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강아지, 하니는 뇌수막염 진단을 받고 꾸준히 약을 먹었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더 나빠지지 않기만 해도 좋으련만, 상태는 날로 심해졌다. 비틀거리며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누워있다가 한 번에 잘 일어나지 못해 누운 채 버둥거리기도 했다.
정말 똑똑한 아이라서 절대 소변 실수를 안 하고 꼭 화장실에 가서, 그것도 사람이 쳐다볼 때면 문 뒤에 가서 쉬를 하던 강아지가 일어나지를 못 해서인지 집에 누운 채 소변본 걸 발견한 엄마와 언니는 충격을 받았다.
대학병원에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가 엄마 집에 가서 강아지를 데려왔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꽤나 크고 유명한 대학동물병원으로 갔다. 하니의 병력을 이야기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강아지가 뇌수막염 진단을 받고 약을 먹는 중인데, 비틀거리면서 걷는 게 심해지고 점점 움직이는 걸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동물병원 의사는 하니를 데려가서 몇 가지 검사를 했다. 그러더니 나와 하니를 데리고 동물병원 진료실 옆 복도로 나가더니, 하니를 내려놓고는 나보고 복도 끝까지 걸어보란다. 하니를 나를 따라서 복도 끝까지 쫄랑쫄랑 잘 따라왔다. 집에서는 비틀거리면서 잘 걷지 않더니, 이상하게 병원 복도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랄하게 잘도 따라왔다. 물론 걸음걸이도 아무런 문제 없이 말이다.
"하니 검사결과나 증상을 보니 뇌수막염이랑 좀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약을 쓰면 증상을 가리니까 며칠 동안 약을 좀 끊은 후에 증상을 지켜봤으면 합니다"
단호한 의사의 말에 약도 받지 못하고 하니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에 퇴근해서 집에 가보니 하니가 집에서 쉬를 한 채로 그 위에 앉아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병원에 뛰어가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하니를 안고 다시 동물병원에 달려갔다. 애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니 빨리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이다.
동물병원 의사는 다시 하니를 꼼꼼히 살폈다. 지난번처럼 내 뒤를 따라 걷게도 해보고, 하니를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내가 난리 치며 병원에 들어간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하니는 너무 잘 걷고 잘 움직였다. 의사는 비슷한 말을 다시 했다. "지금 증상은 괜찮아 보이는데요. 뇌수막염이 아니라 다른 질환일 가능성도 있는데, 약을 먹으면 증상을 가려버려서 정확한 진단이 힘들 수 있어요."
이 단계를 참고 넘겨야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에, 알겠다며 다시 하니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에는 걱정이 되어서 하니 옆에서 잠을 잤다. 잠을 자는데 잠결에 '탁탁탁'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하며 불을 켜고 보니, 하니가 경련을 하고 있었다. 입가에서는 침이 흘러내리고, 응가도 조금 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쓰러져있는 것이다.
너무 놀라서 침대를 뛰쳐나와 하니를 안고 야간동물병원을 찾았다. 놀라고도 걱정되는 마음에 울면서 하니를 차에 태우고 가는데, 경련이 끝난 후의 하니는 차 의자에 평온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첫 번째로 들른 야간동물병원은 당직수의사가 부재중이라고 해서 다시 다른 병원으로 달려갔다. 당직 중이던 수의사에게 하니의 상태를 설명하는데 눈물이 터져 나와서 엉엉 울고 말았다.
'대학동물병원의 그 의사 말 듣지 말고 그냥 약 달라고 할 걸'
'진단이고 뭐고 일단 상태가 심각하니 치료부터 하자고 할 걸'
하니를 입원시켜 놓고 집에 갔다가 오후 면회 때 다시 볼 수 있었다. 하니는 많이 안정되어 보였고, 무엇보다 사료를 엄청 먹었다. 집에서는 사료도, 간식도 거의 안 먹던 하니가 뭔가를 잘 먹는 게 정말 놀라웠다. 수의사는 "경련 후에 에너지 보충하려고 하니가 많이 먹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지만, 사료가 맛있나 싶어 집에 오는 길에 아까 먹은 것과 같은 종류의 사료를 3통이나 사 왔다.
주말 동안 병원에서 입원진료를 받다가 월요일에 대학동물병원으로 다시 입원을 시켰다. 면회를 가보면 아이가 벌벌 떨고 있는데, 경련 때문이라 했다. 일주일 동안 입원을 했고 퇴원 연락을 받았다. 퇴원해도 되는 상태냐는 나의 질문에, 수의사는 병원에서 더 해줄 건 없고 이제 할 일은 집에서 약을 잘 챙겨 먹이는 것이라고 했다.
야간병원에 입원했을 때 하니 모습.... 힘들어 보여서 너무 안쓰러웠다.
하니가 먹어야 할 약의 종류가 많고 복용법도 복잡해서 따로 노트를 만들어 기록해둬야 할 정도였지만, 퇴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하니를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하니를 데리고 엄마 댁으로 갔다. 그런데 입원 전 하니는 걷다가 비틀거려서 넘어지는 정도였는데, 퇴원 후에는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몸이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잡아줘야 할 정도로 말이다.
퇴원하고 엄마 집으로 온 날... 하니는 엄마를 반가워했지만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날 밤... 평소에는 절대 짖지 않는 하니였는데 이상하게 밤에 짖어댔다. 꼭 안아서 달래 보기도 했지만 잠시 조용해지다가 또 짖기를 반복... 왜 안 하던 행동을 하는지 하니가 걱정되기도 하고, 밤늦은 시간이라 하니 짖는 소리가 옆집에 시끄럽게 들리기라도 할까 염려되기도 했다.
밤새 중간중간 짖어대는 하니를 진정시키느라 잠을 설친 나는 아침에 자고 있는 하니 옆에서 다시 눈을 붙였다. 밤에는 계속 짖던 하니가 아침이 되자 상태가 괜찮은지 깊이 새근새근 잤다. 덕분에 나도 달게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 '하니가 꽤 오래 자네?'라는 생각으로 하니를 들여다본 순간.... 달랐다.
아까와는 달랐다.
아침에 자고 있을 때 하니 주위로 느껴지던 온기와 생명의 기운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느낌이랄까.
축 늘어진 모습의 하니의 모습에서 어둡고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엄마를 부르고, 동물병원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와 언니, 형부, 하니를 예뻐하던 조카들이 모두 모여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엄마의 친구분은 '원래 액땜처럼, 키우던 동물들이 주인 병 대신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다. 자네 요즘 어지럽고 아팠는데 이제 다 나으려고 그러나 보다'는 말로 엄마를 위로했지만, 엄마의 상심은 컸다.
'아마 하니가 오래 살았으면 엄마의 상태가 나빠지는 속도가 이렇게 빠르지 않았을텐데... 그럼 요양원을 들어가는 시기가 좀 더 늦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딱 한 번 엄마가 되었던 하니는 너무나 예쁜 세 마리의 강아지를 낳았다.
"낮에 대학동물병원에 갔을 때는 너무 잘 걸어서 상태가 이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는 나의 의문에, 야간동물병원의 수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들은 병원처럼 낯선 곳에 가면 약해 보이지 않으려고 아픈 상태를 숨겨요. 약해 보이면 공격당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동물병원에서 괜찮아 보였다고 정말 하니가 괜찮은 게 아니었는데...
하니가 아프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의사가 약 끊어보자고 했을 때 그 의견을 따른 게 너무 후회가 되었다. 내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해서, 하니를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고 자책감이 들었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실 때 우리 집 근처로 알아봤던 이유는, 엄마에게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에 평일에도 시간 빼서 달려갈 수 있는 여건이 형제들 중 내가 가장 좋았기 때문이었다. 거리 때문에 다른 형제들은 자주 면회 오기 힘든 만큼, 내가 더 열심히 면회를 가고 엄마를 챙겼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불안했다.
이러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해서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쩌지?
엄마가 스스로를 위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금, 오롯이 나의 선택이 엄마의 안녕과 행복한 삶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보호자'라는 말의 무게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