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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ory Sep 01. 2021

[승효상] 천의 바람_ 시안 가족 추모 공원




“나는 이를 '빈자의 미학'이라 부르기로 한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승효상-










폭염으로 뜨거웠던 7월,


회사 워크샵으로 시안 가족 추모 공원을 다녀왔다.

요 근래 제일 가보고 싶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시안은 한국 현대 건축 선구자인 김수근의 제자,


승효상 건축가가 참여한 프로젝트이다.









‘한국의 장묘 문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시각화한 공간.’

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목표로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여태껏 보지 못했던 묘역에서의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설계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시를 모티브로 삼아 공간 속에 적용시켰다.




-

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

하늘 한 가을비 되어

천의 바람이 되어

새가 되어 날아올라 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 되어

-


각 구절들을 바탕으로

빛의 마당,

물의 정원,

바람의 숲,

추모의 탑으로 공간을 기획했다.


(시안 추모공원 공식 블로그 참조)














묘역을 찬찬히 둘러보았을 때,

내후성 강판인 코르텐 강과

노출 콘크리트가 주된 물성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승효상 선생님의 공간 안에 있음을

더욱이 느낄 수 있었다.



코르텐 강과 콘크리트의 조화,

두 가지 물성의 대비는 삶과 죽음 가운데 어떠한

대조적인 의미를 품고 있을 것이다.







시간의 무게를 간직하고

일렁이는 빛을 담아내는 코르텐 강.



뜨거운 붉은 기운의 적색을 머금고 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바래지듯이 짙어지게 된다.


짙어져 무게감이 느껴지는 중후한 색이 되듯,


시간이 흘러 한 영혼에 대한 추억이 빛바래지더라도

 영혼의 고유함과 가치는 

더욱 짙어진 농도로 응축되어 

간직되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여 함축적인 뜻을 품은 물성으로

사용된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긴 계단을 오를 때 보여지는 코르텐 강.

빛을 품을 수 있도록 상부를 오픈시켰다.







캔틸레버형 구조로 그늘이 되어주는 납골 공간.








물의 정원 입구.


흰나비들이 춤추듯 날아다니는 모습이

현실과 동떨어진 들판에 온 듯 평화로웠던 순간.


자연적 요소가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서 아쉽다.







물의 정원이 어떤 의미를 품은

전이 공간으로 계획되었을까.


사방이 높은 코르텐 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웅장함 속,

물길을 따라 걸으며 애도와 함께

세상을 떠난 영혼을 만날 수 있도록 이어주는 길.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가며 떠나간 자들을

그 걸음마다 기억하며 새기는 기억장치로서의 물길이

되어주는 듯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가르는 그 물길 위,

더욱 깊숙이 그들의 내면을 끌어올리며

찬찬히 애도할 수 있는 공간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곳은 죽은 자의 유품을 태울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높은 탑 안에서 고요히 애도할 수 있는 곳.







바닥의 이끼는 시간의 흔적으로 피어난 것인데

이마저도 어떤 의미가 풍겨져 왔다.






녹색과 적색의 보색 대비가

가져다주는 강한 인상과 함께


탑과 탑을 둘러싼 자연은 하나의 풍경처럼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졌다.










탑을 오를때 느낄 수 있는 차경들.




어둠 속에서 보여져 마치

액자 속에 그림을 걸어 놓은 듯하다.


이 또한 저 멀리 보여지는

세상을 바라보며 고요히 사유할 수 있는 공간.


















탑에서 내려다볼 때의 모습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듯한 슬로프의 연속성.

언덕배기의 경사로를 무수히 많은 슬로프로 풀었다.



내려다보면 미로 같기도 하고

슬로프들이 가져다주는 형태적 조화로움은

이 묘역 공간을 더욱 강조시켰다.









.

.

.


이렇게 둘러본

시안 추모 공원은


무엇보다도 자연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건축의 모습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공간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각별하게 다룬 공간이다.














콘트리트 담장에 비춰진 빛과 그림자

어느 곳 하나 시선을 놓칠 곳이 없었다.


커다란 나무 아래 그늘이 되어주는 공간마저

자연에게서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받아갈 법했다.








건축이란 직업에 발을 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에 대한 사유와 철학이 뚜렷하지 않은

나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낀 시간이 꽤나 깊다.


모든 것을 좋게 보는 나의 성향이 직업에도 맞닿아있어

어떤 공간을 보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었다.


어떠한 것에도 정답은 없듯이

공간에 대한 나만의 주관, 혹은

삶의 영향을 미치는 공간의 가치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사유하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해본다.



작은 발걸음이 곧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주길 바라며.


202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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