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자, 우리.
당숙부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주말 저녁에 가족들과 식사하려던 일정은 무산되었고, 임신한 언니를 제외하고 가족들 모두 일산 장례식장에 모였다. 엄마는 일찌감치 발 벗고 나서서 장례식장에 먼저 가서 조문객 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을 거들고 있었다.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면서, 자신의 형제가 돌아간 듯이 신경 쓰는 엄마.
장례식장에서 사촌 오빠, 육촌 여동생들, 큰아버지와 오랜만에 얼굴을 봤다. 언니의 결혼식 이후로 2여 년 만에 보는 얼굴들. 그 사이 또 세월의 흔적이 묻어서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한다. 죽음 앞에서 모두 자신들의 삶에 숙연해진다. 마냥 힘들고 퍽퍽하게 느꼈던 자신의 삶이 죽음 앞에선 아무것도 아님을 느낀다.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그동안 살아온 근황을 이야기하고 또 앞으로의 삶을 이야기했다.
토요일 장례식 첫날 하루 종일 일을 거들었던 엄마와 저녁 12시가 돼서야 차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엄마가 말했다.
"너 이제 어른들이랑 이야기도 잘하고, 잘 어울리더라?"
"나도 많이 변한 것 같지? 나도 성격이 많이 변했나 봐"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어서 어른들이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쉽지 않았던 내가, 장례식장에서 어른들과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했던 엄마.
다음날 아침. 피곤할 법도 한데 어제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오기도 했고, 마산에서 큰어머니가 오신다며 이때 아니면 언제 인사드리겠냐고 다시 장례식장에 잠깐 들리자고 하는 엄마. 그게 사람의 도리라고 했다. 사람으로서 예의를 갖추는 것 그리고 끝맺음을 잘하는 것.
일산 장례식장에 가는 길에 엄마는 장례식장에서 고생하는 친척들을 위해 박카스 한 박스를 샀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나는 박카스를 건네며 인사를 드렸다. 장례식장의 친척들의 눈빛에서 반가움과 고마움을 느꼈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큰어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며칠 째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육촌여동생 등을 토닥이며 "너도 고생이 많다."라고 말 한마디 해주고 옆에 함께 있어주었다.
엄마는 장례식장을 떠나기 전에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육촌 남동생을 불러 등을 토닥이며 따뜻한 위로를 해주었다. 멀리서 지켜보느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진 모르겠지만 그저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장례식장을 나서는 길에 큰어머니가 우리를 배웅해주셨다. 엄마는 약속이 있어서 일찍 가게 되었다며 이야기했고, 나도 큰어머니께 평소엔 절대 하지 않을 말이지만 웃으며
“큰어머니께 인사드리려고 다시 왔죠~"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등을 토닥이며
“아이고 그랬나~ 기특해라~" 하시는 큰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고개를 돌려 엄마의 얼굴을 봤다. 며칠 밤새워서 장례식장 일을 돕기도 했고, 집까지 운전하는 게 피곤하진 않을까 싶었는데 엄마의 얼굴은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엄마, 하나도 안 피곤하지?"
"응~ 안 피곤한데? 너랑 조잘조잘 떠들면서 운전하면 안 피곤해~"라고 말하는 엄마.
"엄마, 나 아까 큰어머니한테 말 잘하지 않았어?"
"그래, 그렇게 사람들한테 말 한마디도 따뜻하게, 기분 좋게 하면서 사는 거야."
차 안에서 엄마와 나는 이렇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에 노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노을이 우리를 포근하고 따듯하게 감싸주었다.
"엄마, 밖에 노을 좀 봐봐. 진짜 예쁘다."
"노을 참 예쁘네~"
노을을 바라보니 육촌 동생에게 등을 토닥여 주던 엄마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엄마에게 말했다.
'지금처럼만 잘 살면 될 것 같아.'라고.
해질 무렵의 따듯한 노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