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27)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아내랑 경북 군위군에 있는 '한밤마을'을 방문한다. 이곳은 자연스럽게 쌓아놓은 돌담이 집집을 두루마기처럼 걸치고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는 곳인데, 예스런 정취를 즐기려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마을이다.
이맘때 볼 만한 눈요깃감으로 ‘남천 고택’ 바로 곁에 자리한 노오란 은행나무와 집집마다 심은 빠알갛게 잘 익은 산수유가 담에 기대어 누가 오가는지를 내다보는 모습이 참 곱다.
헌데 우리 부부는 돌담길 들어서는 입구 집에서 밖으로 삐져나온 토종 감나무를 보고 동시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이구, 저 감 봐라! 참 탐스럽네.”
“햐, 그 녀석들! 정말 빽빽이도 달렸네.”
우리가 다른 곳에 놀러 가 감나무를 보고 감탄사를 터뜨린 적은 처음이다. 반시로 유명한 청도에 가 집집마다 주렁주렁 열린 감을 봐도 그저 그만. 곶감으로 이름 높은 상주에서 감들이 잔치를 벌여도 눈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만은 어딜 가도 주저리주저리 달려 있는 감나무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
올해 우리 집 농사 중에 가장 망한 작물이 바로 감이다. 다른 과수나 채소는 풍년작은 아니더라도 평년작은 되는데 감만은 아예 없다. 해거리에다 저번 태풍 왔을 때 피해를 입어 대부분 떨어져 개수를 헤아려도 열 손가락이면 충분할 듯.
시골 여인네들은 택호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우리 부부가 달내마을에 들어오자 고민한 가운데 하나가 아내의 택호였다. 마을 사람들이 아내의 출신지를 따 ‘언양댁’이라 붙여주면 되나 그 택호가 좀 너절한 듯하여 미리 지으려 했다.
100년 된 뽕나무가 있으니까 '뽕나무댁'으로 하려다 집집마다 다 그 정도의 뽕나무는 한 그루씩은 다 있고, 또 뽕나무댁이란 호칭이 일으키는 그 묘한(?) 이미지... 그러다가 100년 된 나무가 또 있다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바로 감나무였다. ‘됐다 감나무댁으로 하면’.
허나 다음날 아랫집 가음댁 할머니의 한 마디에 그냥 결정되어 버렸다.
‘새댁!’
오십 줄에 발을 디딘 여자에게 새댁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허지만 모두 환갑 지난 할머니들이 볼 때는 새댁이었다.
그랬던 감나무가, 한 해 적어도 천 개쯤 달리던 감들이, 많을 땐 삼천 개 이상 나뭇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달리던 그 감나무가... 어제 오후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하고 헤아리다가 다섯에서 멈췄다. 딱 다섯 개. 그나마 내일모레쯤 다 떨어질 테고.
올해 우리 마을엔 감이 전반적으로 해거리한다. 그래도 이즈음 마을을 두르고 있는 빛깔 가운데 가장 환한 빛깔은 역시 감빛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빠알간 홍시빛이다. 그 빛깔이 주는 아름다움을 어디다 비길까. 어느 여인네의 다홍치마도 그에 못하리라.
우리 마을엔 단감이 거의 없고 토종감이 대부분이라 적당히 익으면 곶감 만들려 따버린다. 늦으면 떨어지기 마련인데 지붕에서 홍시 떨어지는 소리가 처음 들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제법 크다. 또한 아침에 ‘동네 한 바퀴’ 돌 적마다 길가에 떨어진 홍시가 신발에 묻지 않도록 조심해서 홍시 시체가 없는 곳만 골라 디뎌야 한다. 그 정도로 많았건만...
나는 기억력이 뛰어나지 못하다. 달리 말하면 건망증이 심한 편이다. 어떤 땐 내가 생각해도 한심할 정도로 잘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아내가 종종 그 기억력으로 교사 한 게 용하다고 지금도 얘기한다. 그 점은 나도 인정하는 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건 잘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될 건 잘 기억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어릴 때 부르던 노래다. 들으면 좀 엽기적인데 지금도 술이 콧등까지 오르면 한 번씩 흥얼거린다. 한 예로,
“엄마야 뒷집에 돼지붕알 삶더라,
좀 주더나 좀 주더라,
맛있더냐 맛없더라,
찌링내 꾸링내 나더라.”
이 노래 부르면 처음 들어본 사람은 기겁을 한다. 그럼 더욱 흥에 겨워 다음 노래까지 덧붙인다.
"홍시 감시 터졌네 할배 X알 터졌네"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 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불행히도(?) 이십 년 전까진 완창 했던 노랫말을 이젠 끝을 못 맺는다. 다만 이 노래를 남자아이들은 시차기(비석치기)할 때,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 뛰기 할 때 불렀던 것 같다는 판단이 설 뿐. 이 노래 가사에 신경 써 해석하다 보면 어떤 분은 내용의 심각성(?)에 혀를 내두를지 모르겠다.
그런데 노랫말을 솜솜 뜯어보면 그 의미보다 각운의 효과를 노려 적당히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홍시'와 '감시'에서 시의 반복과 끝에 같은 소리 '터졌네’를 반복함으로써 운율이 형성되는 효과를 노렸으리라.
그러나 홍시가 터진 거야 그냥 내버리면 되지만 ‘할배 X알’이 터졌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특히 사타구니를 걷어 차인 경험이 있는 남자라면...
홍시를 언급한 김에 떡과 가장 궁합이 맞는 짝, 즉 떡 먹을 때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는 짝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우리말의 묘미를 알면 쉽게 답할 수 있다. 꿀이다. 꿀과 함께 먹으면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합성의 절묘함을 느끼게 하는 낱말이 된다.
다음으로는 술이다. 역시 ‘술떡술떡’ 잘 넘어간다. 실제로 술 먹을 때 떡을 안주로 먹어본 경험은 없지만, 언젠가 한 신문 기사를 읽으니 서울의 어느 술집에서는 안주로 떡(인절미)을 구워 내놓는데 상당히 인기라 한다.
그런데 나는 떡과 가장 궁합이 맞는 짝은 홍시라 생각한다. 떡을 꿀에 찍어먹으면 분명히 맛있다. 허나 그건 단맛이 거의 없는 떡일 때 말이지 단맛이 많이 밴 떡일 경우에는 너무 달아서 많이 먹지 못한다.
그에 비하면 홍시는 다르다. 홍시 몇 개를 으깨 접시에 담아놓고 떡을 찍어먹으면 정말 입에 착 달라붙는다. 물론 홍시도 달지만 그 단맛은 질리게 하는 맛이 아니라 ‘땡기게’ 하는 맛이다. 저절로 손이 가게 만드는 땡기는 맛, 그게 홍시다. 혹 아는 이들이 찾아오면 떡을 내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꿀과 홍시를 함께 내놓으면 홍시 쪽으로 손이 더 많이 간다. 역시 '땡기는 맛' 때문이리라.
단풍빛보다 먼저 시골 마을을 붉게 물들이는 홍시를 떠올리면서, 그 옛날 불렀던 ‘홍시 감시 돼지 붕알’이란 노래의 가사를 되살려 보려 한다. 기억 바구니가 너무 낡아 되살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겠다. 되살린들 쓸모야 없지만...
그리고 다음 주에 어디 감서리 하러 나서야겠다. 혹 뉴스에 감서리 하다가 걸린 군청색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이가 한 손으로 카메라를 가로막는 듯한 시늉을 하는 이가 나오면 그가 나인 줄 여기시기를...
*. 오늘 글은 2021년 11일 21일 올렸는데, 다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