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4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2008년 작 <더 레슬러>는 꽤 재밌는 스포츠 영화이자 휴먼드라마다. 영광 가득했던 전성기를 보낸 프로레슬러 랜디 램(미키 루크). 그는 링 위에서의 함성을 잊지 못해 레슬링에만 몰두했고, 그 탓에 가족들과의 관계와 생계 모두 엉망이 됐다. 오랫동안 스테로이드를 맞은 심장은 이제 레슬링을 버텨내지 못하고, 결국 은퇴를 결심한 랜디. 그런데 링 밖의 세상은 왜 이렇게 차가운 건지.
영화를 보면서 조금 혼란스러웠던 건, 주인공 랜디가 정말 미키 루크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미키 루크가 랜디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 역시 랜디처럼 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스타였지만 교통사고와 연이은 성형 실패로 굴곡진 나날을 보냈다. 십수 년 만에 찾아온 이 작품에서, 미키 루크는 마지막 링에 오른 랜디 램 그 자체가 되어 비장하고 진실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선다.
학창 시절, 작품을 볼 때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감상해야 한다고 배웠다. 나는 그 말을, 허구의 세계에 이야기 밖 ‘실제’를 개입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 명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안에서 계속 서걱거렸고, 이 영화의 미키 루크처럼 어떤 작품에서 배우나 작가가 유난히 도드라질 때 더 그러했다. 미키 루크의 삶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면 이렇게 먼 지척의 내 마음을 흔들 수 있었을까.
영화를 생각하며 걷다가 떠오른 소설이 있었다. 몇 달 전에 읽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장편소설 『배반』이 그것이었다. 202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카피에 다른 정보 없이 고른 책이었는데, 아프리카의 잔지바르라는 내겐 너무 생소한 지역과 문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는데도, 문장마다 물결이 치는 듯했다.
『배반』에 이 영화가 겹친 건 소설의 주인공 라시드 역시 작가가 비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작가 구르나는 혁명 후 곧바로 잔지바르를 떠나 영국에서 홀로 공부하며 교수가 되었지만, 언제나 가슴 한편에 가족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품었다고 한다. 300여 쪽에 담긴 이 생생함과 진실함은 모두 작가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에 뿌리를 둔다.
작가는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 어떻게든 표현하고자 하는 이들. 구르나가 택한 문학도, 미키 루크의 연기도 어떻게 보면 기술을 익혀 누구나 구사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질문과 고뇌를 담은, 진실한 이야기가 예술로 구현되는 순간을. 그리고 뒤따르는 마음의 울림을.
나는 오래전부터 허구의 세계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쓴 소설엔 항상 내가 보였고, 그게 부끄럽고 괴로워 숨고만 싶었다. 소설의 주인공도 친구도 애인도 엄마도 아빠도, 내가 품었던 생각으로 살을 얻고 있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진짜 출발점이었다는 걸.
에세이를 연재하기로 결심하며, 나도 모르게 다시 출발점에 섰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