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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북 May 12. 2023

더 이상 죽음은 없다

살 수는 있나요?

"다 잘라내야 합니다."

"선생님 살 수는 있나요?"


초조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물어본다.

선생님은 그런 보호자를 안타까운 듯 바라본 뒤 과감하게 하나씩 잘라내기 시작한다.

온몸이 갈갈이 뜯겨 나가지만 그래도 살릴수만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하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잎새는 보호자 품으로 돌아간다.


고백하건대 난 식물테러리스트다.

지금까지 내 손에 들어온 식물은 다 죽음을 맞이하고 떠났다. 탈수, 과습, 감금, 방치, 열사로 시들고 병들어 썩어버렸다. 아예 관심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다육식물도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그래도 집에 생기라도 돌려면 초록초록한 식물 몇 개쯤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나름의 인테리어 철학으로 부지런히 식물을 들여놓지만 가족들의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아이고, 쟤네들 한 달은 버틸 수 있으려나"

"얼마 후, 또 죽어나가겠네"


식물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그 아이는 이미 시한부선고를 받는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러다 이번에도 또 죽어나가면 다 가족들 탓이다 어깃장을 놓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 희망이 생겼다. 동물이 아프면 동물병원에서 치료받듯 식물이 아프면 치료받고 수술도 하는 반려식물병원이 올해 4월 개원한 것이다. 오랜 시간 식물을 연구해 온 원장님이 식물에 대한 진단과 치료 처방까지 아주 꼼꼼하게 봐주시는데, 상태가 심각한 식물은 입원치료를 통해 집중 관리를 받으며 회복 후 퇴원과정까지 진행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진료비가 무료.


그동안 식집사들은 인터넷 식물갤러리나 구매처에 문의해 해결하려 했지만 대부분 반려식물을 끝내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 알려주는 방법으로 요리조리 해봤는데 왜 늘 죽어나가는 걸까. 그 의구심을 반려식물병원에서 상세한 설명과 함께 해결해 주는 모습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역시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더니 식물이 식물병원에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과정을 거치니 생명이 살아난다.


이게 뭐지? (출처:스브스뉴스)
마지막 잎새 몬스테라 (출처:스브스뉴스)


잎의 지름이 1m나 되는 몬스테라가 거의 나뭇가지만 남긴 채 처참한 모습으로 진료실로 들어와 있다. 뿌리가 끊어진 상태에서 물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몸살을 앓아온 몬스테라는 그렇게 잎을 하나둘씩 떨어트렸다. 결국 수술실로 들어간 몬스테라. 흙에서 나온 몬스테라의 뿌리는 거의 썩어버려 살아나기 힘들 거 같았다. 자르고 자르고 자르고 세균이 번식된 부분들을 다 잘라내니 겨우 작은 한 잎만 남았다. 도저히 몬스테라라고 믿어지지 않지만 이제 집에 가서 꼭 멋진 몬스테라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길 바라게 된다.





<반려식물병원 수술실 대공개 - 스브스 뉴스 영상 참고>


Q 1. 식집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무엇인가요?

분갈이입니다. 굳이 잘 자라고 있는 식물은 가정에서 화분갈이 할 필요가 없어요. 영양제만 줘도 충분히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예전에 잘 자라고 있던 식물을 예쁜 화분으로 옮겨줬다가 얼마 후 죽었던 아이가 생각났다. 괜히 내가 설레발쳐서 죽였었나 보다. 이젠 그냥 영양제만 잘 주는 걸로...


Q 2. 우리 아이 건강하게 키우려면 꼭 지켜야 하는 건 뭔가요?

물 주기입니다. 정해진 날짜에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갈증을 느낄 때 물을 주면 돼요. 손가락 두 마디를 흙속에 찔려 넣었을 때 물이 안 묻어난다면 그때 물을 주면 됩니다. 물 주는 시기는 하루 중 오전이 가장 좋습니다.


Q 3. 어느 날 보니 아이가 시들시들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화장실에 가서 물 주고 5일에서 일주일 정도 화장실에 놔두면 식물이 숨 쉴 수 있는 상태가 돼요. 햇볕이 없으니 광합성을 안 해도 되고 습도가 높으니 뿌리가 물을 안 올려도 되니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어요. 



https://youtu.be/n_QOv-nY_zM





원장님의 말을 듣다 보니 식물은 정말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식물도 휴식이 필요하고 쉼이 필요했는데 너무 열심히 또 햇볕에 놔뒀던 모양이다. 아파도 말 못 하고 그동안 나의 품에서 떠난 아이들. 이젠 나도 식물테러리스트라는 오명을 벗고 식물 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반려식물병원으로 방문해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게 해야겠다. 


한두 잎만 겨우 남아있던 수국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작년 생일 때 선물로 받은 수국이 죽기 직전까지 같다가 겨우 살아나 지금 다시 잎을 피우고 있다. 아직 예쁜 수국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지만 상처 입은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올라오는 걸 보면 참 기특하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르는 게 많은 식집사지만 매일매일 잘 자라나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지면 바로 식물병원으로 GO GO.



죽은 가지에서 다시 태어나는 생명 (조금씩 가지치기하며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반려식물병원 소개 : 진료예약

https://agro.seoul.go.kr/archives/46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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