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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절대 안 보인다.

by 새벽한시

우리는 흔히 타성에 젖어 사는 삶을 이야기할 때 '끓는 냄비 속의 개구리'를 비유로 든다.

그 비유를 들을 때마다 내가 하는 생각은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뜨거운 물에서 익어가는 개구리와 다를 거라는 자기 위안, 냄비의 물이 뜨거워지기 전에 나는 용감하게 밖으로 나와야겠다는 다짐 등등. 그러나 실상 내가 그 개구리의 입장이라면 과연 냄비 밖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평생 직장인으로, 그것도 나름 만족하며 살았던 직장에서 살아왔던 내가 창업을 꿈꾼다는 건 냄비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회사 내에서의 부당한 시스템, 인맥과 라인으로 얽힌 보직,열정이 없는 동료들과 같이 일할 때의 독박과 번아웃… 여러가지 단점도 있지만 나는 내 일이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이 너무 똑같았다. 연구원은 편안했고 재미있었지만 지루했다. 이렇게 20년을 더 근무하다가 은퇴하고싶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엄마의 일을 계기로 창업이라는 걸 처음 생각해보았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큼이나 두려운 마음이 컸다. 아직 냄비의 물을 적당히 따뜻하고 견딜만했다. 여기는 내가 속속들이 아는 시스템이라 편안하고 안전했다. 냄비 밖으로 나가면 무엇이 있을지, 내가 원하는 새로운 웅덩이나 호수를 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새로운 웅덩이에 닿기도 전에 마른 땅 위에서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하기도 했다.



주위에 사업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디에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다.

인터넷으로 알음알음 검색을 해보았다. 'K-start up' 웹사이트를 들어가보니, 예비창업자부터 창업경력이 몇년 된 사람들까지 단계별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넘쳐났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 말고도, 민간기업이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교육, 지원금, 공간, 네트워킹 등 뭐가 너무 많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동안 몰랐지만 창업을 위한 지원프로그램은 넘쳐났고, 창업 준비를 위한 교육과정 역시 셀 수 없을만큼 많았다.


살면서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던 곳으로 눈을 돌리자, 그 곳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 새로운 세상은 지금까지 내가 살던 곳과 물리적으로 분리된 공간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오던 세상인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 뿐이었다.




내가 살면서 백 번도 넘게 가본 기차역인데, 그 한 켠에 '스타트업 회의공간'이 있었다. 예전에는 그 공간을 봐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 이름을 읽었더라도 와닿지 않았나보다. 그렇게나 들락거리던 곳인데, 거기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까.

내가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비로소 내가 사는 세상 곳곳에 스타트업을 위한 공간, 시설, 제도가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크릿' 같은 책에서 ,‘간절히 바라면 우주의 기운이 와 닿아 이루어진다‘라는 내용을 보며 '뭐 이런 헛소리가 다 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책이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 해내는 사람들의 원칙'라는 책에서 이를 칵테일 파티 효과로 풀이하는 것을 보고 납득이 되었는데, 시끄러운 칵테일 파티에서도 누군가가 말하는 내 이름을 기가 막히게 잘 들린다는 거였다.

결국 세상에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고들여다봐야 내가 바라는 것과 관련된 것들을 잘 찾아낼 수 있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평생 학생, 교수, 연구원들만 만나면서 살아왔는데

창업 교육을 받으면서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 투자자들, 그 외 여러가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내가 같이 했던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심사가 너무 다른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가 겪는 세상이 한층 넓어지고 다채로워졌다.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던 새로운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게 정말 재미있고 신났다. (물론 단계단계마다 난관에 부딪치고 평가에서 까이고 탈락하는 건 별로 재밌지 않다...)


내가 사는 세상에 창업과 관련된 사람들, 시스템, 프로그램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내 머리에 창업이라는 단어가 들어오고 나서야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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