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세상에는 답안지가 필요하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며 생각하며 살아가는 마음이 언제나 나의 잣대가 되어주었고, 나침반이 되기도 했으며, 지팡이가 되기도 했다.
기어코는 자존감이기도 했다. 이렇게 읊다 보니 내 전부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암행어사의 마패였고,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이었다.
하지만 여러 번 관계에서 실패하다 보면, 가끔은 내가 진짜 좋은 사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온갖 미디어에서는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으며 스스로를 갉아먹지 말라고 얘기하는데,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그럼 한때 내 우주에서 가장 소중했던 그 사람의 잘못인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이 상처는 누가 냈고, 어떻게 치료하지?
선한 의도가 통용될 수 없다는 진리까지 새긴, 스스로가 꽤 괜찮은 암행어사라고 생각했던 나는, 요즘 ‘좋은 사람’이라는 마패를 내려놔야 하나 하는 자격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일종의 자기혐오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삶에서 우리는 ‘가지다.’ 또는 ‘잃다.‘를 결정해야 한다. 결정에 끝없는 고민이 달려도, 달리지 않아도,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담 나는 어쩔 수 없이 포기당한 것으로부터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 우주에 좋은 사람이 없는 거 아닐까. 나는 과연 이 마패로 몇 명의 이들을 상처 주며 살아왔을까.
최선을 다한 관계에는 후회가 없다는데, 나는 어디까지가 최선이고 어디까지가 최선이 아닌지에도, 애초에
후회 없는 삶은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까지 차오른다. 역시 세상에는 답안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