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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사춘기가 되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일

by 새벽한시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상식이란 18세까지 습득한 편견의 집합"라고 말이다.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규칙. 우리는 그것을 상식이라고 부른다.

물론 자라온 환경이나 성별, 나이에 따라 조금씩 생각이 다르기는 하다. 그래서 항상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버릇이 없다고 하고,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회에서 부대끼고 살다 보면 어느 정도 공감하는 선이 있게 마련이다. 마이클 샌델의 <Justice>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허리케인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호텔 지배인이 터무니없는 숙박비를 요구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합리적으로 책정된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상황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그리고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TV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진짜 이상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내가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예컨대 나의 직장동료들이나 나의 친구들, 우리 동네의 사람들은 대부분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나와 같은 상식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와 함께 사는 가족이 나와 비슷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해서 살다 보면 상식의 선이라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결혼을 하면 사회가 바로 둘의 관계, 혹은 아이를 포함한 세 명에서 대여섯의 관계로 좁혀진다. 다수의 의견에 기반한 중론이라는 게 없다. 설사 있다한들 대부분의 가정 내 의사결정과 질서는 부모가 결정하기 때문에 부모의 생각이 절대적이 된다. 그래서 자꾸 부부싸움을 하다 보면 "네가 맞네, 내가 맞네"로 싸우게 된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대방의 사고방식에 대해 논하다 보면 결국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당신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봐. 당신 생각이 맞는 건지"


집안일 배분이나 부모님을 챙기는 문제에서의 의견 차이는 단순히 가치관 차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차이도 있고, 성별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가진 상식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다.




사춘기가 된 아이는 늦게 잔다. 그리고 늦게 씻는다. 밖에 나갔다 오면 바로 씻고 쉬었으면 하는 게 엄마 마음이건만, 아이는 집에 돌아와서 한참 동안 게임하다가 혹은 쉬다가 12시가 되어서야 씻는다.

씻는 것도 10분 만에 끝나는 게 아니다. 대체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 씻어대는지, 샤워시간이 한 시간은 기본이다.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고 하다 보면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고 당연히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한다.

본인이 그런 생활에 잘 적응하고 문제없이 생활한다면 괜찮지만, 학교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아이가 잠이 부족한가 봐요. 오전에 시간에 많이 졸려하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결국 폭발하게 된다.


밤 10시가 되면 그즈음부터 아이에게 "그만 놀고 씻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잔소리도 하루이틀. 매번 미루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 보니 지친다. 그래서 아이랑 약속을 했다.

"엄마가 씻으라고 잔소리 안 할 테니, 너도 늦어도 11시에는 씻어라. 그래야 다음날 학교 갈 때 잘 일어나지 않겠니"

"알겠어요"


아이와의 논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고, 그 약속을 지키는 일 따위는 육아서에 나오는 동화 같은 소리이다. 약속이 무색하게 아이는 시간 상관없이 게임을 하며 놀고 있고, 그걸 보는 엄마는 속이 탄다.

'아. 저러다 또 늦게 자고 아침에 졸려서 힘들면, 학교 안 간다고 짜증 낼 텐데...'


안절부절이다. 결국 또 잔소리를 하게 된다.

"아들아, 11시 넘었잖아. 빨리 씻어"

"아, 알았어. 이것만 하고"

"너 엄마랑 늦어도 11시에는 씻는다고 약속했잖아"

"아 진짜. 알아서 할 텐데 왜 자꾸 씻으라고 해"

"왜 그러겠어? 너 아침에 졸리면 학교 안 간다고 짜증 내고, 졸려서 못 가겠다고 하니까 그러지"

"내일은 지각 안 하고 학교 가면 되잖아"


결국 다른 카드를 꺼낸다.

"우리가 씻으면 아랫집은 물소리에 시끄러울 거 아냐. 아파트에서 밤늦게 씻는 건 예의가 아니지"


나와 같이 사는 타인이 한 마디 보탠다.


"애가 알아서 할 텐데 내버려둬. 당신은 왜 씻는 것에 집착해?"


실제의 나의 생각은 그러했다. 공동주택에서는 밤에 세탁기 돌리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씻는 것도 밤늦게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상식이 타인에게는 비상식인가.

상식의 선이 사람마다 굉장히 다르다는 것에, 그것도 나와 생전 얼굴 볼 일 없는 타인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성격이 맞는 구석이 있어서 같이 산다고 생각했던 사람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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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울 때 가장 좋지 않은 것은 부모 간의 가치관과 육아방식이 다를 때이다. 아이가 어릴 때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사춘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부모 간의 일관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보여줘야 한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기 전에, 부모는 합의를 해야 한다. 아이에게 어떤 가치관을 보여줄 것인지 말이다.

적어도 아이에게 가르칠 인생태도, 가치관에 대해서는 부모 간에 합의가 되지 않으면 사춘기에 그 갈등이 폭발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혼란스러워하며 반항으로 이어지고, 부부간의 갈등은 최고조가 된다.


그러니 아이가 어릴 때에 적어도 아이에게 가르칠 가치관이나 생활습관에 대해서는 부부간의 일관된 규칙을 만들어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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