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숭밤 Aug 25. 2023

그러니 일단 케이크를 한 입

23/02/14

2월엔 도통 쉴 겨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또 틈이 생겨 연차를 썼다. 알람 없이 눈을 뜨고 이불 속에서 충분히 뭉그적거렸는데도 아직 열 시. 간단히 청소를 하고 커피를 내려 마셨다. 입춘이 지났다더니 창밖으로 제법 따뜻한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고요하고 나른한 시간, 가볍고도 낯선 마음.


걱정을 한 가마니씩 사서 이고 다니는 나는, 2월을 계속 두려워하고 있었다. 경험상 일이 가장 몰리는 때라는 걸 알고 있었고, 작년부터 심상치 않은 내 체력도 우려가 됐다. 차라리 미리 해치울 수 있는 일들이라면 좋을 텐데, 꼼짝없이 일정을 따라야만 하는 터라 기다리는 것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기다리는 선택지뿐인가? 어차피 그때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외의 시간이 자유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닥쳐서야 해결책을 찾는 타입도 의외로 많다. 게다가 퇴근 후는 말 그대로 업무에서 물러나 자유롭게 꾸리는 시간. 그 빈칸을 어떻게 채울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그렇다면 걱정과 스트레스를 선택하는 건 결국 내 문제인 셈이다.


나는 줄곧 이런 식이었다. 해결해야 할 일을 미리 체크해 두고는 불공을 드리듯 매일 염려를 쌓았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좁아졌고 주변 사람들과 스스로에게도 너그럽지 못했다. 그렇게 몸피를 불린 걱정들이 더 큰 보람이나 성취감으로 이어졌다면 다른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백이면 백, 짧은 안도 후엔 다시 근심이 따라왔다. 이러니 늘 어깨가 뭉칠 수밖에.


그래도 오늘 오후엔 동네 카페에 앉아 이렇게 일기를 쓴다. 이번 주엔 워낙 정신이 없어서 계속 열이 오를 줄만 알았는데, 예상보다 상황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눈치를 살피다 어제 퇴근을 두 시간 남기고 휴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아무래도 나는 직접 경험하고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인가 보다. 주변의 격려나 다독임에도 초조로 울렁이기 일쑤였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나름 체득한 몇 가지가 있다. 무슨 일이든 결국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꽤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도.


이제는 걱정을 덜어내고 유유히 시간을 보내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다. 피하는 자세와는 다르다. 내일 일을 마주하고 내일 하자, 담대하게 마음을 내려놓는 태도다. 마음을 내려놓는 데도 몇 줌의 용기가 필요한 법. 그러니 일단 케이크를 한 입 먹자. 내일의 나는 충분히 잘할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 가만한 당신, 나의 할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