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월급쟁이이지만, 다행히 물욕이 별로 없는 편이다. 안 사보고 안 써보니 좋은 걸 몰라봐서인가, 명품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딱히 갖고 싶지도 않다. 물론 내가 소유욕에 해탈한 훌륭한 인격을 가져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나의 비루한 몸뚱이는 보세 바지를 입든, 꽤나 값나가는 바지를 입든 촉감이나 활동성의 차이를 못 느끼고, 나의 낮은 안목은 핏의 차이를 날카롭게 캐치하지 못할 뿐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진짜 좋은 거 입어보면 확실히 달라. 딱 느껴진다니까"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렇게 둔감한 나조차 그 차이를 딱 느껴서 비싸고 좋은 게 마구 가지고 싶어질까 봐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백화점의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만져보다가도, '몇 달 뒤면 아웃렛에서 싸게 팔건데 뭘'이라며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돈을 아끼지 않는 곳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여행이나 체험처럼 새로운 경험에 돈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나 친구 등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돈이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면 내가 사겠다고 (없는 주제에) 호기롭게 지갑을 꺼내드는 일이 많다.
내가 친구를 만날 때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은 친구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친구를 아끼는 마음, 뭐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은 애정을 그렇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사는 것만큼 친구가 돈을 써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친구가 부담을 느낄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 사고 두 번 사고, 세 번을 살 때까지 친구가 지갑을 꺼내지 않으면 기분이 상한다. 돈을 많이 내고 적게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맛있는 밥을 샀는데 그 친구는 커피 한 잔조차 사려고 하지 않으면 '나한테 커피 한 잔 사는 게 아까운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나와의 관계에 돈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그 마음에 기분이 상한다.
돈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의견 차이 역시 그렇다. 비슷하게 양보하고 배려해야 관계가 유지된다. 회사 동료나 친구 사이에서 의견의 충돌이 있으면 한쪽이 양보를 하거나 타협을 한다. 양보나 타협의 암묵적인 룰은 '반반'이다.
'지난번에 내가 양보했잖아. 그럼 너도 한 번은 양보해야지'라거나, '양쪽 다 어느 정도 물러나서 이 정도 타협안이면 중간이지 않나?' 뭐 그런 생각으로 절충안을 내놓게 된다. 양보나 타협으로 의견 조정이 쉬이 되지 않는 관계는 감정이 상한다. 그래서 멀어지게 된다. 생판 남과도 이렇게 양보하고 타협하며 맞춰가는데, 오히려 가족 간은 서로 끈끈한 애정으로 묶여있으니 서로 더 많이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을까?
남편이 집안을 너무 어지르고 살아서 별거를 한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소식을 듣고는 조금 웃겼다. '집안을 어지르는 게 별거의 이유라고?' 별거의 이유치고는 황당했고, 너무 가벼운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청결의 기준 차이로 싸우면서도 둘 중 어느 한쪽이 조금 더 청소를 하고 치우며 사는 게 내 주위 많은 부부들의 모습이니까.
그러나 매번 쓰지도 않을 물건들을 사들이고 쌓아놓으면서도, 안 쓰는 물건은 치우라고 말하는 부인에게 "내가 내 돈으로 산 물건을 내 집에 쌓아두는데 왜 잔소리냐"고 했다는 지인 남편의 말에, 별거라는 의사결정이 이해가 되었다.
결혼 초반 나와 남편의 부부싸움 원인은 8할이 술이었다. 나머지 2할 중의 절반은 주말에 시가에 가는 문제였다. 가족모임에 친척 결혼과 같은 집안 행사를 챙기다 보면 거의 2주에 한 번씩은 주말에 시가에 가야 했다. 집안 행사가 토요일이라도 효자인 남편은 금요일부터 시가에 가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고, 금요일 저녁에는 차가 막힌다며 반차를 내고 이른 오후에 출발하자고 했다. 집에 와서 옷만 갈아입고 출발하려는 남편과 달리, 나는 아이의 기저귀부터 옷가지, 내가 갈아입을 옷, 주말 동안 집을 비우느라 처리해야 할 쓰레기까지...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러면 기다리던 남편은 나의 준비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이미 출발할 때부터 기분이 나쁜 상태였고, 우리 둘은 침묵 속에 두 시간을 달려 시가에 가고는 했다.
토요일에 집안 행사를 하고 바로 우리 집에 오는 것도 아니었다. 일요일 아침을 먹고 나서 시부모님은 남편에게 "피곤할 텐데 좀 자라"라고 하셨고, 눈치 없는 남편은 방에 들어가서 눈을 붙였다. 나는 아이를 안고 시부모님과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싹싹한 며느리 코스프레'를 했고, 점심을 먹고 난 설거지를 끝마치고 나서야 집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일요일 오후 서너 시에 집에 도착하면 다음날부터 출근해야 하는 나는 밀린 청소와 집안 정리, 아이 이유식 만들기 등 저녁까지 자리에 앉을 틈도 없이 바빴다.
주말 동안 제대로 못 쉬고 집안일이 쌓여서 힘드니 시가에 가는 횟수를 줄였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신랑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내 부모님 보러 내 집 가는데 왜 당신 눈치를 봐야 해?"
내가 부부싸움을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 중의 하나는 "제발 룸메이트에게 하는 것만큼만 해"라는 것이었다.
방을 어지르고 사는 문제도, 가족행사에 가는 문제도 오히려 룸메이트 같은 남남이라면 비슷한 수준에서 맞추고 타협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같이 쓰는 공간에서 내 물건을 치우고, 같이 하는 일을 상대방이 피곤해할 때 가끔 나 혼자 하는 정도의 배려라도 했다면 부부간 갈등이 훨씬 줄었을 것이다.
나를 좋아하니까 나에게 맞춰달라고 말하는 것은, 애정을 무기로 협박하는 짓이다.
내 가족이니까 내 기준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정폭력이다.
애정으로 묶인 관계라도 남남이다. 아이도 엄연히 독립된 인격체인데, 부부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남에게 하는 것만큼의 존중과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