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땅이 넓은 나라였다. 유카탄(Yucatán) 반도 여행에만 꼬박 보름이 걸렸다. 산크리스토발에서 유카탄의 관문인 메리다(Mérida)로 들어갔다. 이어서, 바야돌리드(Valladolid), 툴룸(Tulum), 플라야델카르멘 (Playa del Carmen), 칸쿤(Cancún) 순서로 이동했다. 멕시코에서 서양 여행자들을 가장 많이 만난 코스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칸쿤으로 들어왔을 법한 그들은 칸쿤을 기점으로 유카탄의 명소들을 도는 것 같았다.
유카탄 반도는 무엇으로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가. 나는 무엇 때문에 유카탄 여행을 하는가. 유카탄의 매력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카리브해와 마야 유적과 세노테. 짐작컨대 다른 여행자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바다 콘테스트 1등 후보, 카리브해
칸쿤에는 바다를 메워 만든 기다란 지형에 호텔만 길게 늘어선 곳이 있다. 호텔존(Hotel Zone)이다. 길게 막은 지형으로 인해 바다가 갇혀 인공 석호가 생겼다. 현지에서는 라구나(Laguna)라고 한다. 호텔의 한쪽은 바다요, 다른 한쪽은 라군이다. 어느 쪽이든 뷰가 훌륭하다.
칸쿤 호텔에서. 호텔의 동쪽(해변)과 서쪽(라군)
카리브해의 물색은 밝은 옥색과 파스텔톤의 하늘색과 진파랑으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을 가졌다. 바다색 '파랑'이 얼마나 변주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바다였다. 이런 비치를 호텔이 프라이빗하게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발에 모래 안 묻히고 뽀송뽀송한 선베드에서 카리브해의 파도와 물빛을 감상할 수 있다. 어느 비치가 아름다운지 견주는 바다 콘테스트가 있다면 강력한 우승 후보가 아닐까.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숙박, 식사, 음료와 술을 다 제공한다는 올인클루시브호텔은 칸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유인(誘因)이다.
마야 문명이 남긴 피라미드
'피라미드 하면 이집트'였는데 멕시코는 나의 이런 공식을 깨 주었다. 멕시코에도 피라미드가 많았다. 멕시코시티 근교의 테오티우아칸의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도 훌륭했는데 유카탄 반도 일대에서 꽃 피웠던 마야 문명은 유독 피라미드를 많이 남겼다.
욱스말(Uxmal) 피라미드 유적. 메리다 근교
마야 유적지를 세 군데 다녀왔다. 메리다(Merida)에서 욱스말(Uxmal)을,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치첸잇사(Chichen Itza)를, 툴룸의 바닷가 피라미드를 방문했다. 정글 사이사이에 피라미드와 구기(球技) 경기장, 제사를 지내던 분향 기둥 등이 남아 있어 인상적이었다. 멕시코에서 과테말라로 이어지는 마야 문명의 흔적, 일명 '마야 루트'를 따라 여행하는 여행자도 있다고 한다.
치첸 잇사(Chichen Itza). 바야돌리드 근교
툴룸의 피라미드 폐허 유적
수천 개의 '신성한 우물', 세노테
카리브해도 멋지고 고대 마야 유적도 경이로웠다. 그러나 아름다운 비치는 세계 다른 곳에서도 만날 수 있고 피라미드 유적 또한 이집트나 캄보디아에서도 볼 수 있다. 석회 지형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게 신비감을 안겨준 독특한 곳이 있으니 바로 유카탄에서만 볼 수 있는 카르스트 지형, 세노테(Cenote)였다. 바야돌리드와 툴룸에서 세노테 몇 군데를 방문했다.
유카탄 반도에만 수천 개의 세노테가 있다고 한다. 석회암 지대에서 지하수에 의해 석회암이 녹아 침몰하면 움푹 파인 지형 돌리네가 된다. 이런 돌리네 현상이 심화되면 돌리네가 수직방향으로 내려앉으면서 지표에서부터 수직 동굴이 뚫린다. 이에 따라 땅 속 깊은 곳에 있던 천연샘이 지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을 세노테라고 한다.
세노테 익킬(Ikil), 바야돌리드 근교
세노테는 일반적인 석회동굴과도 다르고 지하수에 석회 지역 특유의 광물질이 녹아들어 물빛이 오묘하다. 고대 마야인들은 세노테를 신성하게 여겨 이곳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세노테, 사물라(Samula). 바야돌리드 근교
세노테는 대부분 천연수영장으로 개발되어 있다. 구명조끼를 빌리면 수영 못하는 사람도 세노테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세노테 물에 드러누워 세노테의 천장과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만든 석주와 석순의 지질 작품을 감상했다. 세노테 내부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은 '물아일체(物我一體)'로 데려다주었다.
바야돌리드에서 슬리퍼를 사러 신발 가게에 갔을 때다. 슬리퍼를 고르다가 전시된 신발을 보니 다들 오른쪽 신발만 걸려 있는 게 아닌가. 물론 고객이 자유롭게 내려 신어볼 수 있었다.
오른쪽 신발만 걸어둔 이유가 뭘까. 도난 방지 때문이라고 했다. 아하, 그렇네. 오른쪽 신발만 가져가면 소용이 없으니까. 단순하지만 지혜롭고, 인간적이어서 귀엽기까지 하다. 고대 마야인들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수학을 이용하고 1년이 365일이라는 것도 마야인들이 발견했다고 한다. 마야 후손이 달리 마야 후손이 아니었다.
바야돌리드 신발 가게에서. 오른쪽 신발만 걸어놓았다.
유카탄 반도에 철로를 놓고 있다고 한다. 치첸잇사에서 익킬 세노테로 가는 콜렉티보 운전기사에게 들었다. 완공되는 올 12월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길이 멀어 비행기와 버스로만 다니는 유카탄 반도를 유카탄 열차로 돌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기차 타고 '마야 루트'와 '세노테 루트'를 따라갈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