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지인들과 근황을 주고받다 보면 항상 나오는 말이다. 남의 집 아이들은 빨리 자란다는 말마따나, 나와 지인들이 시계 위를 천천히 걷는 동안 그 아이들은 시간을 달려 나갔나 보다. 나와 지인들의 얼굴에 주름 하나 느는 동안, 그 아이들은 그 주름의 몇 배만큼 키가 훌쩍 커져서 어느새 낯설어진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신 지 세 번째 명절이다. 요양원에 입소할 때는 치매 외에 신체적으로 너무나 건강해서, 프로그램 시간에 춤도 추고 요양보호사 대신 청소기를 돌리기도 했던 엄마였다. 그때는 엄마의 배회증상이 심하고, 목욕을 시키려는 요양보호사에게도 심하게 반항을 해서 오히려 문제가 많았다. '인지는 낮은데 몸만 건강한 상태가 오래가면 엄마를 돌보는 사람들이 힘들지 않을까'도 잠깐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1년 전 설날, 요양원 입소 후 첫 번째 명절이었고 언니가 엄마를 모시고 명절을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시가에 가서 차례를 지낸 후 언니 집으로 엄마를 찾아뵈었는데, 해맑게 웃고 있는 엄마와 달리 언니는 완전히 지쳐있었다. 엄마가 하루종일 집안을 뱅뱅 돌며 방문과 냉장고문, 서랍장의 문까지 열고 닫는 것을 반복했고 계속 신발을 찾는 통에 엄마의 신발을 눈에 보이는 곳에 두어야 했다. 혹시라도 엄마가 다칠까 봐 언니가 옆에서 엄마를 챙기며 따라다니다 보니, 엄마는 멀쩡한데 언니는 지쳐서 몸살이 날 지경이 된 것이다.
겨우 1년 사이인데 엄마의 상태는 많이 안 좋아졌다. 치매는 치매일 뿐, 엄마는 당뇨나 다른 심각한 질환이 없으니 몸은 꽤나 오래 건강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무지한 생각이었다. 인지가 떨어지면 제대로 건강관리가 되지 않는다. 운동량이 줄어드니 근력도 떨어지고, 치아 관리가 안되어서 잇몸염증도 생겼다.
요즘 엄마는 차에 타고 내리는 것도 힘들어한다. 차에서 내릴 때 땅에 발을 딛고 머리를 숙인 채로 무게중심을 옮겨서 차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엄마는 이게 되지 않는다. 우리가 엄마의 발을 차 밖으로 꺼내 땅에 딛고 해 주고 엄마의 몸을 안아 차 밖으로 나오게 하려 해도 엄마는 자꾸 엉덩이를 뒤로 빼며 앉으려 한다. 인지가 떨어져서 엄마가 해야 할 일을 이해 못 하고 우리에게 협조를 안 하는 것인지, 혹은 신체적으로 힘이 없어 그냥 주저앉으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오죽하면 팔과 다리에 끼우는 가짜 깁스가 명절이면 쇼핑몰 인기상품이 될까. 나 역시 결혼 후에는 차례 준비 때문에 끊임없이 음식준비와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우리 집에서야 일하다가 힘들면 중간에 쉬기도 하고, 엄마에게 조금만 하자고 툴툴거릴 수나 있지, 시가에서는 맘 편히 누울 나의 공간도 없고, 시어머니가 하자고 하면 그냥 해야 하는 며느리 입장이니 명절이 반갑지만은 않다.
또 짧은 연휴 동안 거리가 먼 시가와 친정을 다녀와야 하는 것도 그렇고, 빠듯한 살림에 제수비용과 부모님 용돈, 조카들 용돈까지 챙기면 가계부에 타격도 크니 명절이 다가오면 반갑기보다 부담감이 앞섰다.
이번 명절에는 엄마 요양원 근처의 리조트에 방을 잡아 형제들과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엄마 요양원 근처에 사는 남동생은 본인 집에서 모이자고 했지만, 나와 언니는 부담스럽다며 리조트를 고집했다. 엄마를 언제 모시러 갈 것인지, 저녁 메뉴로 뭘 사갈지, 다음날 아침은 리조트의 조식 뷔페를 먹을지 등등 언니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오랜만에 엄마랑 다 같이 소풍 가는 것 같아 즐겁기만 하다.
부모님이 건강할 때는 명절이 매년 두 번씩 꼬박꼬박 돌아오는 일상에 불과했다. 시가에 가서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고, 친정에 가서 가족들과 모여 맛있는 것을 먹고 웃고 떠드는 그런 일상.
엄마가 아프니 올해 설날과 내년 설날은 꽤 많이 달라지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설날이 얼마나 더 주어질지 모르겠다. 다만 그렇기에 온전히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즐기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