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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Dec 04. 2023

현대판 고려장인가요?

고민하는 이들에게

엄마를 요양원에 모신 지  일 년이 되었다. 작년에 요양원에 처음 입소했을 때는 저하된 인지능력에 비해 신체적으로는 너무나 건강했던 엄마였다. 몸도 튼튼하고 배회증상도 심했으니, 천방지축 아이처럼 여기저기 종일 다니는 통에 엄마를 따라다니던 간병인들이 힘들어했다.  


올해 설에 엄마를 모시고 언니집에서 명절을 보낼 때 온 가족이 엄마를 따라다니다 지쳐서 하나둘씩 드러누웠다. 엄마는 하루종일 문이란 문은 한 번씩 다 열어보고 닫기를 반복하며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올해 옮겼던 두 번째 요양원에서는 엄마가 거의 이틀 동안 잠을 안 자고 돌아다녀서 '이러다 쓰러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요즘 엄마는 예전에 비해 활동량이나 활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몇 달 전 엄마의 안정제 용량을 조금 늘렸고 약이 효과가 있는지 많이 차분해졌다. 그때는 엄마가 밤에 안 자고 방마다 다니며 다른 사람들을 깨우고, 엄마를 씻겨주려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때리기까지 했다. 같은 방의 어르신에게 "우리 집에서 나가라"며 화를 내서, 요양원 선생님이 엄마를 모시기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여기서 쫓겨나면 더 이상 갈 데가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안정제 용량을 올리는 것에 동의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를 정서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되기도 했다.


이후 엄마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하루종일 왔다 갔다 하던 행동이 눈에 띄게 좋아지긴 했다. 추석에 모시고 나왔을 땐 온 가족들과 차분하게 앉아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엄마의 배변 관련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화장실을 수시로 가고 심지어 방구석에 배뇨를 하기도 했는데, 조금이라도 요의를 느끼면 이를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해결을 하는 것 같았다. 냄새나 청소 등의 문제 때문에 간병인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엄마가 제대로 뒤처리를 못해서 젖은 속옷으로 인한 습진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안정제 용량을 늘린 이후에는 강박적으로 화장실을 찾는 증상이 줄어들어 배뇨배변으로 인한 불편함이 줄었다.


하지만 차분해진 만큼 말수가 줄고,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게 걱정스러웠다. 건강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인지 혹은 엄마를 안정시키기 위한 약의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다. 치매라는 병의 증상이 워낙 사람마다 다양하다 보니 어디까지 치매질환으로 인한 것인지, 어디부터 다른 신체적 문제 때문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요양병원 실장님의 전화가 왔다.  엄마의 변비가 심해져서 요 며칠 아예 변을 보지 못했단다. 엄마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모시고 가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배에 변이 가득 차있었다고 했다. 나와 통화를 하며 실장님은 "어머님이 변을 보지 못해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핑거로 조금씩 빼내고 있다"고 했다.


'수지관장', 영어로 '핑거에네마'는 말 그대로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딱딱한 변을 깨 주고 꺼내주는 방법이다.

출처: 나무위키


 아무리 장갑을 끼었다 한들 남의 응가를 손으로 직접 빼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특히 나처럼 비위가 약한 사람은 더더욱 말이다. 내 부모라도 쉽지 않을 텐데,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수지관장을 해주셨다니... 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 속으로 정말 고마웠다. 



육아에 대한 책임감과 남에게 맡기기 불안한 마음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을 최대한 안 보내고 종일 혼자 돌보는 엄마들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24시간 이어지는 육아와 집안일에 지쳐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표출될 정도라면, 엄마도 적절히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양육자가 힘든 상태라면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요양원에 엄마를 모실 때 고민이 많았다. 자식들이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도 컸다. 그러나 엄마와의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요양원이 거부할 정도로 증상이 심해진다면 그때는 우리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요양원의 도움이 받을 수 있는 상태라면 적극적으로 도움이 받는 것이 서로 간에 덜 힘들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요양원을 잘 골라야 한다. 올해 옮긴 두 번째 요양원은 정말 옮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부모님이 새로운 에서의 적응을 힘들어할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찜찜하다 싶으면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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