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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May 05. 2024

해야 할 이유 한 가지, 안 되는 이유 백 가지

이렇게 순식간에 늙어버릴 줄은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외삼촌 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외숙모가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그때 포대기에 꼬물꼬물 싸여 울고 있는 나의 사촌동생을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그러고 나서는 한동안 외삼촌 댁을 가지 않았나 보다. 거의 1년 만에 외삼촌 댁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는데, 귀여운 아기를 볼 거라는 나의 기대와 달리 내 사촌동생은 겅중겅중 뛰어다니고 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명절 때나 되어야 외가에서 볼 수 있는 삼촌과 숙모들은 나와 사촌형제들을 바라보며 "그 사이에 엄청 컸다"면서 "아이들 크는 것에 비하면 어른들은 별로 안 늙는 거야"라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애들은 한 해 한 해 얼굴이나 몸집이 달라지는데, 어른들은 몇 해가 지나도 큰 차이가 없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했다. 



그러나 많이 늙고 아픈 어른은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지난 몇 달 사이의 엄마 모습은 또 너무나 달라졌다. 요양원 선생님으로부터 엄마가 대소변을 잘 보지 못해 기저귀를 하게 되었다고 듣기는 했으나, 예전에 화장실을 찾는다고 배회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경할 정도로 지금의 엄마 모습은 거의 움직임이 없다.


예전에는 혼자서 우리를 막 앞질러 가는 통에 엄마를 붙잡느라 손을 잡고 걸었어야 했는데, 이제 엄마는 옆에서 부축해 줘도 잘 걸으려 하지 않고 다리조차 제대로 펴지 않는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걷지 못하는 건지,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 다리에 힘을 주지 않는 건지… 혹은 겁이 나서 오히려 걷지 않으려고 힘을 주는 건지 모르겠다. 제대로 걷지 않고, 옆에서 부축해서 거의 들고 옮기다시피 해야 아주 조금 걷는 정도이다. 엄마가 힘들어하니 걷거나 산책은 이제 엄두도 안 나고, 휠체어로 움직여야 할 상태가 되어버렸다. 병원에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아보려 해도, 엄마는 검사 기기에 들어가는 게 무섭다고 하며 협조가 되지 않으니 병원 진료조차 쉽지 않다. 


요양원 선생님은 엄마가 거의 누워만 계신다고 욕창 매트리스를 주문해야겠다고 했다. 요양원 입소 초반에는 배회 증상 때문에 밤도 안 자고 돌아다녀서 우리를 걱정시키던 엄마였는데, 1년 사이에 욕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말도 많이 없어진 엄마. 음식을 드리면 "참 맛있다. 너도 먹어라"라고 하거나, 혹은 우리가 옆에서 자꾸 말을 걸 때 "저 사람들 지나가니까, 가만히 말해"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이다. 우리를 알아보는 것도 줄어들었다. 다만 아이들을 좋아하는 엄마는 여전히 애들이 귀여운지 지나가는 아이들, 그리고 유치원생인 조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저녁에 피곤해 보이는 엄마는 침대에 눕히고, 우리끼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간에 엄마가 잘 주무시는지 잠깐 방에 들어가서 확인하는데, 엄마가 눈을 떴다.

"엄마, 깼어? 어디 불편해?"

엄마는 말이 없이 가만히 나를 본다.

"나 엄마딸, OO이"

그러자 엄마가 손을 뻗어 내 볼을 쓰다듬는다.

"우리 OO이, 아깝다. 맨날 고생만 하고"

갑자기 눈물이 난다. 나를 알아보는 엄마가 고맙고 반갑고, 그 와중에 자식들 고생했다고 말하는 엄마가 안타깝고...



몇 달 사이 활동량도, 말수도 많이 줄어들어버린 엄마를 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말 친절하고 엄마를 잘 돌보아주는 요양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엄마를 요양원에만 맡겨두고 너무 내버려 두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와서 돌본다면 엄마의 상태가 조금 더 천천히 나빠질까? 보장은 없다. 어쩌면 어설픈 간병으로 낙상 등의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엄마를 이렇게 요양원에만 맡겨두다가 엄마가 돌아가시면, 아쉬움이나 후회가 남지 않을까? 적어도 가족들이 간병을 해봤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 덜 아쉽지 않을까?

내가 모셔오면 하루종일 옆에서 간병할 수 있을까? 엄마가 지금 이 상태로 주간보호센터는 갈 수 있나? 휴직을 하고 엄마를 돌본다 해도 나 혼자 24시간 내내 볼 수는 없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은 얼마나 받을 수 있나?

무엇보다 내가 아침, 저녁으로 내 아이를 챙겨야 하는데, 엄마를 돌보면서 아이를 챙길 수 있을까? 아픈 할머니와 같은 공간을 쓰기 싫어하는 가족을 설득할 수 있을까?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게 힘들어서 독립된 공간을 구한다면 아침저녁 두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림을 챙길 때 우리 엄마가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은 어떻게 하지?


엄마를 모셔오는 일 한 가지에 따라올 수많은 고민과 걱정들이 줄을 잇는다. 내가 엄마를 모셔와서 돌볼 수 없는 이유는 백 가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렇게 요양원에 엄마를 두었다가 나중에 엄마와 헤어지게 되면, 지금 그나마 덜 나빠졌을 때 엄마를 더 적극적으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까?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끝없는 의문과 고민 사이에서 밤새 뒤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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