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찻길동물사고와 도로표지판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25)

* 찻길동물사고와 도로표지판 *



우리나라 사람만큼 세계 최고를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물론 세계 최고가 되면 좋은 점도 많다. ‘컴퓨터 보급률’, ‘초고속 인터넷 가입률’, ‘인구비례 휴대폰 보유량’. 이런 세계 1위는 우리나라가 IT강국임을 증명하니까.

헌데 나쁜 면에서 세계 최고도 많으니 문제다. 널리 알려진 세계 1위를 들자면 자살률 1위,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 1위, 대장암 위암 발병률 1위... 인터넷을 뒤적이니 부끄러운 세계 1위가 참 많다.


그런데 잘 안 알려진 얘기를 꺼내보자. 아마도 ‘장애인 배려 안 하기’, ‘야생동물 배려 안 하기’도 세계 1위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앞선 순위가 되리라. ‘아마도’란 말을 앞에 붙인 건 통계에서 본 게 아니라 나의 짐작이란 뜻.

그럼에도 내 의견에 동감을 하는 이가 제법 될 것 같다. 오죽하면 장애아가 태어나면 그 애의 부모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건 다른 나라로의 이민이라는 말도 있으니...


25-1.png (리투아니아 ‘Tiny Road Sign’의 하나)



야생동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보호니 공존이니 하는 면보다 어떡하면 퇴치할까 하는 면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그럼 다른 나라는 어떨까, 굳이 선진국이 아니더라도.

몇 해 전 뉴스를 통해 북유럽 리투아니아의 도로표지판을 본 적 있다. 알다시피 도로표지판은 차를 몰거나 걷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다. '눈길 미끄럼 주의' '낙석 주의' '상습 결빙지역' 등. 헌데 리투아니아의 도로표지판은 그 발상이 달랐다. 바로 ‘야생동물들을 위한' 표지였기에.


‘로드킬(road-kill)’이란 말로 더 알려진 ‘찻길동물사고’는 굳이 시골 살지 않아도 흔히 본다. 어쩜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볼지 모르겠다. (사실 ‘로드킬’을 국립국어원에서 ‘찻길동물사고’로 바꿔 쓰자고 했는데, 음절이 너무 길어 아쉽다. 새 언어가 자리 잡음엔 편리함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도심에서도 차에 치어 죽은 길고양이의 시체가 군데군데 보인다. 흔히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 고양이가 밤눈 어두운 건 아니다. 고양이는 강렬한 불빛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게 되는데 그 순간 차를 피하지 못해 사고가 난다.

이는 꼭 고양이뿐이 아니라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다 그렇다. 밤에 외진 시골길에 차를 모는 이들은 상향등을 켠다. 그러면 야생동물은 강한 불빛에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게 돼 피하지 못하고 멀거니 서니, 운전자는 차를 세우지 못해 그대로 통과하다 보니 칠 수밖에.


25-2.png (리투아니아 ‘Tiny Road Sign’의 하나)



북유럽의 소국인 리투아니아에서는 숲에 사는 아주 작은 야생동물들을 배려하려는 계획 아래 ‘Tiny Road Sign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도로가 없었을 때는 작은 야생동물들이 마음껏 다니던 길을, 인간 전용의 도로가 생기면서 그들이 다니던 길이 없어짐에 대한 미안함에서 나온 배려의 프로젝트다.


‘찻길동물사고’가 일어나면 야생동물은 한 번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땐 열 번, 스무 번, 아니 백 번도 더 죽게 된다. 며칠 전 울산 나가는 길이었다. 도로 위에 까마귀들이 잔뜩 앉았다 날아가길래 뭔가 하여 보니 피떡이 된 동물 사체였다.

처음에는 무슨 동물인지 몰랐다. 오가는 차에 워낙 많이 치어 거의 쥐포처럼 된 데다 까마귀가 뜯어먹기까지 했으니까. 마침 지나는 차가 없어 브레이크를 밟아 살펴보니 너구리였다. 처음 치인 시간은 아마도 어스름이 막 걷힐 무렵이었으리라. 그때가 가장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니까.


운전자가 치고 난 뒤 바로 치웠더라면 너구리는 한 번의 죽음으로 끝났을 테지만… 나 몰라라 하고 가버렸으니 다음 사람이 치고, 또 치고… 오전 9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건만 얼마나 많은 차가 그 위를 지나갔을까. 또 얼마나 괴로웠을까. 물론 숨 끊어지고 난 뒤에야 더 아픔 느끼랴만.

시골길을 자주 운전하며 다니는 이라면 필수적으로 지참해야 할 게 있다. 대단한 준비물이 아닌 고작 비닐장갑이다. 내가 치든지 아니면 누가 치든지 간에 동물 시체를 보면 빨리 치워줘야 한다. 그때 꼭 필요한 게 바로 비닐장갑이다.


25-3.png (리투아니아 ‘Tiny Road Sign’의 하나)



멀리까지 내다 버릴 필요는 없다. 집어서 바로 도로 옆으로만 던져놓아도 된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도 처참한 그 모습 보지 않아서 좋고... 그러나 비닐장갑보다 더 필요한 건 시골길 달릴 때는, 특히 야간에 운전할 때는 천천히 달려야 한다는 마음가짐.

적어도 동물들이 불빛에 놀라도 피할 시간을 주도록. 운전자 역시 동물을 치게 되면 하루 종일 언짢아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을 터이기에. 더욱 고양이나 산토끼 정도라면 몰라도 고라니 크기의 동물을 박으면 차도 망가져 수리비가 꽤 들고 자칫하면 큰 사고로도 이어진다.


이즈음은 야생동물이 눈에 많이 띌 시기다. 짝짓기 계절은 조금 지났으나 주로 밤에 길을 나서는 녀석들이 인간에게 봉변(?) 당할까 두렵다. 잘 살지도 않는 나라, 그리 크지도 않은 나라인 리투아니아에서 처음 벌인 이 행사가 영국에 먼저 소개되면서 다른 유럽에서도 따라 하고 있단다.

남의 것을 무작정 따라 함은 좋지 않지만, 이 제도를 따라 한다고 하여 나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게다. 표지판 하나 바꾼다고 해서 야생동물 배려하는 자세로 즉각 바뀌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운전할 때 야생동물을 배려해 속도를 조금 더 줄이는 그 마음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 커버 사진을 포함한 모든 사진은 ‘BORED PANDA(2015년 7월 29일)’에서 퍼왔습니다.

*. 오늘 글은 2021년 11월 19일 올렸는데, 다시 싣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