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23)
그저께 저녁, 베란다에 약한 소음이 일었다. 해도 그냥 길고양이이거니 했다. 요즘 하도 녀석들이 많이 돌아다니니까. 잠시 후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랫마을에 이사 온 지 삼 년쯤 되는 박사장이었다. ('사장'은 그냥 붙이는 호칭임, 어떤 사람은 박씨라 부르지만 이왕 사장이라 해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지가 축담에 머 쫌 갔다놨심더.”
“예?”
“아... 감 좀 갖다놨심더.”
휴대폰을 든 채 현관문을 열고 보니 정말 두 개의 상자에 감이 담겨 있었다. 갑작스러운 선물에 제대로 고맙다는 답도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아... 지가 정선상 댁에 올해 감이 하나도 안 달렸다는 말 들어서...”
그제사 고맙다고 한 뒤 얘기를 더 나눠보니, 이웃에 내 글 읽는 분이 저번에 감이 없어 곶감 못 만든다고 쓴 글을 얘기해줬던가 보다. 그래서 곶감 만들어라고 보냈다는 게다.
“아이구 이런 고마울 데가...”
“마 그런 말 마소. 이웃끼리 서로 농갈라묵는 건데...”
‘농갈라묵다’는 경상도 전 지역에서 두루 쓰이는 사투리다. ‘나눠먹다’는 뜻을 지니는데, 이제 이 사투리는 잘 쓰이지 않는데 신통하게도(?) 우리 마을에서는 자주 쓴다. 나도 여기 오기 전까지 이 사투리는 알아도 어릴 때 말고는 거의 쓴 적 없는데 요즘 짬짬이 사용한다. ‘농갈라묵다’는 어감이 좋아서.
이 말을 가장 잘 쓰시는 분이 바로 우리 아랫집 사시는 가음댁 할머니시다. 내 글 속에 우렁각시 대신 '우렁 할머니'로 표현되는 그분. 우렁 할머니는 당신 혼자 사시기에 밭에 조금만 심으면 되지만 빈 공간 없이 빼곡히 심는다. 그걸 볼 때마다 이리 말한다.
“할머니, 조금만 심지 왜 그리 많이 심어요. 아들 내외도 잘 가져가지 않는다면서요.”
“그냥 넘들과(남들과) 농갈라묵는 재미가 억수로 좋아서 하지예.”
처음 이사와 그 말을 하실 때 솔직히 믿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밭에서 나는 걸 갖다 줄 때는 뭘 바라는 게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은가. 봄에는 산속을 다니면서 팔다리 긁혀 가며 캐온 나물을, 여름과 가을에는 밭에서 나는 온갖 남새(채소)를, 또 겨울에는 도라지를 갖다 준다. 이러면 뭔가 목적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할머니네 쌀도 사주고, 나물과 도라지는 직장에 갖고 가 팔아주었다. 나로선 고마움에 대한 보상보다는 받았으니 주지 않으면 안 되는 불편함 때문이었다. 그냥 있기에는 뭔가 미안한…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안다. “넘들과 농갈라묵는 재미가 억수로 좋대예.”가 갖는 말의 뜻을. 그리고 이제는 안다.
할머니는 정말 거기에 재미를 느낀다는 사실을. 이제는 할머니를 한 점 의심하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콩, 도라지, 상추가 조금씩 든 비닐봉지가 축담 아래 놓여 있었다. 할머니가 갖다 놓은 것이리라. 이제는 이 농산물을 아무 부담 없이 받는다. 주는 게 기쁘다고 하시는 말뜻을 받아들여서다.
시골 생활 십 년이 넘어가면서 묘한 습관이 생겨났다. 우리 집에 들렀다 가는 사람들에게 빈손으로 보내서는 안 된다는. 뭐라도 찾아 손에 안겨줘야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모처럼 들른 이들에게는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줄 만한 게 없는가 찾는다.
마침 적당한 게 눈에 띄면 그대로 줘버린다. 빈손으로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찾다 찾다 보이지 않을 때는 좀 난감하기까지 하다. 왜 이럴까, 내가 이렇게 인심 좋은 사람이었나? 아니다. 나는 결코 착한 사람이 못 된다.
그렇다면 왜 이럴까? 답은 바로 내가 사는 곳에 있다. 조그만 텃밭이라도 가꿔본 사람은 알리라. 열 평 남짓한 땅만 있어도 한 식구 먹는데 지장 없다. 그런데 우리 집 마당만 해도 얼마인가, 텃밭 면적만 해도 오십 평이 넘는다. 거기 나오는 농산물은 우리 먹고도 남는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아주 적게 심는데 그래도 남는다. 남는 걸 버릴 수 없으니 줄 수밖에. 돼지감자도 개똥쑥도 어성초도 상근피(뽕나무 뿌리껍질)도 보리수도 앵두도 그렇게 하여 다른 이들의 손에 넘어갔다.
늦은 봄에 오디 털 때 이런 내용의 글을 몇몇 밴드에 올린 적 있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 우리 집 오셔서 오디 털어갖고 가세요.”
그랬는데 딱 한 사람만 와서 털어 갔다. 설마 공짜로 갖고 가란 말일까 하고 의심해선지, 아니면 주중에는 시간이 나지 않아선지, 그도 아니면 잘 아는 처지가 아니니 부담스러워선지… 찾아온 한 분은 거저 갖고 갈 수 없다며 자기 집에서 거둔 유기농 매실을 주는 오디보다 몇 배나 더 갖고 왔다. 덕분에 그것도 아는 이와 나눌 수 있었고...
참고로 다듬어놓은(이물질 다 제거한) 오디는 돈을 받고 팔았다. 그 까닭은 노력이 엄청 들었기 때문이다. 오디를 털다 떨어지면 죽을 위험까지 각오해야 하니까(그래서 올해는 낮은 곳까지만 올라감). 줍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이물질 섞인 상태에서 제대로 된 오디만 골라내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줍는 시간의 열 배에서 스무 배까지의 노력이 필요하니 말이다.
시골에 살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몇 가지는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손윗동서의 댁에 가면 막 퍼준다. 심지어 김장거리도 다 공짜다. 그러나 딱 두 가지 쌀과 고추는 돈을 주고 온다. 벼농사가 수월해졌다고 해도 여름 땡볕 속에 논둑을 사흘들이 다니며 예초기를 돌려야 하고, 제때 농약을 뿌리는 수고는 여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고추는 심고 가꾸는 일이야 다 하는 일이라 해도 거두어 말리는 공이 엄청나게 든다. 장마철에는 자칫하면 곰팡이가 피어 태양초는커녕 곰팡초가 되니까 신경도 써야 하고.
내일 쓸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책상 너머 창밖을 보니 또 할머니가 비닐주머니에 뭘 담아 오신다.
“넘들과 농갈라묵는 재미가 억수로 좋대예.” 하는 말을 이제는 믿는다.
‘근주자적(近朱者赤)’이란 말이 있다. '붉은 것을 가까이하면 자기도 붉게 물든다'는 뜻으로, 착한 사람과 사귀면 착해진다는 속뜻을 지니는 한자성어다. 할머니로 하여 도시에서 살면서 손익에 민감함으로 무장한 한 인간이 '주는 맛'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매우 멀었다. 주는 일보다 '챙기기'를 더 좋아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줄 때도 친한 정도의 경중을 따지고, 어떤 땐 주고 나서 아까운 생각이 들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이 멀었다.’고 시간 날 때마다 중얼거린다.
문득 ‘황모 삼년(黃毛三年)’이란 한자성어도 떠오른다. '누런 개꼬리'를 아궁이 속에 넣어둔다고 해서 '검은 족제비 꼬리'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뜻인데, 이는 근본적으로 안 될 인간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속뜻을 담고 있다.
‘내가 근주자적이 될 것인가, 황모삼년이 될 것인가?’
‘넘들과 농갈라묵는 사람이 될 것인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해답은 모두 내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