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사례를 통해
운영 중인 블로그와는 다른 글을 써보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했던 브런치. 시작 초반에 2주에 한번, 한 달의 한 번 꼴로 글을 업로드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어느새 마지막 글을 올린 지 5개월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블로그를 통해서는 늘 하던 대로 답사기와 전시 후기 등을 올리며 활동을 유지했지만 이곳, 브런치에는 쉽게 글을 쓸 수가 없더군요. 블로그보다는 조금 더 깊고, 조금 더 진지한 태도로 제 생각을 쓰려고 시작했던 의지 때문인지 소재에 대한 부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글을 올리는 주기보다는 정말 글로 옮길 만한 가치가 있는 소재를 만날 때, 키보드에 손을 올리겠다고 다짐하던 찰나 우연한 기회로 이곳에 남길 만한 경험을 하게 되었네요.
프랑스로 이주해온 지 벌써 2년 째를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름 이곳의 리듬에 적응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7~8월의 긴 여름 바캉스나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가톨릭 기반의 명절을 보내는 이들이기에 생활의 리듬이 전혀 다릅니다. 이러한 쉬는 날과 관련된 것 이외에도 다양한 이름을 지닌 '날'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 오늘 소개할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것은 바로 'Les Journée Européennes du Patrimoine'입니다. 발음을 그대로 한글로 적기엔 우스꽝스럽기에 뜻만 전하면, '유럽 세습 유산의 날'입니다. 이름 중 '세습 유산'이란 어색한 단어를 보실 수 있을 텐데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로 치환하면 '문화재'입니다. 얼마 전 국내 뉴스에서 '문화재'라는 단어의 부정확성을 지적하며 조금 더 정확하고 올바른 유럽의 단어를 차용할 필요가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대상에 해당하는 단어가 바로 '세습 유산(Patrimoine)'입니다. 오늘 제 글의 직접적인 주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연관이 깊은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형의 것뿐만 아니라 무형의 것 모두를 하나의 유산으로 여기고 보호하고 지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문화적인 것'이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정하여 한정하지 않고, 과거의 모든 것 혹은 지금 존재하는 미래의 유산이 될 것 모두를 다루는 광범위한 개념이면서 또한 의도적으로 지키려 하기보다는 자연스레 보존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일상의 개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의식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날이 되면 프랑스 전역의 역사적인 장소나 유적지들이 무료로 문을 열고 방문객을 받습니다. 혹은 평소에는 가볼 수 없던 제한된 장소도 개방하여 가이드 투어를 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무료개방의 의미가 아니라 그곳의 역사와 의미를 시민들 더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교육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프랑스 살이는 2년째이지만 파리에서의 삶은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은 저에게는 처음 겪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는 날이기에 신중한 마음으로 목적지를 고르고 골랐습니다. 한참을 신중히 고르며 리스트를 보던 저에게 나름 낯익은 관광지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은 거의 모두가 알다시피 2019년의 화재로 인해 첨탑과 지붕 대부분이 불에 타 파괴되어버리면서 아직까지도 문을 닫고 보수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방문이 가능하다기에 예전의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갔던 추억과 함께 과연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해하며 파리 시내의 씨떼섬으로 향하였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여전히 성당 주변으로 휀스는 그대로인 대신에 성당 전면부 광장에 몇몇의 천막이 쳐져있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을 달고 있는 현수막을 확인해보니 'Village du Chantier de Notre-Dame de Paris'였고 우리말로 뜻을 옮기면 '노트르담 대성당의 공사현장 빌리지' 정도입니다. 제목만으로는 유추가 힘들었던 저는 어느 정도의 대기 시간 후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이해함과 동시에 감탄을 하였습니다. 이해는 행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파악을 했음이었고, 감탄은 이와 같은 행사를 기획한 발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행사장 안에는 10여 개의 천막이 있는데, 각각의 천막은 '시공사', '건축가', '스테인드글라스 장인', '목공 장인', 그리고 '석공 장인' 등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 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각 분야에 해당하는 주체들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어떻게 본인들이 맡은 바를 다하고 있는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 지에 대한 것들을 천막을 들르는 파리 시민, 관광객, 모든 방문객들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중의 한 명으로써 느낀 감정은 오묘했습니다. 그저 불에 타 손상된 유산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것을 뛰어넘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돌아올지를 상상하며 안타까운 감정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에 가까운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잠시 잊고 있던 우리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08년 2월, 우리나라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에 타 전소되었습니다. 물론 노트르담 대성당과는 달리 누군가의 악의에 의한 범죄에 가까운 사고였지만 결과는 똑같이 유산의 상실이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저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뉴스를 보며 눈을 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어느새 숭례문은 그 모습을 되찾아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중 숭례문 복원의 과정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요? 어떤 식으로 숭례문이 복원되었는지 그 방법에 대해 아는 이가 있을까요? 불과 한 달 전 숭례문 단청 부실공사의 책임자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광화문의 복원공사에서도 정부에서 지급한 금강송을 개인적으로 빼돌려 이익을 취한 대목장이 고발된 사실을 얼마 전에 접한 것은 숭례문의 사례와 더불어 안타까운 사건과 어이없는 결과 사이 과정은 잊혀 버린 현실의 여실한 단면을 보여주지 않나 싶습니다.
숭례문,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모두 우리의 소중한 것을 잃은 가슴 아픈 사건임과 동시에 부끄러울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발단은 같았지만 그것이 처리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태도에서 사뭇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부끄러운 사실을 최대한 빨리 지우고 잊기 위해 노력한 우리에 반해, 이곳 사람들은 이미 저질러진 사실을 인정한 채 그것을 모두를 만족할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저를 놀랍게 하는 것은 특별한 날을 계기로 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일반에 공개해 의견을 나누는 모습입니다.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고회를 자처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잠시 누구든 사업을 진행하는 주최의 입장으로 생각을 해보면,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현재 진행 중인 것을 시민에게 보고하려 한다면 그 정도로 귀찮은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성가실 것 같습니다만, 이들은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있다면 적어도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만이라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공사의 과정을 기억할 것이고, 누군가 과정을 알고 있는 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무시하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란 파리의 하루 관광객까지 감안하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사건은 단순한 그들의 문화적 재산의 상실이 아니라, 후대에 물려주어야만 하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유산의 상실입니다. 그러므로 그 책임을 현재의 모두가 나누고 미래의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할 의무를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은 아직까지도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화재의 규모와 공사의 난이도 때문에 당연한 것이겠지만, 앞서 말한 이들의 신중한 태도를 고려하면 그 이유를 더할 수 있을 듯합니다. 대성당의 본격적인 공사에 앞서 성당 앞 광장의 재조성 공사가 얼마 전 설계 공모를 통해 당선되었습니다. 언젠가 미래에 돌아올 노트르담 대성당과 그의 방문객까지 맞이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위기를 기회로'라는 표어를 이와 같은 상황에 빗댈 수 있지 않을까요? 당장, 파리 시민으로서 노르틀담 대성당의 본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깝지만, 언젠가 보게 될 새로운 대성당의 모습을 떠올리면 기대감이 커집니다.
이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기대감으로 바꾸는 방법을 잘 알고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