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창업하라고 온 지구가 도와주는 거야?
내가 창업한다고 했을 때, 내 주위의 사람들은 "대단하다" 혹은 "부럽다"고 했다.
"부럽다. 나도 사업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내가 창업을 해보라고 바람을 넣으면, 돌아오는 대답이 비슷비슷하다. 창업할 수 없는 이유들.
그러나 변명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유들의 나열에 나 역시 반박하기 힘들다. 나 역시 몇 달 전까지 혹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창업하려고 마음을 먹자 그 고민들에 대한 해결책이 저절로 나타났다.
신기했다. 마치 내가 결심을 하니 우주가 나에게 도움을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문제가 사라지거나 해결된 것은 아니다. 내가 했던 고민들에게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큰 고민을 해결한 것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나는 엄마의 경험으로 바탕으로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치매로 이환되지 않고, 이환되더라도 초기 단계에서 최대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아이템.
사업을 구상하고 아이디어를 만들 때는 즐겁기만 했다. 잘 만들면 나와 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사업도 잘 되어서 승승장구할 것만 같다.
그러나 평가위원이나 투자사들이 실제 예상매출 규모, 손익분기점, 경쟁사와의 비교 우위 등을 세세하게 파고들 때면 내 머리도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갈 지경이다.
그럴 때면 스스로도 의구심이 든다. 과연 내가 만들고 싶은 이것이 돈이 되는 것인지, 사업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나조차도 자신이 없다. 내가 생각한 혹은 바라본 기업가들은 항상 자신감에 차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하는데, 나는 스스로도 이렇게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다면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닌가.
얼마 전에 읽었던 <창업가의 습관>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왔다.
[... 성공을 결정하는 건, 아이템이 아니라 창업가의 태도이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고객의 반응에 따라 아이템을 끊임없이 다듬으며 고객의 이야기를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아이템이 지금 완벽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고객의 의견을 듣고 반응을 살피며 거기에 맞춰나가면 된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이템 자체만으로 성공가능성을 점치느라 힘겨웠던 내게는 책에서 발견한 이 한 구절이 큰 힘이 되었다.
창업을 준비하면서도 일을 그만둘 결심은 서지 않았다. 당장 매출이 발생하지도 않을 뿐더러, 아이템의 성공가능성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보통 배수진을 쳐야 전력을 다 한다고 하잖아. 창업 하나에만 집중해도 될까 말까인데 내가 직장일과 창업, 둘 다 놓지 않고 하려는 게 욕심 아닐까?"
걱정하던 시기에 우연히 밀리에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오리지널스>
그 책에 대해 들어본 바도 없고,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몰랐다. 다만 유명한 <기브 앤 테이크>의 저자, 애덤 그랜트가 쓴 책이라길래 호기심에 펼쳐보았다.
'어떻게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가'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운명처럼 그 책에서는 내가 고민하던 문제에 대해 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 창시자, 원조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고 싶다. 그들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 직장을 계속 다닌 창업가들이 실패할 확률은 직장을 그만둔 창업가들이 실패할 확률보다 33퍼센트 낮았다....]
하나에만 전력을 다 하는 것보다 오히려 위험을 회피하고자 다른 일을 병행했던 창업가가 더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유명한 사업가, 성공한 사업가들이 확신에 차서 모든 것을 거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안을 마련하면서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나의 아이템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고, 성공한 사업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이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사업을 하려면 인맥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남들은 나를 E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는 사람들과 오래 어울리면 에너지가 소진되어서 혼자 있는 시간을 보충해야 하는 I형이다.
내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한 협력, 사업을 위한 정보 등 모든 절차가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진행이 되는 것인데 나의 인적자원과 네트워크 역시 넓지 않았다. 그래서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평가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타 기관 연구자와 차 한 잔 하다가 또 다른 전문가를 소개받았다.
예전 같으면 쌓인 일을 처리하느라, 평가업무만 끝나고 부리나케 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템 개발 분야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연구자라서 몇 마디 질문을 던지다가 예상하지 못한 분야의 전문가까지 소개를 받은 것이다.
또 이전에 같이 연구하면서 만났던 교수님으로부터 나와 비슷한 아이템을 개발한다는 연구자 이야기를 듣고, 만남을 부탁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계를 확장시켜 나가다 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내게 도움과 조언을 주었다.
스스로 의지가 가지고 적극적으로 찾아본다면,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내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준다.
우주가 정말 날 도와주기 위해 내가 고민하는 시점에 때맞춰 그 책을 읽게 해 주고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계속 내가 그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히 읽은 책에서도 해답을 찾아내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이가 될 뻔한 사람들을
내가 간절하게 붙잡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깊은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다.
창업을 못할 이유도 많지만, 그것을 해결할 방법도 많다.
창업이 아니라 다른 문제, 예컨대 취업, 진학, 인간관계, 자기 계발 등의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있다. 어디까지나 확률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