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22)

*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 *



요즘 마을 한 바퀴 도는 경로를 바꾸었다. 전에는 마을 네거리에서 산 쪽으로 올라갔는데 거꾸로 계곡을 따라 아랫마을로 내려간다. 예전엔 혼자 다녔으니 아무 곳이나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내랑 함께 하니 아무래도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벅찬 듯해서다.

달내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펜션이 줄을 잇는다. 다른 곳은 쇠울타리 아니면 방부목으로 된 울타리인데, 한 곳만 탱자나무로 돼 있다. 예전 시골엔 싸리나무로 된 사립울, 사철나무로 된 사철나무울, 그리고 더러 탱자나무 울타리도 있었다.


사립울과 사철나무울 등 살아있는 여러 나무로 된 울타리는 예전엔 흔했으나 요즘엔 드물고, 특히 탱자나무로 된 울은 더 귀하다. 그 까닭은 탱자울은 원래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필요했는데 지금은 더 튼튼한 재료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탱자나무 가시를 보면 섬찟하다. 가시가 고동 까먹기엔 더없이 좋으나 너무 날카로우니까. 살짝만 스쳐도 피가 나고, 찔리면 그 아픔이 장난 아니다. 그대로 두면 곪아 나중에 병원 가야 할 정도가 되니까. 그러니 환영받지 못함은 당연하다. 특히 이웃사람들이 싫어한다.


(산책길에 마주친 탱자나무 울타리)



탱자를 보니 문득 중국 고사 하나가 떠오른다. ‘귤이 회수(淮水 : 강 이름)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사자성어로는 ‘귤화위지(橘化爲枳)’ 이 말의 유래는 아래와 같다.


춘추시대 제(齊) 나라에 키는 아주 작지만 세 임금을 모시면서도 충성 어린 말을 서슴지 않은 '안영'이란 재상이 있었는데 어느 해 초(楚) 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안영이 지모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은 초나라 왕이 그를 만난 자리에서 시험하려고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라고 비꼬았다. 안영은 대번에 자신의 작은 키를 두고 놀리는 것을 알고 바로 받아쳤다. “우리나라에선 보잘것없는 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는 작은 사람을 보냅니다.” 하고.

잠시 후 환영회에서 한 관리가 도둑을 끌고 와 제나라 사람이라 하자 초나라 왕은 안영에게 “제나라 사람들은 모두 도둑놈인가?” 하고 다시 비꼬았다. 그에 안영이 “귤이 회수의 남쪽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수의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이 말속엔 제나라에선 착하게 살던 사람도 초나라로 오면 도둑질을 하게 된다는 일침이었다. 즉 도둑을 만든 나라는 제나라가 아니라 초나라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사람의 품성은 그가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어디서 자랐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어떤 경우라도 귤이 탱자가 될 수는 없다. 밭에 따라, 가꾸는 이의 정성에 따라, 맛있는 귤이 맛없는 귤로, 맛없는 귤이 맛있는 귤로 바뀔지는 몰라도. 즉 같은 고구마 줄기를 얻어다 심었는데 밭에 따라 타박고구마가 되고, 물고구마가 되듯이 말이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란 고사가 꼭 자라는 곳이 달라짐에 따라 변한다는 뜻으로 새길 필요는 없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씀직 하니까. 남보다 뒤처지는 사람도 스승을 잘 만나면 뛰어난 사람이 되지만, 뛰어난 사람도 스승을 잘못 만나면 형편없는 사람이 된다는 뜻으로 읽어도 된다. 이렇게 적다 보니 좀 뜨끔해진다. 어떤 아이는 내게 배우지 않고 다른 선생님께 배웠더라면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됐을 텐데...


(탱자나무꽃)



또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 무리 속에 있을 때는 멀쩡하던 사람이 저 무리로 옮겨가자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한다든지, 반대로 저쪽에선 엉뚱한 말과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더니 이쪽으로 오니까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할 때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린가드란 FC서울 소속인 린가드란 축구선수가 있다. 그는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 EPL에서도 뛰어난 선수였다. 다만 성격이 너무 멋대인 악동이라 감독들이 혀를 내둘러야 했다. 그가 처음 한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다들 "저 선수, 한 달도 안 돼 쫓겨나 되돌아올 걸." 그러나 그는 아주 모범적인 선수로 달라졌다. 한국 축구 풍토가 사람을 바꾼 셈이다. (다시 EPL로 복귀한다는 뉴스가 뜸)



우리 집 뒤 언덕에 자라는 꽃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핀다고 여러 번 언급한 적 있는 '하늘말나리'를 보자. 하도 예쁜 꽃이라고 선전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후배가 찾아와 캐가려 했다. 몇 번이나 말렸건만 기어코 댓 뿌리 캐갔는데 하나만 피어났단다. 그런데 한 해 뒤 그의 말이다.

“형님 집 뒤에 있을 때보다 훨씬 안 예쁘던데요.”

설마 하고 찾아가 보았더니 정말이다. 평범한 꽃이 돼 있었다. 그제사 한 가지를 깨달았다. 꽃 가운데서도 옮겨 심으면 잘 살지도 않고 모양과 빛깔이 조금 변하는 꽃이 있다 사실을.


(탱자나무 가시)


어제 아침 '동네 한 바퀴'에 펜션의 탱자 울타리에 달려있는 탱자를 보자 어릴 때 맛 본 추억을 되살리려 하나 따 먹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나름 조심했건만 나무속에 들어가 있어 따다가 손가락을 살짝 스치자마자 바로 피가 배어 나왔다.

탱자는 귤이 못 나서 변한 게 아니다. 탱자는 원래부터 탱자였다. 비록 귤보다 사람들의 사랑을 덜 받지만 스스로 어떤 존재든 손대지 못하게 진화한 결과로 가시를 내민다. 어쩌면 사람의 사랑을 받지 않음이 탱자를 태어난 상태를 보존해 주는 힘 아닐까?


탱자 울타리를 보면서 얻은 생각거리를 잠시 떠올린다. 그만의 생존 방법도 잠시 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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