탕을 넣지 않을 분은 미리 말씀해주세요' 안내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달아도 맛있었다. 아니 달아서 맛있었나? 그래도 입맛은 원래 보수적인지 '안달았으면 더 맛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으로 식당 문을 나섰다.




경상도에서 콩국수는 콩국에 소금간만 하거나 아예 간이 안된 콩국수를 내고 소금통을 주는 식이다. 원래 콩국수는 아무 맛도 안나는 거친 맛, 건강하기만 한 맛을 약간의 고소함으로 견디고 먹는 음식이다. 콩국수는 '우리 집의 어른 입맛 인증 음식'이다. 언젠가 우리 집 큰 애가 갓 성인이 된 막내에게 하는 말, "너 콩국수 먹을 줄 알아? 콩국수를 먹을 줄 알아야 어른이지."


곱게 간 얼음 한 그릇과 콩물국수(왼) & 보리밥비빔밥이 서비스로 나오는 8천원짜리 콩물국수(오)


설탕 한 항아리와 얼음콩물국수(왼) & 하얀 가루 두 종(種). 큰 것은 설탕이요, 작은 것은 소금


광주에서 처음 던 콩물국수 식당 외엔 콩국물에 설탕이 기본으로 들어 있진 않았다. 어떤 집은 얼음을 갈아서 대접에 따로 내기도 하고 면으로 메밀면을 쓰기도 하는 등 콩물국수 집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테이블마다 커다란 설탕통 하나씩은 꼭 있었다.


단맛은 전염성이 강하다. 면 먹다 말고 콩물에다 설탕을 슬며시 반 숟가락 타서 먹어보니 목 넘김이 훨씬 부드럽고 기분까지 좋아지는 게 아닌가. 광주에 왔으니 광주식으로 먹어야지!




맛고장 광주에 와서 광주음식 맛없다 하기 어렵다. 맛집에 가서 음식 맛없다 하기 어려운 것처럼. 음식 맛있기로 소문난 도시라 선입견에 광주 음식이 다 맛있게 느껴지는 걸까? 아니면 절대적으로 훌륭할까?


'부족한 미각과 길지 않은 광주 미식 경험'의 한계 내에서 판단컨대, 광주는 대한민국 어느 지역보다 맛에 대해 진심이었다. 그 예로 식당마다 내오는, 종류도 다양한 김치가 하나같이, 놀랍도록 맛있었다. 김치처럼 생겼는데 아무 맛도 안나는 김치, 구색만 맞춘 장식용 김치가 아니었다. 젓갈 맛 진하게 나는, 좋은 재료를 제대로 버무린 김치였고 가는 곳마다 김치 리필은 필수였다.


그런가 하면 9천원 혹은 만원짜리 추어탕을 시켰는데 돌솥밥 기본에 어리굴젓 한 접시가 넉넉한 양으로 나와 놀랐다. 심지어 그 유명한 홍어삼합이 반찬으로 딸려 나와 어리둥절해하기도 했다. 음식 플렉스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광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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