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왔는데...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왔다. 학생 때도 범생이었고, 직장에서도 범생이 기질은 어디 가지 않아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다. 일도 재미있었다. 학부만 마친 상태로 어찌어찌하다가 입사하게 된 연구원은 새롭게 배워가는 재미가 있었고, 직장을 다니면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하며 성장해 나가는 기쁨도 느꼈다.
흔히 직장인들은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하고, 퇴근시간 혹은 휴일만 기다리는 존재로 묘사되지만, 다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출근해서 내 일을 하는 게 즐거웠고, 성과가 나올 때면 재미와 성취감을 느꼈다.
엄마의 간병, 사춘기 아들의 반항, 그 외 소소하게 반복되는 인간과의 갈등들...
사소한 부침은 있었지만 내 인생은 편안했다. 커리어 면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내 일은 즐거웠고 잘할 수 있었으며, 안정적이었다.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20년 동안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이대로 늙어서 죽으면 아쉬울 것 같았다.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점점 실수가 잦아지는 엄마가 걱정스러웠다. 경도인지장애를 진단받기 전부터 엄마의 깜빡거림과 잦은 실수가 눈에 걸렸고, 엄마의 변화를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또 언젠가는 마주할 헤어짐을 위해 엄마의 기록을 남겨놓고 싶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엄마와의 기억, 일상, 엄마가 치매에 걸려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2021년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2024년에 그 결과가 책으로 나왔다.
21년에 나의 첫 글은 결벽증을 의심할 정도로 깔끔했던 엄마의 옷과 집안이 지저분해져서 걱정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 주간보호센터와 요양보호사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며 참 힘든 시기를 보냈다. 결국 혼자서 밥을 거의 안 챙겨 먹는 엄마가 걱정되고, 혼자 두면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함에 엄마를 요양원에 모셨다.
2023년에는 주말마다 엄마를 보러 가서 같이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꽃구경도 하러 다녔다. 그러나 채 1년도 되지 않아 엄마는 거동이 불편해졌고, 이후 인지능력은 더더욱 떨어졌다.
책이 출간된 후, 엄마를 보러 가서 책을 선물했다.
"엄마~, 엄마 덕분에 내가 이렇게 책을 냈어. 엄마 이야기가 여기 적혀있으니까 엄마 책이기도 하네. 여기 봐봐, 엄마가 쓴 일기장도 여기 실려있다?"
그러나 그즈음 엄마는 자녀들도 가끔 못 알아볼 정도였으니, 책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안쓰럽고, 어쩌면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모를 나의 형제들과 나의 미래가 불안했다.
'치료는 못할지언정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을 늦추고, 몸에 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만 있어도 내 집에서 가족들과 더 오래 지낼 수 있을 텐데... 왜 그런 솔루션이 없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음 한 켠에 묻어두었던 저 고민이 떠올랐다.
어느 것 하나 의도하지 않았다.
내가 평생 건강에 대한 연구를 해왔지만, 그것이 엄마의 치매를 막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해 속상했다.
그러나 나의 연구경험을 이용하여 솔루션을 만들면, 나중에 나의 형제들과 내가 치매에 걸리는 걸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브런치의 글이 책으로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엄마의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이었고, 책 출간으로 이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했던 고민을 반복할 누군가를 위해 내가 해결책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40대 아줌마인 나는, 스타트업이라는 꿈을 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