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5편 : 김창균 시인의 '가래 몇 알'
@. 오늘은 김창균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가래 몇 알
김창균
추석 무렵 엄마 산소 옆에서 주워 온 가래 몇 알
하도 만지작거려 모서리는 닳고 깊은 주름만 남았다
때 타고 시간 타고 사람도 타고
그 숱한 기척에도 몸을 열지 않는 단단한 고집이
살아생전 엄마의 속내 같기도 하여
양손에 넣고 서로의 몸을 비벼 본다
그 소리가 맑고 경쾌하여
저간의 침묵을 깨고도 남을 법한데
주름이 주름을 비비며 닳는 몸과
또 한 주름진 몸이 하는 골똘한 생각은
어디쯤 가닿고 있는지
병을 대물림하는 혈육의 맥박처럼 간헐적인
서러움을 밀며 또 당기며
모서리가 많던 집을 돌이켜 생각해 보는
캄캄한 저녁이다
- [슬픈 노래를 거둬갔으면](2023년)
#. 김창균 시인(1966년생)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출신으로 1996년 [심상]을 통해 등단. 강원도 고성군 일원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했으며, 현재 강원작가회의 지회장.
<함께 나누기>
어릴 때 부산 성지곡수원지에 놀러 가면 두 가지를 따왔습니다. 밤과 추자(가래). 밤과 가래는 반드시 손 대신 발로 처리해야 합니다. 밤이야 가시에 찔릴까 봐 그렇게 했다면, 가래는 껍질에 손이 닿으면 옻(사실은 ‘옴’) 올라 한동안 가려워 미칠 지경이라 그리 했지요.
그 뒤 호두가 인기 있는 과일이 되자 한동안 가래나 호두는 같은 말인 줄 알았습니다. 왜냐면 둘의 모양이 아주 닮았으니까요. 허나 다릅니다. 가래가 가래나무의 열매라면 호두는 호두나무의 열매입니다. 모양도 호두는 둥글지만 추자는 럭비공처럼 길면서 한쪽 끝이 뾰족합니다. (사진 참조)
호두는 주로 건강을 위해 먹는다면 가래는 먹기보다 두 개를 손바닥에 굴려가며 비비면 자르락 자르락 나는 소리가 좋아서입니다. 가래라는 말의 기원을 찾아보니 옛부터 기침이나 가래 삭히는데 효과 좋다 하여 가래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시로 들어갑니다.
화자는 추석 무렵 엄마 산소에 들러 성묘하다가 무덤 옆에 솟은 가래나무 아래서 가래 몇 알을 주워옵니다. 먹고픈 마음보다 가래를 손안에 넣고 비비면 나는 자르락 자르락 하는 소리를 듣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어머니를 떠올리기 위해서?
"때 타고 시간 타고 사람도 타고 / 그 숱한 기척에도 몸을 열지 않는 단단한 고집이"
가래를 손에 넣고 비벼도 일 년 내내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다음해 가을 오기까지 손에 갖고 놀 수 있었지요. 그렇게 부서지지 않고 몸을 열지 않는 가래의 고집이 마치 생전 엄마의 속내 같습니다. 아마도 화자 어머니도 속을 잘 드러내지 않던 분인 듯.
"그 소리가 맑고 경쾌하여 / 저간의 침묵을 깨고도 남을 법한데"
가래를 굴릴 때 나는 맑고 경쾌한 소리로 보면 계속 침묵을 지키기보단 낭랑하게 무슨 소리를 낼 듯한데, 가래도 어머니도 말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쾌활한 사람은 말이 많은데 어머니는 겉으론 분위기를 이끄는 분이셨지만 아픈 속내는 숨겼던가 봅니다. 아니 어쩌면 가족에게 그런 아픔을 의도적으로 감추려 했는지도.
"주름이 주름을 비비며 닳는 몸과 / 또 한 주름진 몸이 하는 골똘한 생각은 / 어디쯤 가닿고 있는지"
'주름이 주름을 비비며 닳는 몸'이란 표현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노동을 워낙 많이 쓰는 사람은 지문 찍을 때 애를 먹지요. 달아 없어져서. 어머니는 곤궁한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온몸을 부대껴야 했습니다. 어쩌면 가래 두 알이 부딪힐 때처럼 비명도 질렀을 터. 허나 가족에겐 아프지 않은 척했습니다.
가래 주름, 가래 비비는 소리를 어머니와 연결시킨 발상이 참 놀랍고 기발합니다. 살아생전 어머니 얼굴의 늙은 주름, 몸에 깃든 숱한 병의 주름, 옛날 집 곳곳에 남은 낡은 주름. 이 모든 게 가래 비빌 때처럼 소리 되어 울렸으니.
*. 사진은 모두 구글 이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