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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강: '심리안전' 교실 만들기

'심리 안전' 이란 무엇인가?

by 김용석

심리 안전이란 무엇인가?

오래전, 강의를 하면서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품곤 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더 깊이 배우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고자 나는 전통적인 강의 방식을 과감히 내려놓고 새로운 수업법을 시도했다. 내가 문제를 제시하면 학생들이 직접 풀고, 나는 질문을 던지며 토론을 이어갔다.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강의가 아니라, 마치 교수와 학생이 함께 미지의 길을 탐험하는 모험 같은 수업이었다.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이를 통과해야만 수업을 마칠 수 있었기에 학생들은 긴장감 속에서 몰입했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스스로 교육의 혁신을 이루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둘 교실을 떠나는 가운데, 모든 질문을 무난히 통과한 한 학생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수님… 사실 저는 이 수업 방식이 너무 힘듭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학생들처럼 잘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룹 안에서도 제 의견을 꺼내기가 두려워요. 그냥… 교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그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내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큰 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그룹 학생들에게조차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한 채, 마지막 용기를 내어 내게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수업 방식을 바꿨다. 강의 내용을 미리 동영상으로 녹화해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은 그 영상을 통해 준비한 뒤 교실에서는 훨씬 더 자신 있게 참여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시도가 훗날 전 세계적으로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이라 불리며 교육의 판도를 바꾸게 된 방식과 같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그 학생은 그룹 안에서조차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했을까?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마도 비웃음이나 조롱의 대상이 될까 두려웠던 것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심리적 안전감이 없는 상태다. 하버드대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은 심리적 안전을 “벌받거나 조롱당할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질문·실수를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라고 정의했다. 교육 현장에서 심리적 안전이란 실수를 해도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분위기, 질문이 귀찮은 일이 아니라 환영받는 일이 되는 환경, 그리고 서로 다른 배경과 문화가 존중받는 태도를 의미한다.


심리 안전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체계와도 연결된다. 매슬로(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단계적으로 설명하면서 안전 욕구를 가장 기초적인 단계 중 하나로 제시했다. 생리적 욕구, 즉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기본 욕구가 충족된 뒤에 곧바로 찾아오는 것이 안전에 대한 욕구다. 이는 단순히 폭력이나 재난에서 벗어나는 물리적 안전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은 불안과 위협 속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뇌가 ‘생존 모드’로 전환되어 창의성과 학습, 사회적 상호작용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반대로 안정된 환경은 신뢰와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 인간이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현할 수 있게 돕는다.


따라서 학생들이 진정으로 학습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교실이 단순히 신체적으로 안전할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위협이 없는 공간이어야 한다. 괴롭힘이나 조롱이 사라진 교실, 누구나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수업, 다양한 배경이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서만 배움은 비로소 꽃을 피운다. 심리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교실에서는 학생들은 방어적 생존 모드에 갇혀 성장과 협력, 그리고 더 높은 수준의 욕구인 자아실현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심리 안전은 단순한 ‘좋은 분위기’가 아니라, 학습을 가능하게 만드는 절대적 조건이자 교육의 토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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