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은 왔던 순서대로 떠났다. 멜로디가 옅어지면서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도 지워져갔고 권은이 서 있던 거리 풍경도 점점이 뒤로 물러났다. - 「빛의 호위」, 조해진
소리는 재빨리 파고들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쉽게 휘발됐다가 금세 타오르는 감각이다. 나는 줄곧 그렇게 느꼈다.
한동안 잊고 살던 음악을 우연한 계기로 찾아 듣게 되는 순간이 있다. 대개는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그런 경험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늘 소리를 통해 장면이 그려지곤 했다. 이를테면 그 음악을 처음 알게 된 계기라던가, 즐겨 들었던 이유라던가, 어떤 상황에서 자주 들을 수밖에 없었는지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편린이라고들 한다. 어느 시절의 편린은 아무리 작은 부분일지라도 소리를 통해 기억하게 되는 순간 그 시절은 더 이상 편린이 아니게 된다. 더 이상 순간도, 찰나도, 아주 작은 조각도 될 수 없다. 오래도록 두고두고 떠올리는 추억이 되고 만다.
소리는 가벼운데 묵직하다. 몸의 가장자리에 매달렸다가 마음 어딘가 아득한 곳에 파고든다. 까마득한 과거가 어제 불던 바람처럼 들이닥친다. 현실을 헤집으며 추억이 등장한다. 암전된 무대 위로 그 때의 음악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