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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의 첫인상, 두 번째 인상

몰타여행

by 배심온

'몰타에서 길을 잃다'는 글에서 동행자와 갈등 중에 예배를 볼 수 있다는 안내문을 보았던 교회 이름이 정확하지 않아서 구글맵으로 동선을 확인하니 성바울 난파선교회로 보였다. 교회 이름도 글제목이랑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약간의 의심은 들었지만 그 교회로 명명하고 글을 마무리하였다. 역시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문제가 있는 거다. 오늘 다시 확인한 결과 그곳은 성바울성공회 대성당이었다.


동행자와 둘만 하는 여행은 이제 삼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 후는 새롭게 합류하는 멤버들과 넷이서 하는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각자 원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드디어 카라바조 그림을 보러 간다. 결국 발레타를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처음 방문했을 때 놓친 발포 행사를 챙긴다. 어퍼바라카 가든에 12시가 되기 전에 여유 있게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발포식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8개의 대포 중에 딱 한 곳에서 딱 한 발만 발포한다. 약간의 트릭으로 탄약은 두 개의 대포에 넣는다. 무엇보다 발포식을 하는 곳은 발레타에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튀니지나 시칠리아의 원형경기장들이 연극이든 검투 경기든 관람 중에도 외적의 침입을 살필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것처럼, 몰타의 수도 발레타 역시 바다로 침입해 오는 적들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대포를 설치해 놓았다.


앞사람 때문에 제복을 차려입은 병사의 모습이나 화약을 넣고 발포하는 장면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나는 결국 무릎을 접고 앉는다. 앞사람의 다리 사이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데 옆에 서있던 꼬마아이도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혼자가 아니라 좋았다.


카라바조 그림을 보러 가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었다. 일요일 예배를 허락했던 교회 이름이다. 성바울난파선교회인 줄 알았던 교회 이름은 성바울성공회 대성당이었다. 워낙 교회가 많아서 생긴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약간의 유혹을 느낀 점도 있다. 글의 제목을 '몰타에서 길을 잃다'로 정하고 나니 '성바울난파선교회'가 찰떡같이 어울리는 거다. 발레타에 두 번째 방문한 덕에 오류를 수정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카라바조 그림을 볼 수 있는 성요한대성당 뮤지엄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30분 이상을 기다려 가방은 물론 몸수색까지 철저히 한 후 15유로를 치르고 입장한다.

입이 떡 벌어진다. 카라바조 그림은 잠시 잊게 된다.


성당의 내부는 금빛으로 빛났고, 온갖 화려한 색상으로 여백 없이 장식되어 있다. 이곳이 유독 화려해 보이는 것은 바닥 때문인 것 같다. 기사단을 구성했던 8개 국가의 개별 예배당은 서로 다른 휘장과 문장, 조각과 그림으로 꾸며져 있고, 교회 전체 바닥에는 400명의 기사단 묘지가 각각 다른 색과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글귀와 문양들이 대리석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각기 다른 색깔의 돌로 천사, 해골, 농담, 유언, 업적, 문장 등을 새겨 죽은 기사들을 추모한다. 성당 내부로 들어온 사람들은 400명 기사의 묘 위를 밟고 다니는 거다. 또한 성당의 천장은 세례자 요한의 일대기가 가득 그려져 있다. 바닥, 천장, 벽 할 것 없이 빈틈이 없으니 숨이 턱 막힐 수밖에 없다. 기사단 묘 위를 걷는 한걸음 한걸음,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의 참수'는 아홉 번째 예배당으로 카라바조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성요한대성당 뮤지엄에 더 머물고 싶지만, 화장실 줄이 그 어느 예배당 줄보다 길어, 두 시간 정도의 관람으로 만족하고 밖으로 나온다. 잠시 눈이 부셔 걸음을 멈추게 된다. 성당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성요한 대성당의 외관은 특별히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평범하고도 심플하다.


며칠 전 방문했던 식당을 찾아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유튜브에서 보았던 커피 집을 찾아 나선다.


새로운 골목길로 접어드니 좁은 골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성당이 눈앞에 나타난다. 휘장마저 나를 눈여겨보라는 듯 휘날린다. 여기가 바로 성바울난파선교회(st. Paul's shipwreck church)다. 내가 잘못 명명한 교회가 이 골목에 있었다. 성바울성공회대성당과는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지만, 그 역사와 규모와 개방성은 차원이 다르다. 이곳은 시간이 늦어서인지 문이 굳게 닫혀있고, 쉽사리 일반인의 예배를 허락할 것 같지도 않다. 사도 바울의 오른팔 뼈와 그가 처형당할 때 사용되었던 대리석 기둥의 일부가 남아있는 교회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사도 바울이 난파되어 몰타에 머물렀던 걸 기념하기 위해 새워진 교회.


내가 여길 다시 올 일은 없을 텐데, 그래도 세인트폴난파선교회를 알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글을 쓸 때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성당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써서는 안 된다는.


나는 한국인 손님을 반기는 KIR Royal cafe를 찾아 플렛화이트를 주문한다. 젊은 주인은 솜씨 좋게 커피 위에 페가수스를 새겨서 내온다.

나는 젊은이들처럼 골목길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쉬워 다시 한번 어퍼바라카정원에 들른다. 프러포즈를 받은 여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남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석양을 배경으로 한 발레타 게이트도 웅장해 보인다.


발레타의 두 번째 모습은 전쟁의 도시가 아니라 낭만의 도시다.

2025.3.28. 오후 5:22

발레타 골목 KIR Royal Caf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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