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와 우체통

목우씨의 '달내마을' 이야기(21)

* 박새와 우체통 *



저는 박새입니다. 제가 사는 곳 주변을 소개해 드립니다.


원래 저는 할아버지, 아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경주 한 산골마을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언덕에 우뚝 솟은 오래된 참나무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요란스러운 기계톱 소리가 나면서 그 나무가 넘어지고 얼마 안 있어 굴삭기가 들어와 땅을 뭉개더니 그 자리에 전원주택 한 채가 들어섰습니다.

집이 들어섰다고 해도 조그만 제가 몸 붙일 공간이야 없겠습니까? 하여 처음에는 석축 쌓아놓은 돌 틈에다 집을 지었습니다. 허나 거기는 비가 오면 물이 새어들고, 겨울이면 바람이 송송 새어들고, 또 알을 까놓으면 그걸 노리고 들어오는 들쥐 때문에 오래 있을 곳은 못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그 집 창고였습니다. 창고는 문을 닫으면 바람을 막아주어 따뜻한 데다 부직포랑 헌 포대가 가득 쌓여 있어 거기에 몸만 눕히면 되었습니다. 따뜻하겠다, 따로 집 지을 필요도 없으니 이리 좋은 장소가 또 있으랴 하는 감탄도 잠깐, 문제가 생겼습니다. 들쥐 대신 길고양이가 무시로 드나들지 뭡니까.

아시다시피 저는 몸집이 작습니다. 그래서 아주 좁은 공간도 가능합니다. 작은 구멍만 나 있으면 어디든 들어가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래된 나무는 최고의 주거 공간이지요. 그 속엔 벌레도 득실득실하여 애써 멀리 먹이사냥을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11.PNG (공구통 속에서 알을 품은 박새 어미)



언제든 작은 구멍으로 드나들 수 있고, 또 그 구멍은 대체로 좁아 들쥐나 고양이가 들어올 수 없으니 이보다 나은 곳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헌데 자기가 살 집 짓는 데만 바쁜 아저씨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참나무를 확 잘랐습니다. 기계톱을 들고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들으니 도무지 이해 안 되는 말을 씨부립니다.

“이런 나무는 잘라버려야지 사람이나 집이 위험하지 않아!”


오래된 나무도, 석축으로 쌓은 돌 틈도, 창고도 못 쓰게 되자 저는 솔직히 좀 난감했습니다. 그러다 아주 좋은 곳을 찾았습니다. 바로 아저씨가 세워놓은 우체통입니다. 우체통은 가느다란 다리 하나에 몸뚱이만 달렸으니 들쥐도 고양이도 올라올 수 없고, 사방이 막혀 바람을 막아주는 데다가, 드나들기 딱 알맞게 입구마저 좁으니 마치 저를 위해 만들어놓은 안성맞춤 집이었습니다.


12.PNG (처음엔 흰색 박새집을 만듦)



한동안 편히 잘 살았습니다. 가끔 우체부 아저씨가 우편물을 깊숙이 넣을 때는 화들짝 놀랄 때도 있지만 그 정도야 견딜 만했습니다. 마침 우체통 속이 깊어 안쪽까지 오는 우편물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다만 제가 드나드는 작은 구멍으로 된바람이 들어와 겨울에는 몹시 추웠을 뿐.

추위, 그까짓 것도 나뭇잎과 마른 이끼만 갖다 놓으면 됩니다. 태풍이 불어도 끄덕 없다고 뽕나무 꼭대기에다 고대광실을 마련한 까치 형님네랑 비교하기엔 물론 좀 모자라지만. 까치 형님 댁에 놀러 가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마어마하게 굵은 나뭇가지로 엮어 정말 태풍 아니라 태풍 할아버지가 와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우리 집이 최고입니다.


왜 이런 노래도 있잖아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이 노래 그대로였습니다. 저처럼 모타리 작은 새가 살기에 딱 적당한.


13.PNG (흰색 박새집을 놔두고 빨간 우체통으로만 들어감)



특히 우리 집엔 빨간 우체통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빨간 우체통, 우리가 빨간색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모르지요? 저처럼 작은 새 친구인 곤줄박이부터 훨씬 덩치가 큰 까치 형님이나 까마귀 형님도 빨간색을 무척 좋아합니다. 물론 빨강을 좋아하는 데는 다 까닭이 있지요.

대부분의 열매는 익으면 빨갛습니다. 저 같은 새들은 사람처럼 색을 일일이 구별할 줄은 모릅니다만 초록과 빨강은 잘 구별합니다. 열매가 빨갛게 변하면 일단 덤벼들어 한번 콕 찍어 맛을 봅니다. 특히 저는 토마토와 감이 빨갛게 익으면 환장합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토마토밭에, 가을에는 감나무에 무시로 마실 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저씨가 우릴 쫓아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우체부 아저씨랑 나누는 얘길 들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다음은 우체부 아저씨가 주인아저씨에게 하시는 말입니다.

“아 저번에 말입니다. 손을 넣었더니 갑자기 뭔가 손가락을 무는 것 같더라구요. 깜짝 놀라 손을 뺐더니 박새 아니겠습니까. 저는 뱀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러고는 이 말을 덧붙이더군요.

“구멍이란 구멍을 다 막아주세요. 하찮은 새 때문에 자칫하면 놀라 넘어지겠어요. 놀라 뒤로 넘어져 돌에 머리라도 부딪치면…”


14.PNG (사진으론 커보이나 실제로 아주 작은 박새)



제가 하찮은 새가 맞긴 하지요.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은 좋지 않더라구요, 허나 기분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요. 당장 집을 쫓겨나갈 판이었으니까요. 이제 곧 겨울이 옵니다. 다시 말해 된바람이 작은 깃 사이로 숨어들어 할퀼 계절이 다가온다는 말이지요.

따뜻한 봄이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올 때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알도 까고 거기서 나온 새끼가 또 뒤를 이으려면요. 다행히 주인아저씨는 막나가는 이는 아니어서 며칠 고민하는 듯하더니 뚝딱뚝딱 뭘 만들어내는데 바로 우리가 살 집이었습니다. 하얀색의 제법 그럴듯하게 생긴 집이었습니다만...


'하얀 집', 이런 노래 혹 아시는지요?

"언덕 위에 빨간 집,

빨간 집은 불난 집.

언덕 중간 까만 집,

까만 집은 다 탄 집.

언덕 아래 하얀 집,

하얀 집은 재가 된 집."


왜 사람은 저거들 생각만 할까요? 빨간색을 싫어해 흰색 집을 지은 모양입니다만 그건 우리 새가 좋아하는 색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우체통으로 갔지요. 자기들 입맛대로 우리 집이라고 만들었으나 정작 살아야 할 우리 의견을 묻지 않고 만든 집에 들어가라면 들어가겠어요? 그래서 버텼더니... 우리가 원하는 색 아닌 자기들이 좋아하는 색으로 집을 만들어놓고는 우리더러 뭐라고 하는지 좀 들어보세요.

"아, 이놈들 때문에 미치겠네! 저거들 생각해 집을 애써 만들어 줬으면 제 집에 들어가야지 왜 아직도 우체통에만 들어가는 거야!"


animal-5012248_1280.jpg



그리고 다음날이었습니다. 오전 먹이 사냥을 갔다가 돌아와 실컷 먹고 난 뒤 낮잠을 자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지면서 뭔가 시커먼 게 쑥 들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위기감에 본능적으로 작은 부리로 콕 쪼았습니다. 얼마 전에 까놓은 알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놈이... 여태까지 가만 놔둔 은공도 모르고..."

그리고 저는 모가지가 잡힌 채로 끌려나갔습니다. 그 뒤는... 모릅니다. 제 조생(鳥生)은 끝났으니까요. 제 알들은... 역시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제 동료들에게 유언 삼아 남깁니다.

"사람 주변엔 절대 가지 마라. 즈을 ~ 대로 가지 마라. 무슨 변덕을 부릴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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