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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Feb 28. 2024

여행 첫 날, 거지가 됐다!!

나한테 왜 이래

혼자인 여행도 아니었다. 일행 2명이 있었다. 오히려 혼자였으면 더 조심했을까…


소매치기로 유명한 스페인이다. 하지만 관광하러 여행 온 것도 아니고 하루 중 대부분은 업무장소에 있을 예정이라 별로 긴장하지 않았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금, 여권을 넣고 다니려고 복대까지 챙겨 왔다. 조심히 잘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도착 첫날,

공항에서 숙소로 가려고 기차를 탔다. 한 정거장을 갔는데 일행 중 길잡이를 담당한 이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기차를 잘못 탄 것 같단다. 일단 내렸다. 한 명은 의자에 앉아 일행들의 캐리어를 지키고, 길잡이는 기차시간을 확인해 보겠다며 움직였다. 혼자 기차정보를 찾느라 고군분투하는 그에게 미안해서 같이 찾아보려 했다.


내 백팩에 노트북이 들어있어서 무거웠던지라, 일행이 앉아있는 곳 바로 옆 자리에 백팩을 내려놓고 길잡이와 전광판 앞에서 기차노선, 시간 등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우리가 움직인 거리는 10미터도 채 안 되었고, 시간은 2-3분에 불과했다.

자리에 돌아왔는데… 없다!!!!


일행 한 명과 캐리어 3개만 있다. 붐비지도 않고, 사람도 거의 없던 플랫폼이었다. 누군가 다녀갔을 것 같지도 않은 상황인데 내 가방만 사라졌으니, 순간 ‘내가 기차에서 안 들고 내렸나? 가지고 있던 건 맞나?’ 하며 혼란스러워졌다.


앉아있던 일행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어떤 남자가 옆 의자에 앉아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고. 외국어로 뭐라 묻길래 스페인어 못한다고 대답했을 뿐이라고. 가방이 사라진 것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고.


노트북과 현금은 물론 모든 신용카드와 여권도 가방에 들어있었다. 패닉이었다. 옆에 있던 스페인 청년에게 역무원이 어디 있냐, 경찰서가 어디 있냐 물었더니 영어를 잘 못한다면서도 친절하게 번역기를 돌려가며 경찰서 위치를 알려주었다.

심심한 유감을 표하면서 그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

“well, this is Barcelona”



가방을 놓고 움직인 것에 대한 자책과 도난당한 물품들에 대한 아쉬움, 대체할 수 없는 노트북 자료에 대한 좌절이 뒤섞여 밤새 머리가 복잡했다. 다음날 긴급여권 신청하러 간 대한민국 영사관은 나 같은 사람이 줄줄이 들어왔다. 카페에서 가방을 도둑맞은 사람, 호스텔 락커가 통째로 털린 사람을 만났다. 다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간간이 터져 나오는 깊은 한숨에 또 서로 공감했다.


살면서 이런 것도 받아보는구나.


다음날부터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집중하기 힘들었다. ’ 잊어버려야지 ‘ 생각하면서도 ‘아~ 그때 그냥 택시로 바로 숙소에 갔더라면’, ‘아~ 그때 무거워도 가방을 메고 있었다면’ 뒤늦은 후회를 멈추기 힘들었다.


돈도 중요한 물건도 다 잃어버리고 바르셀로나 길거리 다니는 사람이 다 도둑처럼 보이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그냥 집에 가고 싶어졌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신나던 여행지가 갑자기 지옥이 되어버렸다.


이 놈의 스페인, 다시는 안 와!!!


근데… 어차피 안 올 거면 이번에 열심히 즐기고 가야지. 그 도둑놈은 이미 내 가방도 다 버리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놀고먹고 있는데, 그 도둑놈 때문에 우울해봐야 나만 손해지.



내 아이가 이런저런 불평을 할 때면 “그래도 이 정도라 얼마나 다행이야. 더 나쁜 경우들도 있는데…“라고 허울 좋게 위로해 줬는데, 막상 내 일이 되니 그게 쉽지 않다.


나한테 중요한 물건일수록, 애정이 담긴 물건일수록 마음을 비우고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감사하기가 참 힘들다.

나이 들수록 비우는 법, 놓는 법도 배워야 하는데 아직은 잘 안 되는구나. 이런 내게 강제로 ‘무소유 정신’을 가르쳐준 도둑놈, 아주 고오~~~ 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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