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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Mar 20. 2022

비빔밥 같은 도시, 파리

조화로운 도시에 대하여...

우리 음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인 '비빔밥'. 다양한 재료의 섞임과 그 섞이는 순간 발생하는 다양한 맛 사이의 조화로움은 비빔밥이 하나의 음식에 지나지 않고 우리 문화의 저변에 깔려 있는 정서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이자 우리를 상징하는 요소로 항상 이것을 꼽곤 합니다.


저 역시 항상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떠올리면 앞서 말씀드린 비빔밥과 같이 조화롭고 잘 어우러지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는 과거형으로 '있었습니다.'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역시나 그 이유는 제 직업에 맞게 건축, 그리고 도시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제가 느낀 것들에서 기인합니다.


파리에 정착한 지 어느덧 삼 개월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하나의 계절 정도는 보낼 수 있는 정도의 기간인 만큼 무엇인가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찰나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비쉬에서의 생활을 통해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의 적응은 어느 정도 했기에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여유 있게 다른 것들을 느끼며 둘러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파리의 물리적인 크기는 서울의 1/6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쉽게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고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을 쉽게 풀면, '도시의 크기가 서울에 비해 굉장히 작기에 걸어서 도시를 둘러볼 수 있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걸어서 도시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처음에는 어디든 오래 걸리지 않고 금방 갈 수 있다는 것에 오는 편함이 첫 번째였으나, 조금씩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 다른 점에서 전과 다른 차이점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도시를 조금 더 연속적으로, 전반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저에게는 도시의 가로를 따라 걸으면서 도시의 요소가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또 어떤 식으로 도시가 변화하는 지를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색다르고 좋은 공부와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렇게 제가 읽은 파리 도시의 특징을 한 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다시 서두로 돌아와 '비빔밥'의 정서를 떠올렸을 때, 과연 그 정서가 우리의 도시의 모습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때, 제 대답은 '아니오'에 가까웠습니다. 우리의 도시, 서울을 예로 들면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밀도를 가지고 있는 대도시임에는 틀림없지만, 과연 요소요소들이 조화롭게 섞여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한국의 도시는 기본적으로 '용도지역'을 기준으로 계획되고 지어집니다. 용도지역이라 함은 말 그대로 용도별로 지역을 나눈다는 의미로 주거, 상업, 근린상업 등 각 목적에 맞게 땅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목적에 맞게 나눠진 땅에 놓이는 같은 용도 안에서는 서로 비슷한 모습을 띄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미 정해진 땅의 색깔에 따라 조각난 도시의 풍경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 가면 흔히 '빌라촌'이라 부르는 주거지역을, 또 다른 곳에서는 아파트 단지와 그 주변의 상가가 있는 모습 등 누구든 떠올리는 장면들을 여기저기서 반복해서 경험합니다.


'도시'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에는 한국 전쟁 이후, 근대에 들어선 후에야 적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 후 황폐화된 땅에 몇 년 지나지 않은 세월 후 진행된 급속한 경제개발과 함께 이뤄진 도시화. 정말 짧은 시간에 눈부신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짧은 시간에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안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그런 과정으로 선택된 개발 방법에 의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에, 파리, 유럽의 도시는 우리의 것과는 그 기원이 다릅니다. 이미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도시 국가라는 초기 개념에서부터 출발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에서의 도시는 수많은 세월이 누적되어 완성되는 결과물입니다.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서 발생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역사적 도시들은 자연발생적이고 그 구조 또한 그 역사와 함께 쌓여서 완성되었습니다. 제가 있는 파리로 시선을 좁히면 파리의 도시 구조는 오스만 남작에 의해 대개조가 이뤄진 역사가 있지만 그 뿌리가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파리의 기본적인 도시 풍경. (주상복합)

현재의 파리에는 우리나라에서 처럼 아파트도 존재하고 업무단지가 개발되는 등 특징적인 지역이 있기는 합니다만, 전반적인 풍경을 보면 전혀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가로에 면한 저층부에는 상가가 자리하고 상부에는 주택이 자리하고 있는 주상복합이라는 기본적으로 혼합된 건물의 용도 구성 방식이 기본이 돼 도시의 블록 단위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블록 단위를 프랑스어를 통해서는 작은 섬이라는 단어인 '일로(ilot)'를 사용해 '일로 시스템'이라고 부릅니다. 이미 이 혼합된 기본 단위인 일로가 전체 도시를 비슷한 밀도로 아우르며 퍼져 있고, 그중 어느 한 요소는 공공기관이 되거나 학교가 되는 등의 변화가 이뤄집니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자리하는 이유도 역사적으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관광지로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궁' 등 모두가 모두가 전혀 다른 용도이지만 같은 수준의 밀도와 같은 볼륨으로 도시 한가운데 여러 '일로' 중 하나로 존재합니다. 


주변 도시 조직에 녹아든 퐁피두 센터와 그 광장

이와 같은 성격 때문에, 파리를 거닐다 보면 갑자기 시청을 만난다던지, 도서관을 만난다던지, 혹은 학교를 만나는 경험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특징이 오히려 우리가 비빔밥에서 찾을 수 있는 '조화로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도시 요소들이 도시 곳곳에 자연스럽게 박혀 녹아들어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는 모습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도시 조직
'파리'의 도시 조직

결국, 제가 겪은 새로운 도시의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아쉬움은 시간에 대한 것입니다. 앞서 서술한 바처럼 이곳의 도시는 수세기에 걸쳐 완성된 것이고, 누군가의 순간의 아이디어로 인해 조직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역사를 질투하고 부러워한다고 해서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건축을 하는 입장에서 보는 도시의 풍경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자연발생적인 도시 구성의 DNA가 갑자기 이식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프로토타입으로 삼아 기존의 방식에서 조금은 탈피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 봅니다.


얼마 전, 한국 뉴스를 통해 서울에서 용도지역의 개편을 시도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시도는 위에서 제가 이야기한 내용과 맥락이 유사합니다. 차기 대통령이 당선된 정국과 함께 정치적으로 소란스러운 시기라 이 역시 정치적인 소재로 읽힐 가능성이 많지만, 순수하게 건축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좋은 시도이고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밖엔 없습니다. 이미 제가 밝힌 의견처럼... 이미 자리 잡은 서울이라는 도시도 근대화에 들어서면서 자기만의 역사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뤄질 도시 개혁, 혹은 건축적 시도들이 앞으로 있을 미래의 역사가 될 것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를 축적해 나아간다는 의지를 갖고 우리만의 도시의 역사를 쌓아 고유한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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