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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죽어간다.

내 머리에서마저.

by 새벽한시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 정신없이 엄마의 병원을 돌보던 와중에,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달력의 어제 날짜에 동그라미가 그러져 있다.


아빠 생일


돌아가신 아빠의 생신이다. 사람이 죽으면 생일이 아니라, 보통 기일을 챙기지만 엄마는 매년 아빠의 생일도 챙겼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매년 아빠의 생일날짜가 되면 엄마는 밥과 미역국, 나물, 고기 등 생일상을 준비했다. 엄마는 정성스레 생일상을 찬합에 담고, 아빠가 좋아하던 과자와 커피를 사들고 아빠의 산소를 갔다.

비싸지도 않은, 달달구리 레스비 캔커피와 센베 같은 옛날 과자를 좋아하던 아빠. 아빠의 산소에 갈 때마다 옛날 과자와 캔커피를 사며, 우리 형제들은 "아빠가 우리에게 부담 안 주려고 입맛이 이렇게 저렴하셨나 보다"라고 농담을 나누었다.

우리가 아빠의 산소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동안, 엄마는 산소 주위 잡초를 뽑고 아빠의 비석을 닦느라 분주했다. 아빠 산소 앞에 앉아, 아빠가 좋아하시던 트로트 몇 곡을 틀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집에 돌아오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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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이후로는, 언니가 형부, 조카들과 함께 아빠의 생신날에 음식을 준비해서 아빠 산소를 찾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의 입원 때문에 온 형제가 정신이 없어서, 아빠의 생신날 그 누구도 단톡방에 한마디 올리지 않고 조용히 지나간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다.

아빠의 생일을 그냥 넘어가는 건 진짜 우리의 인생에서 아빠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매년 아빠 생신을 챙겨 왔다. 어느 순간 그것마저 서서히 안 하게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아빠의 생일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지나갈 줄은 몰랐다.

아빠가 이렇게 서서히 잊혀가는 건가 싶다.


영화 코코에서 사람이 정말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세상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질 때라고 했다. 나의 아이와 조카들은 이제 할아버지를 잘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 아빠와 가장 가까웠던 엄마는 이제 자신마저도 잊어가고 있다.

나와 형제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아빠를 기억하는 사람일 텐데, 우리 머리에서마저 아빠의 기억이 흐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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