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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위를 걸으며 1

-  '일 년' 넘어서기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묻는다. 해밀초에서 뭘 하냐고.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 대답한다.

 “5-6학년 군장 됐어.”

 서로 짠 듯이 하나같이 물어본다.

 “학년 군장이 뭐야?”

 “부장이야 뭐야?”

 “군단장 아니고? 군장?”

 “군장 말고 군단장이 너한테 딱이다. 잘 어울려.”

  보통 학교에서 보직교사는 ‘부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학년 군장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해밀초 빼고는 없을 거다. 

 <학교와 나. 살림터 2021년 공저 중 OOO 선생님 글의 일부>     


‘학교와 나’는 해밀초 개교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여기 나오는 학년군장은 생소한 이름입니다. 혁신학교 선두 주자로 출발한 지역에서는 스몰스쿨제라고 하여 학년군제 형태를 운영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혁신학교 후발주자인 세종에서도 초기 세종혁신학교가 운영될 때 규모가 큰 학교에서는 스몰스쿨제라는 이름을 빌려온 적이 있습니다.


빌려왔다고 표현한 것은 규모가 ‘큰 학교는 2개 학년씩 묶어서 작은 학교처럼 운영한다.’ 정도의 형식을 가져온 것이고, 그 바탕으로 학교장 중심의 학교에서 책임과 권한을 분산해보자는 기대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종에서 잠시 스몰스쿨제가 운영 계획서에 오르긴 했으나 세종에서 생명력을 가지진 못했습니다. 책임과 권한을 분산하는 데 대한 문제보다 하견제의 단단함이 더 큰 이유입니다. 규모가 큰 학교가 많은 세종시에서 스몰스쿨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단순하게 학년군제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한해살이를 넘고 싶었습니다. 작물에 따라 60일만에 결실을 맺기도 하고 봄에 씨앗을 뿌려 가을걷이를 합니다. 더러 1년 이상을 시간을 필요하고 하기도 합니다. 다시 재정비를 하여 내년(다음)을 기약합니다.


 사람의 삶은 연속적입니다. 물론 삶의 통과의례도 있고, 학교에서는 매년 혹은 입학과 졸업이라는 작은 매듭은 필요하겠지만 그것이 삶에서 연속적이어야 합니다. 학년제는 매듭이기는 하지만 아주 작은 매듭이라 연속된 삶을 위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도록 하여 직간접적으로 살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한 살 차이’를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일 년 선배, 군대에서도 바로 위 고참과는 위계 서열을 더 분명히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알고보면 1년 선배가 확률상으로 가장 함께 오래 살아가야 하는 친구입니다. 그렇다면 더 가깝고 친밀하게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처음 생각을 다듬을 필요가 있어 학년군제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몇 개의 연구물도 살펴보았습니다. 이론적 장단점은 있지만 모델로 삼을 실천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학년군제가 들어온 배경과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학년군제는 2007년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최종 보고서에 담긴 이래 2009 개정 교육과정에 제도화됩니다. 보고서에는 ‘2015년부터 초ㆍ중학교는 지역별, 학교별 특성에 따라 몇 개의 학년을 하나로 묶는 학년군제가 시범도입되고, 고등학교는 학년 구분을 없애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해 듣는 무학년제와 학점이수제가 도입’됨을 알리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학년별 교과서가 존재하고, 지금까지 학년 단위 운영이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촘촘한 성취기준은 열려 있다고 하지만 학년군제를 운영하기 위해 일부러 성취기준을 손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년군제는 교육과정 시수표에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학년 단위가 아니라 학년군은 1년이 아니라 최소 2년 동안 학생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고, 운영 방식에 따라 학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게 할 수 있습니다. 시도해볼만한 과제이고, 특히 처음 개교한 학교가 아니면 시도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오래가지 못해 시도하는 것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분명 새로운 길을 여는데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학교 내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했습니다. 1,2학년과 3,4학년, 5,6학년 3개 학년군을 학교 안의 작은 학교 개념으로 두고 여기에 예산과 인사, 교육활동을 권한 위임을 위한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부장으로 학년군장을 둡니다. 학년 배정 시 담임교사는 3개 학년군 중에 원하는 학년군에 희망을 하고 학년군장은 같은 학년군내에서 인사를 주재합니다. 이때 인사는 2년 동안 한 학년군에 학년군에 머물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1,2학년군을 선택하면 올해는 1학년, 내년은 2학년을 가거나 혹은 올해 1학년, 내년에도 1학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학년 학급수가 8학급 내외인 규모라 인사 조정을 하다 보면 연임과 중임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학년군에 있음으로 인해 아이를 더 자세히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학년군장이 하는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학년군 인사뿐만 아니라 교육활동에 있어 2개 학년이 공통적으로 해야 하는 일 등을 두었습니다. 학교 전체적으로는 ‘징검다리 팀 프로젝트’를 학년군 단위에서 수준에 맞게 운영합니다. 이에 예산도 책정합니다.                                                                            

                                                          학년군 연결성


                                                           징검다리 팀 프로젝트


                                                                2024학년도 업무분장표


그리고 학년군장 협의체를 둡니다. 협의체는 회의를 하며 서로 생각을 나누고 더 좋은 생각으로 수렴하는 역할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역할은 중요한 ‘통로’로서의 역할입니다. 나중에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협의체는 공유, 동의, 나눔, 함께 함 그리고 다른 세상의 과의 연결 통로이기도 합니다. 


학년군장 협의체는 학교장과 교육과정 담당과 3개 학년군장이 참여합니다. 학년군장 협의회에서 학년군제를 더 정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학년군장의 일도 많아집니다.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 ‘학년군장’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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