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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bricolage Feb 15. 2023

듀엣 6

단조와 이저

듀엣

duet



[d]azzling stranger

[u]nforgettable moments

[e]xtraordinary people

[t]--- --- ---



extraordinary people



https://youtu.be/jV0VX-qddkY



(6)

 사람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어도 그가 누구인지는 알았다.

 생전 그림이라고는 배워본 적 없는 사람이 그림을 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가진 재능을 사랑했다.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더욱 사랑하게 됐다.


 바야흐로 3년 전 초여름. 단조는 휴학생 신분이었다. 볕 좋은 오후, 단조는 동기와 함께 카페에 들렀다.


‘너는 휴학까지 해놓고 학교 밖에서까지 날 만나야겠냐.’


 동기가 단조더러 툴툴댔지만, 단조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내심 들떠있었다. 휴학한 이후로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던 터라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이었다. 둘은 작곡과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에 처음 만났다. 같은 학원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행동반경이 비슷해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알던 사이였다. 당시 동기가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는데 4층 짜리였고 테이블도 많아서 작업하기에 딱이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테이블과 여러 층을 두고도 딱 같은 층에서 마주치는 얼굴이 있었다. 그게 단조였다.


 곡 마감에 시험 2개까지 앞두고 있었던 동기는 지금 쉴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레이아웃 수정의 지옥에 갇혀서 분노하느니 단조를 만나 쉬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였다. 모니터만 보고 있느라 날씨가 쾌청한지도 몰랐는데, 카페에 앉아 바라본 하늘은 마치 향기가 날 것처럼 뽀송했다.


 수다를 떨며 금세 음료가 동났다. 단조는 가만히 앉아 펜을 굴렸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카페 로고가 찍힌 티슈 하나를 뒤집어 아무거나 끼적댔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해?’


 카페에 와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던 동기가 물었다. 뭔데 저렇게 집중하는 거지, 의아해했다. 그 사소한 의문 하나가 오늘날 단조를 타투이스트로 만들었다.


 뜨거운 공기가 정면을 치고 빠지던 한여름. 동기의 권유로 단조는 타투를 시작했다. 연고지 아닌 곳에 발을 붙이려니 험난한 고생도 뒤따랐다. 지인이 소개해준 타투이스트 문하생 신분으로 꼬박 1년을 보냈다. 그 와중에 더는 복학을 미룰 수 없어 학교도 다녔다. 학업과 타투 수강생 생활을 병행하려니 다른 사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단조는 자신이 누구 밑에서 일할 성격은 못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반드시 자신만의 공간을 꾸리리라 다짐했다.


 매번 자정을 넘겨야만 일과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면 움직이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누구는 샤워조차 뜻대로 되지를 않았는데 누구는 대놓고 방구석 콘서트를 열었다. 애초에 날림으로 지어진 원룸 건물에서 방음을 기대하면 안 되는 거였다. 노래를 부를 거면 잘 부르기라도 하든가 음색이라도 좋든가. 그게 아니면 1절 매너라도 지키든가. 센스도 시간 개념도 없는 이웃 주민은 목청만 컸다. 노래에 한이라도 맺혔나 싶어 처음에는 좋게좋게 넘어가다가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단조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제발 좀 닥치라고!!!!’


 나름 순화해서 한 말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날 이후로 방구석 콘서트는 열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단조네 현관문 앞에 포스트잇이 붙었다.


[죄송합니다. 노래가 너무 부르고 싶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소리지른 사람이 나인 거 어떻게 알았지.' 싶었고, '내가 너무 심했나?' 싶다가, '그럼 코인 노래방이라도 가든가.' 생각했다. 본인이 내뱉고도 싹수없었다.


 마음이 울적했다. 하지만 곧 털어냈다. 개인의 사정이 타인에게까지 납득될 수는 없었다. 이해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단조는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을 이해하려 애썼다. 감정을 터트린다는 게 이렇게까지 죄책감을 동반할 일이던가?


"아니지. 내가 참았던 시간이 얼만데."


 누가 참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부딪히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가. 하지만 단조의 사정도 모두에게 이해될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알았으니 참았던 것도 맞지만, 평소 성격의 영향이 더 컸다. 단조는 감정을 삼키는 데 익숙했다.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어떤 말을 해도 성에 차지 않았다. 고함을 지르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다. 이곳은 숨죽여 살아야 하는 도시가 아닌가. 어쩐지 목이 멨다. 그게 후회였는지 공감이었는지 그조차 몰랐다.


 단조는 이름 때문에 어릴 적부터 놀림을 당했다. 단조롭다는 말에 신물이 날 정도였는데 지금 보니 단순하다 못해 밋밋한 인생 같아 속이 상했다. 타투 수강생 신분도 어느새 막바지에 이를 무렵, 단조는 틈틈이 단골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소문은 제 손밖의 일. 느리지만 하나둘씩 언급량이 늘어났고 변화가 체감될 즈음에는 4개월 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모든 게 순조로웠지만 순조롭다는 말만큼 힘 빠지는 것도 없었다. 잔잔하고 굴곡 없는 평지의 삶. 순조롭다는 말은 단조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그림을 배우지 않았던 게 오히려 흠이 될 거라 믿었던 단조의 예상은 비껴갔다. 사람들은 그가 그림을 배우지 않아서 그의 재능을 높이 샀다. 개중에는 천재라 부르는 이도 있었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주목만 받지는 않았다. 모멸감에 혀를 콱 씹고 싶은 날이 더 많았다. 체면을 구긴 날도 더러 있었다. 인생이 덜 마른 빨랫감 같아서 태워버리고 싶다가도 차곡차곡 시간을 갰다. 계절이 더미로 뭉쳐질 때쯤 해가 바뀌었다.


 암막 커튼을 젖힐 때마다 바뀌는 풍경이 새삼스러웠다. 단조는 창문을 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녹음이 창가로 스며들 때도 커튼을 쳤다. 봄기운이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다.


 언젠가 동기가 그랬다. 이때까지 재능을 숨기고 살았냐고. 단조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감출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평균값인 줄 알았던 능력치가 남다르다고 느낀 적은 드물었다. 남들 하는 만큼은 하는구나 싶었지 재능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어쩌면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외면했는지도 몰랐다. 이제는 실력도 자신감도 갖췄다고 생각할 무렵, 단조는 공용 작업실에 입주해서 짧은 기간 타투 작업을 이어갔다. 그 짧은 기간에도 별일이 다 일어났다. 같은 작업실을 쓰는 타투이스트 한 명이 일대에서 유명인이었던 탓에 단조도 덕을 봤다. 그럭저럭 손님은 유지가 됐지만, 간혹 상식 밖의 호기심으로 의도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손님도 있었다. 맥락 없는 요구와 불쾌한 언사가 들이닥칠 때마다 단조는 싸움에 이골이 난 사람처럼 굴었다. 단조의 친절을 연애 감정으로 오해석한 어떤 손님 때문에 언젠가 한번 골머리를 앓고 난 후로는 더더욱 그랬다.


 일주일에 하나, 단조의 철칙이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다 보니 가능한 건지도 몰랐다. 작업을 마치고 남는 시간엔 연습실에 박혀 살았다. 작곡을 해야 할 손가락은 도안을 다듬었다. 작업 문의가 밀렸고 지도교수의 쓴소리는 커졌다.


‘형편없네.’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쓴소리보다는 이유를 물어봐주길 바랐다. 지나고 보니 과욕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버티려고 그러니?’


 이 대목에서는 울컥한 탓에 말문이 막혔다. 버티지는 않았는데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인 모양이었다. 작곡은 재능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으니 버텨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낙오, 탈락, 포기라는 단어가 자존심을 할퀴었다.


 3주에 하나, 단조의 새로운 철칙이었다. 그는 작업량을 줄이기로 다짐했다. 객관적으로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은 건 작곡이 아닌 타투였으므로 아예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졸업연주회 준비에 들어갈 무렵부터 그는 핸드포크만 작업했다. 하나하나 점으로 채워지는 타투는 쉬워 보였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작업이었다. 긴 시간 내내 집중하다 보니 예민한 성격에 정점을 찍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단조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학사 졸업을 앞두고 단조는 공유 작업실을 떠났다. 막상 떠나려니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다. 작업실을 옮긴다는 소식을 듣고 몇몇 손님들이 새 위치를 물었다. 단조는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아 말씀드릴 수 없지만 여기서 제법 먼 곳으로 떠날 거라고 전했다. 그는 곧 계약이 만료되는 원룸 보증금에 목돈을 보태어 예산을 짰다. 도심 한복판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비용 면에서도 감당하기 벅찬 일이었다. 원하는 곳은 터무니없이 비쌌고 예산에 맞추자니 후미진 곳만 둘러봐야 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이모가 먼저 피추동 마을을 제안했고, 처음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거절했던 단조도 끝에 가서는 호감을 내비쳤다.


 단조는 이곳에 와 처음으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오랜 시간 삭았던 먼지는 떠나고, 여름 바람이 변화를 머금고 불어왔다.




 작업실 오픈에 앞서 정신이 없는 단조에게 럭키 일은 뒷전 취급을 받았다. 타투 용품 택배가 연이어 도착하면 그걸 풀고 정리하는 데 오전이 갔고, 예약 손님과 조율한 도안을 수정해서 보낸 후 밀린 문의에 답장을 마치면 오후가 갔다.


 이저가 청소를 도와준 이후로 벌써 3일이 흘렀다. 3일 전, 그들은 대강 정리를 마치고 합심해서 주변을 수색했다. 보름달이나 대왕 감자떡을 닮은 럭키를 찾는 건 의외로 쉬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걔가 변장을 하지 않는 이상 눈에 띌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걔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미 아니까."

"모르면 몰라도, 알면 알죠."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이저는 본인이 내뱉고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가 내일은 일정이 빠듯해서 단조를 돕지 못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감기 걸린 자는 속히 집으로 가십시오."


 지금까지 도와준 것도 고맙다며 단조는 이저의 등을 떠밀었다. 허약하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손이 많이 가는 이웃이었다. 떠나는 뒷모습에 대고 방방 손을 흔들어주던 단조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번개 같은 3일이 흘렀다.


 작업실로 사용할 방과 이어지는 복도를 정돈하고 나서야 럭키를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해결되지 않는 건 질색인데."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될 대로 되라지 무시를 해도 좋았다. 하지만 단조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몰랐다면 무시했겠지만, 아니까 외면할 수 없었다.


 단조는 요약이 필요했다.


 1. 럭키는 이모와 친한 사이다.

 2. 어떻게 친해졌는지 자세한 사연은 나도 모른다. (이탈리아 남자 얘기하느라 물어보지도 못했다)

 3. 이모가 럭키를 뒷산에 풀어달라고 했다.

 4. 밀폐 용기에 담아뒀던 럭키가 사라졌다.

 5. 얘는 무적이다.


"럭키가 제 발로 뒷산에 간 걸까."


 이모가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도통 연락이 닿지를 않았다.


"하루에 대여섯 개씩 스토리는 올리면서 왜 내 연락은 무시하는 건데!"


 '에 부오니시모!'라며 이모가 올린 사진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가득했다. 쫀득해 보이는 뇨끼, 구운 가지와 새우를 올린 스테이크, 라구 소스를 듬뿍 얹은 파스타까지. 거한 저녁 식사를 한 모양이었다.


 화면을 옆으로 넘기자 이모의 얼굴이 나왔다. 돌담에 늘어진 꽃과 관자놀이를 맞대고 찍은 셀피였다. '한국적인 풍경^^* 우리 집에도 피는 나팔꽃이 이태뤼에도~' 이모의 목소리로 읽히는 문구가 보라빛과 자주빛의 꽃잎 옆에 달려있었다.


'꽃에 물은 줬니.'

"나팔꽃?"


 이모가 공항에 가던 날. 그가 하도 많은 것을 한꺼번에 물어보는 바람에 듣고 잊었던 그 질문.

 드디어 실마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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