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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ul 06. 2022

시골쥐의 서울 속성 여행법은 성곽 한바퀴

서울 성곽길 걷기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절반이 사는 서울에 왔다. 아니 이제 수도권 인구가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지방러에게 서울은 가늠이 안 될 만큼 거대한, 매트로도시를 넘어 수퍼도시, 울트라도시다. 크기와 인구도 그러하지만 그냥 현실적으로는 집값과 물가만으로도 서울은 그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넘사벽의 도시다.


이런 서울에 한달살이 여행을 해보겠다고 상경했다. 근데 서울 여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서울은 너~무 크다. 너무 복잡하다. 문화적,  역사적, 도시인문학적 명소도 너~무 많다. 어디부터 가야할까? 고궁? 박물관? 미술관? 인사동? 남산타워???


마치 몇날 며칠을 굶다가 특급 호텔 부페에 온 기분이다. 눈이 핑핑 돌아갈만큼 화려하고 넒은 홀에 차려진 각양각색 음식이 무슨 음식인지도 모르겠고 내 입에 맞는 음식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먹는지조차 모르겠다. 지방에서 서울 구경 온 나같은 '시골쥐'들을 위해 서울시에서 관광 메뉴얼을 만들어주면 좋겠다. 서울 여행 그대로 따라하기 3일짜리, 일주일짜리, 제별로 기간별로...


서울 여행,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낯선 도시에 입성했을 때 내가 자주 써먹는 여행법을 따르기로 했다. '전망대에서 도시 전체 조망하기'. 마침 서울은 조선시대의 계획 수도라 '한양 도성의 성곽길'이 바로 서울 조망길이 된다. 서울을 한 품에 안아보고 내 눈 아래로 깔아볼 수 있는 기회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 낙산을 끼고 성돌을 쌓아 도성 한바퀴를 둘러놓았고 수년 전부터 서울시에서 심혈을 기울여 복원해놓아 걷기에도 편하다.


서울의 성곽길 개념도(출처:두산백과)


    < 한양 도성 이해의 4-4-4. 4산-4대문-4소문 >  

(1) 4산    : 서울 도성 경계의 기준이 된 4개의 산 - 내사산(內四山)). 낙산-북악산-인왕산-낙산
(2) 4대문 : 동대문(흥인지문), 서대문(돈의문), 남대문(숭례문), 북대문(숙정문)
(3) 4소문 : 북동-동소문(=혜화문), 북서-북소문(=창의문=자하문), 남서-서소문(=소덕문=소의문), 남동-남소문(=수구문=광희문)
※ 5궁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 종묘와 사직   

서울 한양도성 https://seoulcitywall.seoul.go.kr


시작은 혜화문에서, 방향은 반시계 방향으로 잡았다. 성곽 한바퀴는 18.7km. 산길이라 이틀에 나눠 걸으면 적당하다. 나는 시내 구경도 하고 남산에서 도성 유적전시관 해설 투어도 하다보니 도성 한바퀴에 사흘이 걸렸다.



혜화문에서 숙정문을 지나 창의문까지 이르는 북악산 구간이 가장 경치가 좋고 전망이 훌륭했다. 왼쪽으로는 서울 도심을, 오른쪽으로는 서울을 큰 품으로 안아주는 북한산과 도봉산, 불암산 봉우리 보며 돈다. 북악산의 어느 지점에서 본 성벽은 푸른 산을 오르는 한 마리의 용을 연상시켰다. 걸을 때마다 달라지는 '성곽 안 서울''성곽 밖 서울'은 '언빌리버블' 그 자체였고 걷는 내내 지루할 새가 없었다.  


북악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북악산의 성밖 풍경, 북한산 봉우리도 보인다.


창의문에서 돈의문터, 정동길을 지나 남대문을 지나면 남산을 타고 오르게 된다. 빌딩과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서울을 한 눈에 내려보는 호사는 낙산 구간까지 이어졌다. 남산 성벽은 특급호텔 뜰을 가로지르는가 하면 언덕배기 오래된 동네와 맞닿아 있었다. 서울의 화려함 기저에 깔린 팍팍한 사람살이까지, 서울의 양면성을  볼 수 있었다.

                                                                           

창신동 주택가 일대(낙산 구간)(왼) & 광희문을 지나 청계천 오간수문 근처(오)


인구 천만이 넘는 현대의 초거대 국제도시 서울에 옛 도읍 시절 성이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조선 시대 지방에서 과거시험보러 올라온 선비들이 이렇게 '한양도성 한바퀴'를 했다고 한다. 일명 '순성놀이'다. 하룻만에 도성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돈 다음 북쪽에서 남쪽으로 다시 관통해서 '가운데 중(中)자'를 완성하도록 걸으며 과거시험에 적중하길 빌었다고 한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남산)


성벽은 시기, 즉 왕조별로 성을 축조한 방식이 비교되었다. 성돌을 쌓은 방식을 보고 건축 시기를 가늠해보는 것도 심심하지 않게 도는 법이다. 성돌에 새겨진 글자 찾기도 보물찾기였다. 시공자 이름이나 부역으로 성을 쌓은 사람들의 출신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고 하는데 '흥해(興海)'와 '경산(慶山)'을 찾았다. 내가 사는 대구와 한 동네나 다름없는 경상도 남동부 사람들이 부역한 구역이라니...

                     

세종 시기(1422년)에 쌓은 옥수수알 모양의 성돌
순조(19세기, 정사각형)와 태조(14세기, 자연석)(왼) & 숙종(18세기, 직사각형)과 세종(15세기, 옥수수알모양) 시기의 성돌(오)


각자성석, 경산(왼) & 흥해(오)


한양도성 순성길 완주 다음 날 경희궁 옆의 서울역사박물관에 들렀다. 옛 도읍으로서의 한양에 대한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었고 한양 성곽을 내 발로 밟아 돈 직후라 전시 내용이 새록새록 이해되었다. 어렴풋하게나마 옛 한양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광화문 앞의 육조 거리와 종로의 시전, 고관대작이 말 타고 다니던 대로를 피해 조성된 피맛골을 따라 천천히 다시 걷고 싶어졌다. 박물관도 이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박물관의 재발견'이었다.


성곽길 걷기는 '서울의 태생'을 따라 걸으며 '서울의 현재'를 동시에 체험하는 여행법이고 가장 빠르게 서울을 익히는 여행법이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낱낱으로 봤던 궁궐과 산, 대문들이 '조선의 도성, 한양' 하나로 묶여 정리되었다. 방어와 수성(守城)의 목적에 충실한 '도시 담장'으로서의 서울 성곽은 기하학적으로도 아름다웠다. 중국 여행의 일번지가 만리장성이라면 서울 여행 일번지는 단연 한양도성이다.


숲을 봤으니 이제 나무를 보러 갈까? 서울 한달여행을 와서 '4산-4대문-4소문'을 돌았으니 다음엔 '5궁과 종묘와 사직' 차례인가? '하루에 한 궁궐' 궁 나들이를 나서야겠다. 나같이 '궁궐 몰아보기' 하려는 사람을 위한 만원짜리 통합 입장권도 있다고 한다(4개궁과 종묘 입장 가능, 3개월 유효). 사실 나는 궁보다 옛 저잣거리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냄새 나는 골목이 더 궁금한 사람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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